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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정태명의 사이버펀치]<93>정보 공개와 기록이 신뢰의 기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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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신문

누구를 믿어야 하고 무엇을 따라야 할지 혼란스럽다. '국가부도의 날'이란 영화 한 편이 정부와 언론에 대한 신뢰도를 이렇게까지 망가뜨릴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일부가 저지른 불신덩이가 온 국민을 숨 막히게 하는 것이겠지만 사회 전체에 만연한 불신은 심각하다. 검찰·법조계·정부·학교·종교계까지 믿을 수 없는 존재가 된 현실에 가짜뉴스와 허위 콘텐츠까지 가세, 신뢰 붕괴를 가속시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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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위기는 경제나 외교의 침몰이 아니라 신뢰의 상실이다. 숨겨진 진실 때문에 오늘의 과오를 '내일의 과거진상조사위원회'가 파헤쳐야 한다면 지나친 비극이다. 청와대는 우윤근 대사 비리 관련 의혹을 행정관의 거짓 폭로로 규정했다. 그렇지 않기를 기대하지만 정부의 거짓이 드러나면 마지막 남은 신뢰의 불씨마저 꺼질 수 있다. 세월호 사태를 정점으로 극대화된 정부 불신이 새 정권에서 치유되기를 바라는 국민은 진실을 원하기 때문이다.

신뢰의 기본은 정보 공개다. 모든 정보가 무작정 공개될 수는 없지만 적절한 대상에게는 공개되고 기록돼야 한다. 기록조차 없어 국민의 불신을 조장하는 정부 소그룹의 비공개회의나 국회에서 행해지는 다양한 밀실 논의는 즉시 중단돼야 한다. 국민이 알권리를 주장하는 이유는 속임을 당하기 싫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전자정부특별위원회는 대통령 지시 사항의 각 부처 진행 상황을 챙기려고 실시간국정관리시스템인 이지원(e知園)을 개발했다. 원래 목적은 현황 분석에 의한 통치 효율화였지만 모든 상황과 사실이 기록된다는 점에서 상당한 가치가 있었다. 폐쇄회로(CC)TV에 녹화된 동영상이 상황을 부정할 수 없는 증거가 되는 것처럼 시스템에 기록된 정보가 진실의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이용해 모든 사실을 시스템에 기록하고 절대 삭제할 수 없도록 조치하는 '기록 만들기'를 제안한다. 모든 사실 기록이 필요하지만 특히 국가 기밀이나 사회 여파를 우려해서 공개할 수 없는 사실은 필히 기록하도록 해야 한다. 관련자는 역사가 되돌아볼 기록을 두려워하게 되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근거가 될 것이다. 국민은 어딘가에 진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신뢰의 싹을 틔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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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공개만큼 기밀 유지는 중요하다. 특정 집단에만 제공된 정보가 허위 정보의 빌미가 되지 않기 위해서다. '간 보는 정부'라는 의혹도 지울 수 있다. 사실 정보 공개와 기밀 유지는 동전의 양면 같아서 별개로 생각할 수 없다. 정보의 공개 범위가 결정되면 경계를 넘지 않는 조치가 필요하다. 정보기관이나 국방 관련 업무에 참여하면서 비밀유지서약서 한 장에 의존하는 것은 지나치게 무책임한 처사다. 기밀을 취급하는 협력업체 직원이 은밀히 교체돼도 무관심한 현실에서 기밀 유지는 불가능하다. 미국은 기밀 유지를 위해 국가비밀정보 취급자격을 부여하고 위반자를 엄벌한다.

정보는 최대 범위로 공개되고, 기밀은 철저히 감춰져야 한다. 그리고 모든 사실은 역사에 투명하게 기록돼야 한다. 대한민국의 신뢰 회복을 위한 유일한 길이다. 더 이상 언론의 추측과 거짓뉴스에 휘둘리지 않는 정부와 사회를 국민은 원하기 때문이다. 아무도 지울 수 없는 시스템에 모든 사실이 기록되고, 필요한 경우 사실 확인을 위해 접속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할 때 대한민국 신뢰 사회는 부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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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명 성균관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 tmchung@sk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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