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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사람보다 소가 많은 아르헨, 아시아 식탁 넘보고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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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對中 소고기 수출 5년만에 125배]

- 중국선 1분만에 1만 마리 팔려

소고기 수출 작년보다 45% 증가

IMF 구제금융 등 경제 위기에 규제 철폐, 각국과 소고기 협상

지난달 11일 중국의 유명 온라인 쇼핑몰 '쑤닝닷컴'에선 1분 만에 아르헨티나산(産) 송아지 1만 마리가 팔렸다. 중국판 '블랙프라이데이'인 광군제(光棍節)가 시작되자마자 주문이 쏟아진 것이다. 최근 수년간 중국인들의 아르헨티나 소고기 사랑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중국으로 첫 수출이 이뤄진 2012년만 해도 수출 물량은 770t에 불과했다. 그러나 작년 중국에 수출된 아르헨티나산 소고기는 9만6632t으로 5년 만에 125배 이상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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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의 대초원 팜파스 지역에서 방목 중인 소들의 모습. 한국 영토의 6배 달하는 팜파스 지역에는 아르헨티나 인구수(4427만명)보다 많은 소(5335만 마리)가 사육되고 있다. /카르네스팜페아나스(아르헨티나 소고기 가공 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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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아르헨티나 소고기 산업은 내수용 소비에 머물렀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수출이 빠르게 늘고 있다. 아르헨티나 소고기 수출량은 2014년 21만5047t에서 작년 31만1300t으로 44.7% 늘었다. 올해 수출액은 18억8800만달러(약 2조125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작년보다 45% 증가한 수치다. 세계 소고기 수출국 순위 역시 2015년 17위에서 작년 10위로 껑충 뛰었다.

아르헨티나 소고기 수출이 활기를 얻는 배경에는 역설적으로 경제 위기가 있다. 아르헨티나는 국가 부도를 막기 위해 올해 국제통화기구(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고, 내년까지 571억달러(약 64조8000억원)를 지원받기로 한 상황이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외화벌이 창구를 확대하기 위해 무역 규제를 철폐하고 미국과 일본 등 해외 정부와의 소고기 협상에 적극 나서기 시작했다. 경제 불안에 아르헨티나 화폐 가치가 급락(환율 상승)하면서 가격 경쟁력이 생겨 수출이 증가한 효과도 있다. 페소화(貨) 가치가 지난 2015년 12월 달러당 13페소에서 현재 38페소로 2년 새 3분의 1 수준으로 폭락했다.

◇한국 땅 6배 대초원에서 방목

소고기는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자부심이다. 이들 속담 중에는 "축구, 아사도, 와인은 아르헨티나의 열정(Fútbol, asado y vino son las pasiones del pueblo argentino)"이라는 말이 있다. 아사도(Asado)는 남미의 대초원 팜파스에서 유목 생활을 하던 목동 가우초(gaucho)들이 즐겨 먹던 소갈비 구이로 아르헨티나 대표 요리다. 소금·후추 간을 한 뒤 그릴로 굽는 단순한 요리지만 특유의 부드럽고 담백한 육질 때문에 대표 요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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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양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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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기 수출력을 뒷받침하는 건 아르헨티나 인구수(4427만명)보다 많은 소(牛)다. 한국 영토의 6배(60만㎢)에 달하는 대초원 팜파스에서 방목되고 있는 소가 작년 기준 5335만 마리에 달한다. 품질도 유명하다. 세계동물보건기구(OIE) 기준에 따르면 아르헨티나는 구제역(백신접종)과 광우병 청정 지역에 해당한다. 대초원에서 곡물이 아닌 잔디를 먹고 자라난 소들은 오메가3 지방산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혈중 지방을 제거해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넘쳐나는 소로 소고기를 주식으로 삼다 보니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소고기 소비량은 세계 1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국민의 연간 소고기 소비량은 2014년 기준 1인당 41.6㎏다. 한국인의 연간 소고기 소비량(11.6㎏)의 4배 가까운 소비량이다. 1960년대에는 1인당 소비량이 100㎏이 넘기도 했다. 소가 많은 만큼 가격도 저렴하다. 아르헨티나 마트에선 스테이크용 꽃등심(Ojo de bife) 부위가 436g에 150페소(약 4500원) 내외다. 한국에서는 한우 꽃등심이 100g당 1만원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가격이 10분의 1 수준인 셈이다.

◇아시아지역 수출 물꼬 트여

그간 아시아에서 아르헨티나 소고기를 맛보긴 어려웠다. 아르헨티나 소고기 산업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5년까지만 해도 7.3%에 불과했다. 대부분 내수용이거나 수출이 돼도 남미 주변국이나 유럽용에 그쳤다. 그러나 최근 수출 확대와 함께 대(對)아시아 수출이 빠르게 늘고 있다. 견인차 역할을 하는 시장은 중국이다. 중국 수출량은 아르헨티나의 작년 소고기 수출량의 31%로 가장 크다. 중국 시장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까지 중국 수출 품목은 뼈 없는 냉동육으로 제한됐지만, 올해 4월엔 뼈 있는 냉동육과 냉장육 시장 개방에도 합의했다. 올해 1~5월 중국 수출량만 해도 약 5만8000t으로 전년 동기 대비 3만t 이상 늘어났다.

일본에 대한 수출도 올해 처음 시작됐다. 지난 5월 아르헨티나 정부와 일본 정부는 남부 파타고니아 지역산(産) 소고기와 양고기 수출·수입에 합의했다. 해당 지역은 구제역이 단 한 차례도 발생하지 않은 백신 미접종 지역으로, 아르헨티나 소고기 생산량의 약 2%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으로 보낸 첫 수출 물량은 13t에 불과했지만, 일본 수출용 소고기 200㎏을 처음 선적(船積)하던 지난 7월 23일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일본어로 "일본으로의 첫 선적이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시작됐다"면서 "매우 기쁘다" 고 밝히는 등 직접 챙기는 모습까지 보였다. 이 밖에도 아르헨티나는 최근 3년간 싱가포르와 태국, 필리핀과 베트남 등에도 소고기 수출을 시작했다. 이 국가들에 대한 수출량은 올해 1~5월 기준 약 1730t에 불과하지만,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배 이상 증가하는 등 잠재력이 큰 시장으로 보고 수출량을 늘리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아르헨티나)=안상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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