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0 (토)

김용균씨 업무는 ‘불법파견’…발전5사도 알고 있었다

댓글 2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컨설팅 맡은 노무법인 보고서

‘하청 부적합 요소’ 지적

발전5사, 직접고용 끝내 거부

220쪽 보고서에 안전 내용은 없어

서부발전, 7개업체와 ‘쪼개기 고용’

10년간 숨진 7명 모두 하청노동자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지난 11일 숨진 김용균(24)씨가 소속된 한국발전기술 하청노동자들이 ‘불법파견’에 해당한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특히 원청이자 한국전력공사 자회사인 발전 5사는 이런 불법성을 확인하고도 김씨 등을 직접고용 대상에서 배제한 것으로 나타났다. 발전 5사가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 취지와 달리 ‘불법 감추기’로 대응하면서 하청노동자들을 여전히 위험 상태로 방치한 셈이다.

16일 발전 5사의 의뢰로 노무법인 서정이 작성한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컨설팅 최종보고서’를 <한겨레>가 확인한 결과, 발전 5사는 김씨가 맡았던 ‘연료환경설비운전’ 직무에 “원청 지휘·명령 관련 행태상 부적합 요소”가 있다며 불법파견 가능성을 인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원청과 하청이 맺는 ‘도급계약’은 어떤 일의 완성과 그 대가를 약정하는 것으로, 원청이 하청노동자에게 지휘·감독을 하는 등 실질적 사용자 구실을 하면 불법파견이 된다. 2004년과 2010년 각각 고용노동부와 대법원이 현대·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불법파견으로 판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발전 5사는 “계약조건 변경, 운영방식 개선을 통해 부적합 요소를 제거”해 현 상태를 유지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직접고용이 아니라, 원청의 직접적 지휘·감독이 없는 것처럼 꾸며 논란을 피하려 한 것이다. 김씨가 맡았던 연료환경설비운전 직무가 “전문성과 기술력이 필요한 업무”라 외부 전문가에게 맡겨야 하는데다, 이들을 직접고용하면 “노무관리상 상당한 혼선과 과도한 국민 부담이 우려”된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220쪽에 이르는 보고서에 간접고용 노동자의 안전과 관련한 내용은 단 한쪽도 없었다. 실상 김씨는 ‘전문 인력’으로 대우받지 못했다. 교육 2주 만에 현장에 투입됐고 2개월 만에 미숙련 상태에서 일하다 변을 당했다. 하청업체 한국발전기술 태안사업소장은 “김씨의 직무가 ‘단순 업무’라 짧은 교육만으로도 충분히 현장 투입이 가능했다”고 했다. ‘김씨가 전문 인력이었는가’에 대한 답은 상황에 따라 달랐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보고서를 살펴보면, 발전소는 연료환경설비운전 직무 외에도 다양한 직무를 하청·파견을 통해 ‘쪼개기 고용’을 하고 있었다. 한국전력공사의 자회사인 서부발전은 총 7개 업체와 하청계약을 맺어 경상정비·통신설비유지보수를 맡겼다. 경비·청소·소방방재 업무에도 하청을 통해 468명을 간접고용하고 있다. 사무보조·차량운전·조리원 등은 파견업체에서 데려온다. 쪼개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하청업체는 다시 대량의 낙탄(떨어진 석탄) 처리 업무를 재하청 주었다. 다 같은 발전소 직원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조각조각 쪼개진 일터에서 일한다.

문제는 조각난 일터의 틈으로 안전 책임도 빠져나간다는 점이다. 기업이 하청 계약을 맺는 이유는 다양한 노동법상의 사용자 책임을 벗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청은 기업 간의 계약 관계이기 때문에 원청 사업주와 하청노동자 사이에 아무런 법적 관계가 없다. 노동법의 규율도 닿지 않는다. 산업안전보건법이 원청 사업주에게 몇가지 안전조처 의무를 부과하지만 제한적이다. 정흥준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발전소 하청노동자들이 원청의 업무지시를 받으며 일하는 양상을 살펴보면, 중간에 낀 하청은 단순히 인력을 제공하고 인건비를 먹는 업체에 불과하다. 하청으로 쓰고 있지만 실상 파견이며, 파견 허용 업종이 아니라면 불법”이라고 말했다.

하청인지 불법파견인지 여부를 따질 때 법원은 ‘원청의 지휘감독 유무’로 판단하지만 현장에선 “의미 없는 형식논리”라는 비판이 나온다.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네트워크 집행위원은 “한 공간에서 일하는데 지휘감독을 안 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동안 많은 기업이 ‘우린 일절 간섭하지 않았다’는 말로 책임을 피해왔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하청노동자들은 줄곧 안전사고의 직격탄을 맞아왔다. 2008년부터 2017년 10월까지 10년 동안 서부발전에서 벌어진 안전사고 현황을 보면, 총 58건의 사고에서 7명이 숨졌는데 모두 하청노동자였다. 부상자 57명 중에서도 4명만 원청 소속이었다. 서부발전 외 나머지 4개 발전사도 상황은 비슷하다. 하청업체에서 많은 노동자가 숨지고 다치는 동안 발전 5사는 ‘안전한 사업장’처럼 보이는 착시가 이렇게 완성됐다. 발전 5사는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무재해 사업장’으로 인정받아 112억원을 감면받았다.

남성화 한국발전산업노조 사무처장은 “현재 발전 5사 원청은 하청노동자들에게 출퇴근과 휴가에 대해 일일이 지시를 내리고 있고, 이는 사실 불가피하다. 유기적 공정을 하청으로 따로 분리한 것 자체가 문제”라며 “‘정규직화 배제’를 위한 논리 만들기에 몰두할 것이 아니라 직접고용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 신뢰도 1위 ‘한겨레’ 네이버 메인 추가]
[블록체인 미디어 : 코인데스크] [신문구독]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