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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단독] ‘무력증강, 북한과 협의’ 군사합의 조항 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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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적 훈련까지 북 간섭 초래

“군사주권 침해” 졸속 합의 비판에

남북 합의 석달 만에 수정 추진

북, 남측 제의 받아줄지 불투명

대규모 군사훈련과 무력증강을 남북이 협의한다는 9ㆍ19 남북 군사합의서 내용을 놓고 군 당국이 수정을 추진 중이다. 정부 소식통은 16일 “9ㆍ19 남북 군사분야합의서의 ‘대규모 군사훈련 및 무력증강 문제’ 구절을 수정해 북측에 제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소식통은 “무력증강이라는 표현은 현재 쓰지 않는 용어인 만큼 남북 군사공동위원회에서 이를 상황에 맞게 바꾸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중앙일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9월 19일 오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열린 군사합의문서명식에서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서명을 마친 뒤 합의문을 들어 보이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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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남북 정상회담때 나왔던 남북 군사당국간 합의인 9ㆍ19 군사합의서의 1조 1항은 “쌍방은 대규모 군사훈련 및 무력증강 문제, 다양한 형태의 봉쇄ㆍ차단 및 항행방해 문제, 상대방에 대한 정찰행위 중지 문제 등에 대해 ‘남북군사공동위’를 가동하여 협의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명시했다. 따라서 대규모 군사훈련과 무력증강 문제는 앞으로 남북이 함께 참여하는 군사공동위에서 논의할 우선 순위가 된다.

중앙일보

남북군사합의서 1조 1항은 "(남북) 쌍방은 대규모 군사훈련 및 무력증강 문제 등에 대해 ‘남북군사공동위’를 가동하여 협의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명시했다 [자료 국방부]




국방부는 지난 13일 정경두 국방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성우회 정기총회에서도 해당 문구의 수정 계획을 설명했다. 성우회는 예비역 장성들의 모임이다. 국방부 당국자는 이 자리에서 “무력증강 등의 용어는 26년 전 남북기본합의서의 내용을 받아온 것”이라며 “지금은 사용하지 않으니 수정하려 한다”고 밝혔다.

군 당국은 단순히 옛날식 표현을 고친다는 입장이지만 군 안팎에선 충분한 논의 없이 남북 합의가 진행돼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합의서에 해당 구절을 포함하자는 북한의 요구를 일단 받아들인 뒤 문제가 불거지자 뒤늦게 손질하려 한다는 ‘졸속 합의’라는 비판이다. 대규모 군사훈련을 놓고 남북간 협의가 이뤄져야 할 경우 북한이 방어적 성격의 한국군 훈련을 놓고도 제동을 걸려 할 수 있다. 또 무력증강에서 ‘무력’이라는 용어는 군사력ㆍ전력 등을 모두 포괄하는 의미가 될 수 있는 만큼 이 구절을 손대지 않으면 북한이 전력증강 사업 자체를 문제 삼을 수 있다는 우려가 계속됐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달 20일 한국의 대공 방어용 패트리엇 미사일 PAC-2MSE 도입 결정과 에어버스사의 공중급유기 도입을 ‘무력증강’으로 규정했다. 노동신문은 “남조선 군부가 전쟁연습과 무력증강에 계속 매달리고 있다”며 “군사적 행동에 대해 여러가지 구실을 대며 정당화하고 있지만 그것은 저들의 속심을 가리고 내외의 비난여론을 모면해보려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성우회 행사에서도 해당 구절을 놓고 격한 비판이 나왔다. 예비역 장성은 “이날 행사에서 무력증강 용어가 합의서에 담긴 건 군사주권 침해에 해당한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다”며 “군 관계자가 문구 재검토 계획을 밝힌 만큼 군사합의를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북한이 군사공동위에서 남측의 수정 제의를 받아들일지는 불투명하다. 실제로 해당 구절을 합의서에 포함하는 데는 남측보다 북측이 더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대북 전문가는 “북한의 현재 태도로 미뤄볼 때 해당 구절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은 이미 남북 군사합의서를 근거로 한국군의 군사훈련과 국방예산 증액을 공개 비난했다. 북한의 대남 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는 한ㆍ미 해병대연합훈련(KMEP) 및 한국군 단독 훈련인 호국훈련ㆍ태극연습을 실시한 데 대해 지난달 15일 “군사분야 합의 위반행위”라고 주장했다. 이 매체는 지난 14일 정부가 2019년도 국방예산을 전년 대비 8.2% 증액한 데 대해서도 “군사분야 합의에 대한 노골적인 위반”이라고 규정했다.

군사공동위원장을 놓고 남북간 이견이 노출되는 점도 해당 논의를 어둡게 하는 요인이다. 국방부는 군사공동위 남측 위원장으로 서주석 국방차관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럴 경우 북측 상대는 서홍찬 인민무력성제1부상(인민군 대장)이 된다. 군사공동위원장을 차관급으로 높여 논의 속도까지 높이겠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북한은 인민무력성 내 군사외교 담당인 상장(우리의 중장) 계급의 김형룡 부상을 염두에 두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럴 경우 합참 차장과 같은 중장급 인사가 군사공동위원장을 맡는 방안도 검토해야 하는데, 합의서 문안 수정은 현역 장성 간 대화로 다루기엔 큰 주제”라고 말했다.

한편 북한은 16일 외무성 미국연구소 정책연구실장 명의의 담화를 내 “국무성을 비롯한 미 행정부 내의 고위 정객들이 신뢰 조성과는 전혀 인연이 없는 우리에 대한 제재압박과 인권소동의 도수를 전례없이 높이는 것으로 우리가 핵을 포기하도록 만들 수 있다고 타산하였다면 그보다 더 큰 오산은 없다”며 “오히려 조선반도 비핵화에로 향한 길이 영원히 막히는 것과 같은 그 누구도 원치 않는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또 “최근에는 있지도 않은 인권문제까지 거들면서 주권국가인 우리 공화국 정부의 책임간부들을 저들의 단독제재대상 명단에 추가하는 도발적 망동까지 서슴지 않는 등 반공화국 인권모략소동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날 담화는 미국 정부가 지난 10일 북한의 2인자 최용해 노동당 조직지도부장 등 정권 실세 3인을 제재한 데 대한 반발로 풀이된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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