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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나는 오늘 카카오톡을 삭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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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톡 없이 하루 살아보기에 도전

어색한 시작…아날로그 시절로 회귀

불필요 업무 ↓…텍스트 대신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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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유병돈 기자] 카톡, 까똑! 카~카오 톡!

남녀노소 누구나 쓰는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 그 손쉬운 소통법에 익숙해진지 이미 몇 년이다. 그런 카카오톡을 삭제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소통에서 제외되고 무리에서 소외되며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질까. 아니면 카카오톡이 없던 그 시절에도 그랬듯 아무 일 없이 살아가게 될까.

올 2분기 기준 카카오톡의 월간 실사용자 수는 4358만명(글로벌 5011만명)이었다. 사실상 국내 스마트폰 이용자 전부가 카카오톡을 메신저로 이용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그래서 해봤다.

석간 매체에 다니는 기자의 평소 기상 시간은 오전 4시30분 안팎이다. 그러나 이날만큼은 카카오톡을 삭제하기 위해 30분가량 일찍 눈을 떴다. 먼저 스마트폰에 설치된 카카오톡 어플리케이션을 제거했다. 그리고 업무용 노트북에 깔린 PC 카카오톡도 삭제했다. 하루에도 수많은 취재 지시와 제보, 정보 공유가 카카오톡으로 이루어져온 만큼, 기대와 걱정이 교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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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감과 불안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동이 트기도 전인 새벽 4시, 스마트폰 활용도 지분 대부분을 차지하는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을 과감하게 삭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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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잊혀진듯…어색하게 시작한 아침

오전 06:00 - 평소와 다른 시작
본격적으로 기자의 카카오톡이 활동을 시작할 시간이었다. 사회부 사건팀의 막내인 후배 기자가 ‘서울 지역 집회 및 시위 일정’을 팀 단체 대화방에 올리는 시간이 이때쯤이다. 하지만 카카오톡이 지워진 기자의 스마트폰에서는 아무런 알람도 울리지 않았다. 담당하는 지역에 특별한 일정이 있는지만 가볍게 살펴보는 정도지만, 평소와 다른 하루의 시작에 어색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오전 06:30 - 팀장과의 데면데면한 통화
사건팀의 특성상 대부분 팀원들이 사무실이 아닌 담당 경찰서 등 현장으로 출근한다. 이 때문에 평소 카카오톡으로 출근 보고를 하는데, 이날만큼은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문자로 출근 보고를 할까 하다가 아무래도 통화가 낫겠다는 생각에 팀장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모처럼의 ‘선(先) 전화’에 놀란 듯한 팀장은 “문자나 전화는 되는 거지? 잘해봐”라며 어색한 응원 메시지를 던졌다.

오전 07:00 - 준비 태세와 방해 공작
전날 잠들기 전 미리 준비해 놓은(평소에는 대개 그렇지 않지만) 오전용 개인별 취재 보고를 메신저를 통해 사건팀 막내 기자에게 보냈다. 대신 팀 대화방에 올려달라는 말과 함께 부서 내 주요 공지사항이나 팀장 지시사항 등이 있으면 전달해 달라고 부탁했다. 고작 한 기수 차이밖에 나지 않는 막내 기자는 “선배, 그냥 딴 거 하시면 안 돼요?”, “그런 걸 전달 못 받아야 진짜 체험 아닐까요”라며 귀찮은 티를 팍팍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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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 올라오는 주요 공지사항 및 취재 지시 등을 전달해 줄 수 있냐는 부탁에 후배 기자는 위와 같이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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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08:00 - 답답함의 연속
다른 언론사 기자들이 활동을 시작하는 이 시간부터는 답답함의 연속이었다. 친분이 있는 기자들과의 단체 대화방에 각종 정보가 올라오는데, 이를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회사 동료들과는 메신저를 통해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했지만, 같은 지역을 담당하는 다른 언론사 기자들과는 연락을 할 방법이 전무했다. ‘경찰서’, ‘검찰’, ‘법원’ 등 지역 관련 키워드를 포털 사이트에서 반복 검색하며 놓친 이슈가 있는지를 꾸준히 확인했지만, 불안감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 익숙해진 탈(?) 카톡


오전 09:00 - 적응의 단계 1
고향 친구들과의 ‘송년회 모임’이 있는 날이라 총무 역할을 맡고 있는 친구에게 연락을 할 일이 생겼다. 송년회 시간이 오후 8시30분으로 정해졌는데, 기자는 퇴근이 이르면 오후 4시에서 늦어도 오후 5시 이전(아시아경제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합니다.)인 탓에 역시 퇴근이 조금 이른 친구에게 “조금 일찍 만나서 코노(코인노래방) 갈래?”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잠시 후 친구는 “갑자기 웬 문자냐?”며 질문에 질문으로 답했다. 취재 차 카톡 없이 하루 살아보기를 체험 중이라고 답했지만, 더 이상 친구의 답 메시지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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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시절을 함께 보낸 25년지기 고향 친구는 문자메시지를 사용하는 게 익숙치 않은 듯 답장을 하지 않았다. 이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확인해봤으나, 카카오톡에도 답장은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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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30 - 적응의 단계 2
지면 마감을 위해 정신없이 기사 작성을 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보통 기사 작성 중에도 끊임없이 울리던 메시지 알람이 사라지니 집중력이 올라가는 듯한 착각도 들었다. 카카오톡이 없어도 보도자료는 이메일로 꼬박꼬박 들어오고 있었다. 필요한 통계 자료 등은 ‘정보의 바다’ 인터넷에서 찾으면 됐고, 전문가 멘트를 받는 일도 문자 메시지로 시간 약속을 잡은 다음 전화 통화로 끝냈다.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는 데는 카카오톡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오전 11:30 - 적응의 단계 3
매주 금요일은 사건팀 점심식사 모임이 있는 날이다. 앞서 언급했듯 현장에서 취재와 기사 마감을 다 끝내는 팀 특성상 팀원 간 마주칠 일이 드물다는 점을 안타깝게 여긴 팀장의 배려다. 메뉴와 식당은 당일 오전 팀 대화방에서 팀원들의 추천으로 결정된다. 하지만 이날 기자는 아무런 의견 표명도 못한 채 장소와 시간이 정해지기를 얌전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부쩍 추워진 날씨에 ‘뜨끈한 국물이었으면…’하는 바람이었지만, 지상 최대 난제인 ‘점심 메뉴 고르기’를 하지 않아도 돼 한편으로는 안도감이 들었다.

■아날로그 시대로의 회귀


오후 01:00 - 스마트폰 대신 서류
점심식사 후 광화문 인근 전통찻집에서 팀 회의가 진행됐다. 팀장 주재로 신년기획 기사 관련 회의가 이뤄졌는데, 앞서 사건팀 대화방에서 기획안이 여러 차례 공지된 바 있었다. 카카오톡이 없는 기자는 팀장이 별도로 뽑아온 기획안을 서면으로 보면서 회의에 참여했다. 손바닥만한 스마트폰에 깨알같이 적힌 글자들을 보다가 큼직큼직한 글씨를, 그것도 용지에 인쇄된 채로 보니 한결 눈이 편했다. 일제히 스마트폰을 바라보고 있는 팀원들과의 위화감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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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금요일 진행되는 사건팀 회의에서 기자(오른쪽 하단)만 A4 용지에 인쇄된 신년 기획안을 들여다 보고 있다. 팀장(오른쪽 상단)을 비롯한 나머지 팀원들은 모두 카카오톡 대화방에 올라온 기획안을 살펴 보는 중이다. 사진=송승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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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03:00 - 탈 카톡이 전해준 가족 목소리
취재한 자료들을 정리하고 있는데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자료 정리가 막바지여서 잠시 후에 전화를 드릴 생각으로 받지 않았는데, 전화벨이 재차 울렸다. 급한 일인 것 같아 받았더니 “왜 답장을 안 하냐”며 잔소리가 시작됐다. 다른 이들에게 그랬듯 체험 중이라는 설명을 드린 뒤에야 “좋은 취지의 체험이다”라며 전화를 끊으셨다. 무슨 이유로 전화를 하셨는지는 굳이 다시 여쭙지 않았다. 평소처럼 안부 전화였겠거니 하는 생각에.

오후 05:00 - 탈 카톡? 탈 고민!
오전에 연락했던 친구로부터 문자 메시지의 답이 왔다. 단체 대화방에서 일찍 모일 수 있는 사람들끼리 만나기로 했으니 오후 6시40분까지 강남역 8번 출구로 오라는 얘기였다. 일반 직장인들의 퇴근 행렬이 가장 정점에 이를 시간에 강남으로 오라는 말에 시간 변경을 제안하려다 ‘이미 여러 명이 결정한 사안’이라는 생각에 알겠다고 대답했다. 다르게 생각해보니, 평소처럼 카카오톡을 사용하고 있었더라면 나 하나의 반대에 아직도 시간을 정하지 못했을 것 같기도 했다. 일정 투표 등 카카오톡에서 나오는 여러 고민들에서 자유로워진 기분도 들었다.

오후 07:30 - 강추위에도 주머니 속에 꼭 넣은 손
일찍 퇴근한 친구들을 만나 카페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기자의 스마트폰은 시종일관 롱패딩점퍼 주머니 속에 있었다. 충남 천안과 전남 여수에서 올라온 친구들과의 연락은 함께 있는 친구들의 몫이었다. 약속 장소인 참치집으로 향하는 길에도 스마트폰은 손에 꼭 쥐어진 채 호주머니 속을 떠나지 않았다. 다른 건 몰라도 살을 에이는 듯한 동장군의 강한 한파는 카카오톡을 삭제한 기자에게 ‘참 잘한 선택’이라는 확신을 심어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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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동안 '카카오톡 없이 살아보기' 체험을 한 뒤, 자정이 지나자마자 카카오톡을 다시 깔고 메시지를 확인해 봤다. 1000통이 넘었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800통의 메시지만 도착해 있었다. 80% 이상이 업무용 메시지였다. 인간 관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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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톡 없이 하루 살아보기 체험을 앞두고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할 지에 대한 걱정이 앞섰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막상 카카오톡이 없는 하루는 의외로 편안하게 지나갔다. 물론 함께 일하는 동료나 약속이 있는 지인들의 볼멘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실제로 같은 팀에서 일하고 있는 동료 기자는 “카카오톡에서 보이질 않으니 휴가자와 다를 게 없었다”면서 “몇 번이나 취재 관련 내용을 카톡 메시지로 보냈는지 모르겠다”고 투덜댔다. 그러나 다행히도 처음부터 귀찮은 티를 드러내던 후배 기자는 끝까지 주요 공지사항 등을 메신저로 전달해 주며 번거로운 하루를 무사히 넘기는 데 큰 역할을 해줬다.

하루를 마치고 집에 들어와 카카오톡을 다시 설치한 뒤, 앱을 실행해 보니 기자를 기다리고 있는 건 무려 837개의 미확인 메시지들이었다. 스팸성 메시지 4개, 풋살 용병 모집 메시지 45개, 친구 등 지인들의 일상적인 메시지 142개를 제외한 646개는 모두 업무 관련 메시지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하나하나 정독했지만 놓친 내용은 없었다.

기자는 카카오톡 없이 잘 지냈고, 세상도 카카오톡 없는 기자와 살아가는 데 별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렇게 무사히 카카오톡 없는 하루가 끝이 났다.



유병돈 기자 tamon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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