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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폐가로 이사간 예은이네 다섯 식구… 냉골서 겨울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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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밑 현장 르포] 겨울이 유난히 추운 사람들

다리 아픈 아빠, 시각장애 엄마… 수급비 150만원으로 한달 생활

경북 예천군 최저기온이 영하 10도를 기록한 지난 14일. 예천군 산골 마을의 김정현(59)씨 집에 들어서자 거실에서부터 냉기가 그대로 돌았다. 겨울철 3~4개월을 따뜻하게 나려면 140만원 상당의 연탄이 필요한데 지자체에서 나오는 연탄 쿠폰으로는 5분의 1분량의 연탄밖에 살 수 없다. 김씨는 "밤에 잘 때 외에는 거의 보일러를 못 튼다"며 "그나마 솜이불을 두 겹 세 겹 두껍게 덮고 자야 한다"고 했다. 아내 최순자(47)씨는 "작년 겨울 늦둥이 예은(가명·8)이가 심한 감기로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던 터라 이번에도 걱정이 크다"고 했다.

김씨 부부와 세 딸은 지난달 12일 이곳으로 급하게 이사를 했다. 집을 관리하는 조건으로 30년간 집을 빌려 살았지만 집주인이 귀농하겠다며 비워 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김씨 가족은 수중에 있던 300만원으로 같은 마을의 폐가를 사들였다. 20년간 비어 있던 집이다. 쓰러져 가던 벽을 다시 세우고 단열재와 화장실을 교체하느라 1500만원 빚을 졌다.

조선일보

지난 14일 경북 예천군에 살고 있는 김정현씨 가족 5명이 거실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있다. 반찬은 김과 멸치, 김치, 깍두기뿐이다. 연탄을 아껴야 해 밤에만 난방을 하다 보니 방엔 냉기가 가득했다. 김씨 가족은 월 150만원의 기초생활수급비로 생계를 꾸리고 있다. /성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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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 가족은 월 기초수급비 150만원으로 생계를 꾸린다. 원래 김씨는 남의 땅을 빌려 콩과 사과 농사를 지었었다. 한 달에 20만~30만원씩은 벌었지만 2년 전 교통사고로 다리를 크게 다친 후엔 그마저도 못하고 있다. 지팡이를 짚고 겨우 움직이는 정도다. 아내 최씨는 시각 장애 1급으로 일을 하지 못한다. 자녀 중 유일한 성인인 김예지(가명·25)씨도 뇌전증을 앓고 있어 경제활동을 못한다.

가장 큰 걱정은 겨울 난방비와 가족의 병원비다. 김씨는 심장질환·당뇨 등이 있어 아침저녁으로 10알씩 약을 먹는다. 딸 예지씨도 매일 뇌전증 치료제를 먹지 않으면 발작 위험이 있다. 예은이는 네 살 때 성장부전 판정을 받아 매월 50만원 상당의 성장 호르몬 주사를 맞아야 한다. 김씨는 "이것저것 빼고 나면 추가로 연탄 사기도 빠듯하다"고 했다. 김씨 가족의 이날 점심 반찬은 김과 멸치, 김치와 깍두기였다.

경남 함안군에 사는 차준수(가명·50)씨의 세 가족도 약 20㎡ 넓이의 컨테이너 박스에서 겨울을 난다. 사업 부도로 2억원 넘게 빚을 지면서 컨테이너 생활이 시작됐다. 단열재는 쥐가 물어뜯어 외풍이 그대로 들어오고, 그나마 난방을 책임지던 유일한 냉온풍기도 올해 여름 고장이 났다. 차씨는 "태어날 때부터 컨테이너에서 자라온 여덟 살 아들이 겨울날 임시 샤워실에서 목욕하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고 했다.

주거 환경이 열악한 저소득층은 겨울철 난방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다. 2015년 통계청의 인구주택 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가구의 12%가 주거 빈곤 계층이다. 시설·면적 등이 최저 기준에도 못 미치거나 컨테이너·비닐하우스 등 집이 아닌 곳에서 사는 사람들이다. 같은 해 보건복지부 조사에서는 수급자 계층의 17.9%가 "추운 겨울에 난방하지 못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기아대책은 열악한 주거 환경에 있는 가족들의 난방비와 집수리를 지원하는 '희망온' 캠페인을 2003년부터 후원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2070가구에 난방비와 월동 장비를 지원했다. 올해는 2050가구를 지원하는 것이 목표다. 기아대책 관계자는 "겨울을 나기 위해 따뜻한 손길을 기다리는 가족이 많다"고 했다.

▲후원 문의 (02)544-9544

▲후원 계좌 KEB하나은행 353-933047-37437 (사)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

[정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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