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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딸 잃은 소방관 부부'의 절규…"내 집 앞이 위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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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톡톡] 아파트 단지 등 ‘도로 외 구역’ 교통사고 증가율↑ / 관련 법안 처리 ‘감감무소식’

“5살 아이가 차디찬 바닥에서 아무 잘못 없이 생을 마감했습니다. 저는 아이를 지켜주지도 못한 엄마로, 같이 가주지 못한 엄마로 아직도 그대로 거기에 서 있습니다”

지난 5일 대전지법 제1형사부(부장 심준보)의 심리로 진행된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1년 전 아이를 잃은 한 엄마가 흐느끼며 말했다. 지난해 10월16일 딸 김모양과 함께 대전 서구의 한 아파트 단지 내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승용차에 치여 아이가 숨졌고, 자신은 꼬리뼈가 으스러졌다. 1심 재판부는 사고를 낸 A씨에 대해 금고 1년4개월을 선고했으나 법정구속했고, A씨는 형이 너무 무겁다며 항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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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한 아파트단지 내 횡단보도에서 교통사고로 숨진 김모(5)양의 어머니 구급대원. 사진은 지난 1월 인터뷰 내용. JTBC 뉴스룸 제공


올해 초 청와대 게시판을 달군 ‘딸 잃은 소방관 부부’의 최근 모습이다. 이들은 사고 직후 올린 청원에서 아파트 단지 내 횡단보도는 일반도로가 아닌 사유지로 분류돼 도로교통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법의 사각지대’가 있음을 지적했다. 현행법상 아파트 단지, 대학 캠퍼스 등 ‘도로 외 구역’에서는 과속, 중앙선 침범 등 12대 중과실 사고를 내도 가해자가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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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해당 청원이 청와대 답변 기준인 20만명을 훌쩍 넘어서자 지난 3월 당시 경찰청장이 직접 답변에 나섰다. 이철성 전 경찰청장은 소방관 부부 사례의 경우 딸 아이가 사망했기 때문에 12대 중과실 적용 여부와 상관없이 교통사고처리 특례법(교특법)에 의해 처벌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동시에 법의 허점이 있음을 인정하며 관련 부처인 국토부·법무부 등과 협의해 ‘도로 외 구역’에서 운전자에게 ‘보행자 보호 의무’를 적용하고 이를 위반 시 제재 수단을 마련하는 개선안을 마련해 2019년에 시행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국회에서도 아파트 단지 등에서 발생한 중대 교통사고의 경우 중과실 책임을 적용하게끔 하는 법안이 잇따라 발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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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TV 제공


16일 기준 올해가 보름가량 남았지만 개선안은 감감무소식이다. 국회에서 발의된 관련 법안 11건도 현재 계류 중이다. 대신 한국교통안전공단은 이번 달부터 ‘아파트 교통안전 컨설팅 서비스 특별접수’를 시작했다. 아파트 단지 내 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사망, 중상 등의 인명피해가 발생할 경우 공단의 교통안전 전문가가 현장을 방문해 사고 원인을 분석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는 ‘사후 대책’이다. 2012년부터 시행된 해당 서비스는 매년 초에만 접수가 가능했지만 이를 상시화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이 가운데 지난달 9일 울산에서 또 한 명의 초등학생이 아파트 단지 내 도로에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울산시 동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친구들과 함께 걸어가던 10살 B군은 신발 끈을 묶기 위에 쪼그려 앉았다가 SUV 승용차에 치어 현장에서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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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도로 외 구역에서의 교통사고 증가율이 일반도로보다 훨씬 높다는 분석결과가 나오면서 정부·여당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가 지난달 25일 발표한 ‘도로 외 구역 교통사고 분석결과’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삼성화재에 접수된 도로 외 구역 교통사고는 2015년 24만4435건에서 2017년 27만4597건으로 12.3%의 증가율을 보였다. 135만6287건에서 141만6744건으로 4.5% 증가한 일반도로보다 약 3배가량 높은 수치다. 접수된 교통사고 약 500만건을 분석한 결과 6건 가운데 한 건이 아파트나 대형마트 등 도로 외 교통 구역에서 일어난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임채홍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아파트 단지와 같은 구역은 보행자가 더욱 보호받아야 할 장소이며, 이를 시설물 소유자나 운전자에게 자율로 안전을 맡기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관련 법 개정을 촉구했다.

이동수 기자 samenumbe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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