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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주52시간 처벌 유예 연장" 소득주도성장 감속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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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의 ‘속도 조절’에 들어간다. 그간의 친(親)노동 일방 기조에서 벗어나 내년에는 민간 투자 확대, 규제 완화 등 친기업 정책에 무게를 둔다. 소득주도성장의 문제점을 수정ㆍ보완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정부는 17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확대경제장관회의를 열고 이런 내용의 2019년 경제정책방향(경방)을 확정ㆍ발표했다. 문 대통령이 확대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한 것은 취임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중앙일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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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우선 내년 경제성장률을 올해와 비슷한 2.6~2.7%로 전망했다. 세계 교역 둔화와 통상마찰에 따라 수출이 둔화하고 내수 부진이 우려되지만, 적극적인 재정정책으로 경기 하강을 방어하겠다는 것이다. 취업자 증가 폭은 올해(월평균 10만명)보다 개선된 월평균 15만명을 예상했다. 제조업ㆍ건설업 등에서 인력 수요가 줄지만, 청년 추가고용장려금 같은 재정 지원과 직접적인 일자리 창출 등을 통해 고용을 늘린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런 정부의 전망치는 정부의 희망이 담기는 데다, 민간에 주는 신호 등을 감안해 타 기관보다 낙관적인 편이다. 정부는 지난해 경방에서 올해 성장률을 3.2%로 예상했으나 실제로는 2.6~2.7%로 낮아졌고, 올해 취업자 증가 폭도 지난해와 같은 수준인 32만명을 예상했으나 실제로는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내년 전망치에 대해 "가용한 정책 수단을 총동원해 달성하겠다는 정부의 목표와 의지가 담겼다"며 내년도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음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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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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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경제 상황 타개를 위해 꺼낸 카드는 정책의 속도조절이다. 소득주도 성장의 부작용을 줄일 ‘안전장치’를 만드는 게 한 예다. 우선 1986년 도입 이후 한 번도 건드리지 않았던 최저임금 결정 구조에 손을 댄다. 먼저 전문가가 최저임금 인상 구간을 제시하면, 노사 위원들이 그 안에서 최저임금을 최종 결정하는 방식으로 '이원화'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지금까진 최저임금위원회가 단독으로 올해(16.4%)ㆍ내년(10.9%) 최저임금 인상률을 정했는데, 내후년부터는 이런 이원화 방식을 통해 인상 폭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주 52시간제 보완을 위해 현재 3개월로 돼 있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 시간도 6개월 이상으로 늘린다. 예컨대 일이 많으면 노동시간을 늘리고, 없을 때는 줄여 6개월간 평균 근로 시간을 1주 52시간을 맞추면 된다. 이달 말 끝나는 근로시간 단축 계도 기간(처벌 유예기간)도 연장한다. 아직 주 52시간제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상황에서 당장 내년부터 단속에 들어가면 법 위반 기업이 속출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국회는 정부 안을 토대로 12월 임시국회에서 이런 대안들을 논의하기로 했다.

그간 기피했던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민간투자와 사회간접자본(SOC)도 확대한다. 사실상의 단기적인 경기부양책으로 해석된다.

강남 집값 상승을 부추길 것을 우려해 지난 10월 ‘혁신성장과 일자리 창출 지원 방안’에서는 배제했던 현대차 신사옥(서울 삼성동 한전부지) 등 총 6조원 이상 규모의 기업투자 프로젝트의 조기 착공을 추진한다. 수도권 정비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이르면 내년 상반기에 착공에 들어간다. 또 장기간 사업이 지연된 3조원 규모의 수도권 광역 급행철도교통(GTX) A 노선(파주 운정~ 서울 삼성)을 건설하고, 8조6000억원 규모의 지역밀착형 생활SOC 예산을 조기에 집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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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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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기업들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규제도 풀기로 했다. 현재 외국인 대상으로만 가능한 도시 내 숙박공유를 연 180일 이내에서 내국인도 가능하게 법을 바꾼다. 정해진 대여ㆍ반납 장소인 차고지 제한이 없는 카셰어링 서비스가 세종ㆍ부산 등 스마트시티 시범지구에 시범 도입되며, 고혈압ㆍ당뇨병 환자가 스마트폰으로 혈압ㆍ혈당 관리를 받는 비대면 모니터링 사업도 활성화한다.

정부가 이날 발표한 16개 주요 과제 가운데 10개 과제는 혁신성장, 규제개혁, 투자 활성화, 산업경쟁력 강화, 재정을 활용한 경기 부양 등 성장을 촉진하는 정책이다. 이같은 정책 기조 변화는 최근 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 하락의 핵심 원인이 경제ㆍ민생문제에 있다는 반성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청와대ㆍ여권에서는 지지율이 50% 아래로 내려간 뒤 경제ㆍ민생에서 분위기 반전을 꾀하지 못하면 지지율이 계속 추락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익명을 요구한 여당 중진의원은 “지지층 마저 소득주도성장의 부작용에 비판을 가한 것이 뼈아팠다”라고 전했다.

산업계ㆍ학계에서는 속도 조절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기가 하강하는 상황에서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 비용 충격이 가해지면서 노동 시장이 크게 악화됐다”며 “정책은 좋은 의도와 관련 없이 부작용이 심하면 궤도를 수정하는 것이 맞으며, 지금은 그 신호를 시장에 보내줄 때”라고 조언했다.

세종=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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