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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전교 1등들 ‘날라리 밴드’ 35년만에 학예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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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문고 32회 동창 감격의 공연

동아일보

졸업 후 35년 만인 15일 첫 학예공연을 연 서울 용문고 출신 아마추어 밴드 ‘낼모레’. 왼쪽부터 곽호신 국립암센터 교수, 서울시교육청 교육연구사 한명선 씨(객원 멤버), 배우 김재록 씨, 이윤철 삼성전자 전무, 변동욱 에이팩스컴즈 이사,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낼모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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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후 5시 서울 마포구 양화로 한 지하 소극장. 1980년대 검정 고교 교복 차림의 중년 남성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작은 무대 위에 섰다. 무대 앞 200석은 관객들로 가득 찼다.

주인공은 서울 용문고 32회 동창생(1965년생)인 곽호신 국립암센터 교수(리드 기타),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세컨드 기타), 이윤철 삼성전자 전무(드럼), 배우 김재록 씨(리드 싱어) 등으로 꾸려진 아마추어 밴드 ‘낼모레’였다.

밴드의 역사는 이들이 까까머리 고교 1년이던 198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가요제’ 열풍 속에 그룹사운드가 학생들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때다.

서울에서도 명문고로 꼽히던 용문고는 학생들의 특별활동을 전폭 지원했다. 이 전무는 “대부분 고교가 ‘야자’(야간 자율학습)를 시키던 시절, 용문고 교육 방침은 파격이었다”고 했다.

자유로운 학교 분위기 속에 문과 전교 1등이던 이준웅 교수와 이과 전교 1등이던 곽호신 교수가 학교 운동회를 앞두고 각각 ‘청군’과 ‘백군’을 대표하는 밴드를 만들었다. 마침 한국에도 불어 닥친 ‘퀸’ 등 해외 밴드의 인기 속에 멤버들은 용돈만 생기면 모아서 연습실로 향했다.

이들의 목표는 대학 입시가 끝나는 1983년 12월, 첫 공식 학예공연을 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입시 결과에 멤버들의 희비가 엇갈리면서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김재록 씨는 “어떻게든 공연을 해보고 싶어서 종로에 있던 재수학원 근처 연습실에서도 틈틈이 만났지만 결국 흐지부지됐다”고 했다.

그렇게 각자의 길을 간 친구들이 다시 밴드 활동을 시작한 건 2012년이다. 곽 교수가 “은퇴 후엔 밴드 공연으로 봉사활동을 하러 다니자”고 제안하면서 30년 전 미련이 다시 타올랐다. 각자 바쁜 일상이었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모였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근무 중인 이윤철 전무도 한 달에 한 번씩 한국에 출장 나올 때마다 연습에 합류했다.

35년 만에 새로 지은 밴드 이름은 ‘낼모레’. 어느덧 낼모레 환갑, 뭐든지 돌아서면 깜빡하는 나이가 됐지만 인생 2막은 낼모레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이날 공연은 2시간을 꽉 채워 이어졌다. 이들을 응원하는 가족과 제자, 친구들도 ‘싱얼롱’으로 노래를 함께 부르며 공연에 참여했다. 한 곡을 부르고 나면 숨이 차서 잠시 쉬어야 했지만 그때마다 박수가 쏟아졌다. ‘낼모레’ 공연은 앞으로도 매년 이어진다. 은퇴 후에는 약속대로 봉사 현장에서 활동을 이어간다고 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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