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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기득권 세력은 ‘국회의원 증원’ 싫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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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243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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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사 기자들은 토요일이 휴일입니다. 일요일은 월요일치 신문 제작 때문에 출근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토요일에도 휴대전화를 끄고 ‘완전한’ 휴식을 취할 수는 없습니다.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뉴스가 신문보다는 방송이나 디지털을 통해 훨씬 더 많이 뉴스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시대에는 기자들의 토요일 긴장도도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토요일인 12월15일 오전 11시59분에 국회 출입 정치부 기자들의 휴대전화에 짧은 문자가 떴습니다.

“오늘 12:45 5당 원내대표 기자회견▶국회 정론관”

선거제도 개편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다는 의미였습니다. 기자들과 정치부 데스크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잠시 뒤 회견 시간이 오후 1시로 늦춰졌다는 문자가 떴습니다. 그러나 오후 1시가 돼도 회견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회견은 1시40분께로 다시 늦춰졌습니다. 국회에서 이런 상황은 대개 구체적인 표현을 놓고 막판에 뭔가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경원 원내대표가 서명하지 않고 있다는 말이 돌았습니다. 그 사이 5당 원내대표 합의문 초안이 기자들 손에 들어왔습니다.

마침내 5당 원내대표가 국회 기자실인 정론관에 나란히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원내대표들의 서명이 들어 있는 합의문이 공개됐습니다.

합의문은 모두 6개 항이었습니다. 1항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적극 검토한다”였습니다. 그런데 2항은 합의문 초안과 실제 발표된 합의문이 조금 달랐습니다.



초안)
2. 비례대표 확대 및 비례·지역구 의석비율, 의원정수(10% 이내 확대 등 포함해 검토), 지역구 의원선출 방식 등에 대하여는 정개특위 합의에 따른다.





실제 합의문)
2. 비례대표 확대 및 비례·지역구 의석비율, 의원정수(10% 이내 확대 여부 등 포함해 검토), 지역구 의원선출 방식 등에 대하여는 정개특위 합의에 따른다.

뭐가 달라졌는지 아시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의원정수 괄호 안 ‘확대’ 뒤에 ‘여부’라는 두 글자가 더 들어간 것입니다. 국회의원 증원에 소극적인 자유한국당의 요구로 의원정수 확대 부분은 막판에 조금 더 신중한 표현을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합의가 이뤄진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저희 당이 모든 여러 가지 선거제도에 대해서 가능성을 열어놓고 적극 검토하겠다는 내용입니다. 두 분이 단식을 하기 때문에 열린 마음으로 어떤 선거제도도 열어놓고 검토하겠다는 의미입니다. 무엇보다도 의원정수 문제와 권력구조 관련된 문제, 의원정수 확대 등에는 국민 공감이 반드시 필요하고 동의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앞으로 모든 제도에 대해서 열린 자세로 나와서 논의하겠다고 말씀드립니다.”

말을 글로 옮기니 조금 어색하지만 “의원정수 확대는 국민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분명히 밝힌 것입니다.

현재 국민 여론은 국회의원 증원 반대가 높습니다. 앞으로 정치개혁특위 논의 과정에서 자유한국당은 의원정수 확대에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1항에서 합의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반대할 가능성이 큽니다.

자유한국당이 반대하면 선거제도 개편은 이뤄질 수 없습니다. 의원정수 확대가 선거제도 개편의 핵심 의제로 떠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의원정수 확대에 대해서는 정당마다, 또 의원 개인마다 의견이 엇갈립니다. 정당별로는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은 찬성이고, 자유한국당은 반대입니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분명한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의원들을 개별적으로 만나보면 늘려야 한다는 당위에는 동의하지만 국민의 반대를 무릅쓸 수 있겠냐는 신중론이 꽤 많습니다.

예를 들어 4선의 이상민 의원(대전 유성을)은 국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늘리면 안 된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찬성하지만 그러려면 과감하게 지역구를 줄여 의원들이 자기희생을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상민 의원처럼 자기희생을 입에 담는 정치인은 보기 드문 경우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떨까요? 대통령이 된 뒤에는 의견을 밝힌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국회의원 시절 의원정수 확대 찬성 의견을 여러 차례 밝혔습니다.

학계에서 대부분의 정치학자는 의원정수 확대에 찬성합니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국회 정치개혁특위 간담회에서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되 비례대표 제도를 부분적으로 수용하는 ‘온건한 절충형’을 제안했습니다. 비례대표 의석수를 확대해 전체 의석수를 350~360명으로 늘리자는 것입니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 박명림 연세대 교수도 의원정수 확대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반면 장훈 중앙대 교수는 뚜렷하게 반대합니다. 장훈 교수는 “국회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를 이유로 들었습니다.

1948년 인구 2천만 대표 제헌의회도 200명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하려면 증원 불가피


자유한국당, 국민 반대 명분으로 증원 반대
더불어민주당 입장표명 없어···의원들 ‘신중’
문재인 대통령, 국회의원 시절 증원에 찬성
정치학자 다수 찬성···언론계도 찬성 늘어나


반대론 뒤엔 재벌·관료가 유포한 반정치주의
현직 기득권 축소 꺼리는 국회의원들도 반대


의원정수에 대한 언론계의 의견은 찬성이 점점 늘어가는 추세입니다.

<중앙일보> 논객 중에는 찬성 의견이 많은 것 같습니다. 김진국 칼럼니스트, 서경호 논설위원 등이 확실한 찬성론자입니다. <조선일보>에 칼럼을 쓰는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도 최근 “의원 정수를 360명으로 확대해 비례대표를 획기적으로 늘리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되 의원 특권을 없애고 국회 예산을 법률로 동결하는 게 해법”이라고 칼럼을 써서 눈길을 끌었습니다.

저도 찬성론자입니다. 국회의원 숫자를 크게 늘려야 한다고 여러 차례 글도 썼고 말도 했습니다.

반면에 <경향신문>에 칼럼을 연재하는 정치 컨설턴트 박성민씨는 의원정수를 300명으로 유지하되 비례대표를 없애고 지역구 하나에서 3~4명을 선출하는 특이한 방안을 제시한 일이 있습니다.

의원정수 확대 찬성론과 반대론의 논거를 살펴보겠습니다.

찬성론은 두 가지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나라 국회의원 300명은 너무 적습니다.

1948년 제헌의회 국회의원은 200명이었는데, 당시 우리나라 인구는 2000만명이었습니다. 대략 인구 10만명당 국회의원 한명씩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인구는 5163만명입니다. 산술적으로는 국회의원이 510명이어야 합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과 비교해도 너무 적습니다.

국회의원 숫자가 너무 적으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국회에는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라는 상임위원회가 있습니다.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도 있습니다.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도 있습니다.

상임위원회 이름이 이처럼 긴 것은 소관 업무가 너무 넓기 때문입니다. 국회의 예산 및 법안 심의가 졸속으로 이뤄지는 이유도 국회의원 숫자가 너무 적어서 업무가 과중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려면 의원정수를 확대해야 합니다.

독일은 지역구 대 비례대표 비율이 ‘1 대 1’입니다. 중앙선관위는 2015년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권고하면서 지역구 대 비례대표 비율을 ‘2 대 1’로 제안했습니다. 현재 국회 지역구 의원은 253명, 비례대표는 47명입니다. 의원정수를 300명으로 묶어두고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려면 지역구 의원을 50명 이상 줄여야 합니다.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이런 선거법 개정안을 의결할 수 없습니다. 의원들이 악당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누구든 자기 자리를 없애는 개혁을 할 수 없습니다. 의사가 자기 팔이나 다리를 자르는 수술을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려면 지역구 의원 숫자는 유지하면서 비례대표 의원 숫자를 늘려야 합니다.

의원정수 확대 반대론의 근거는 무엇일까요? 앞에서 몇 차례 말씀드렸듯 반대론의 근거는 간단합니다. ‘국민의 반대’입니다. 국회와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 다수의 정서적 반감을 거역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론’이라고 하기도 어렵습니다.

저는 반대 의견을 존중하지만 동의하지 않습니다. 반대 의견의 근거인 ‘국민의 반대’ 배경에는 정치 혐오증, 특히 대한민국 기득권 세력이 만들어서 유포시키는 반정치주의가 깔려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반정치주의에 대한 정의는 정치학자 박상훈씨가 명확하게 한 바 있습니다. “정치를 경멸하고 조롱함으로써 일반 시민들이 정치에 기대를 걸지 못하게 하거나 정치의 가능성에 대한 냉소주의를 강화시키는 태도나 경향”입니다.

“반정치주의로 이득을 보는 세력이 존재하고 그들에 의해 끊임없이 생산되고 확산된다는 점에서 반정치주의는 분명한 권력 효과를 갖는 이데올로기”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정치 혐오증으로 반사이익을 누리기 위해 기득권 세력이 만들어서 퍼뜨리는 이데올로기라는 것입니다.

기득권 세력은 누구일까요? 여러 집단이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은 재벌과 관료입니다. 이들은 정치를, 특히 국회와 정당을 끊임없이 비판하고 공격함으로써 공직선거 투표율을 떨어뜨리고, 그렇게 해서 방치된 권력을 자신들이 좌지우지하려고 합니다. 재벌과 관료가 국회의원 정수 확대에 강하게 반대하는 이유입니다.

국회의원 중에도 의원정수 확대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한겨레> 김규남 기자가 ‘김규남의 스냅 샷’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의원정수 확대에 반대하거나 오히려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를 쓴 일이 있습니다.

최근 원내대표 선거에 나섰다가 떨어진 김학용 의원(경기 안성)은 300명을 200명으로 줄이는 법안을 제출하면서 “현재 국회의원 수가 너무 많아서 의원 개인의 직무에 대한 사명감과 윤리의식이 미약해지는 측면이 있고, 국민의 국회의원들에 대한 감시 기능이 소홀해지는 문제도 있다고 보인다”고 했습니다.

김진태 의원(강원 춘천)은 “좌우, 여야를 막론하고 가장 큰 박수를 받으려면 ‘국회의원 정수를 절반으로 축소하는 법안을 발의하면 된다’ 이런 얘기를 많이 듣습니다. 그런데 360명까지 의석수를 늘린다? 글쎄요, 저도 의원이지만 이런 것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김재원 의원(경북 상주·군위·의성·청송)은 “자꾸 국민 설득하자 하는데 국민이 설득이 되겠습니까”라며 “적어도 우리 당에서는 많은 의원들과 토론을 해본 결과 현재 의석을 늘리는 선거구 제도나 선거법 제도는 반대한다, 그런 입장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의원정수를 늘려선 안 된다는 국회의원들의 명분도 한결같이 ‘국민의 반대’입니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이 국민의 뜻을 따라야 하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하지만 진짜로 그게 다일까요? 제가 보기에는 의원정수를 확대하면 자신이 받게 되는 수당이나 보좌진이 줄어드는 것을 걱정하는 사람들도 꽤 있습니다. 현직 국회의원으로서 누리는, 말 그대로 ‘기득권’이 줄어드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과거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제도를 도입할 때 기존 법조인들이 강하게 반대했던 이유가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대법원이 상고 허가제나 상고법원 설치를 요구하면서도 대법관 증원에는 손사래를 치는 이유도 비슷합니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선거제도 개편 논의가 본격화하면 국회의원 정수 확대를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질 것입니다. 국회나 여론조사기관, 언론사 등에서 여론조사도 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의원정수 확대에 찬성하십니까, 반대하십니까?

결론을 내리기 전에 두 가지만 염두에 두시면 좋겠습니다.

첫째, 혹시 나도 모르게 반정치주의에 물들어서 기득권 세력에 휘둘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본주의는 1원이 한표입니다. 민주주의는 1인이 한표입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기득권 세력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민주주의입니다. 정치입니다. 우리는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1인 한표로 직접 선출합니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입니다.

둘째, 의원정수 확대를 누가 찬성하고, 누가 반대하는지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어려운 문제에 관해 판단이 서지 않을 때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의 판단을 참고하면 큰 도움이 됩니다.

선거제도 개편은 이제 시작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선거제도 개편은 국회의원 밥그릇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린 정치개혁 과제입니다. 국회 정치개혁특위 논의 과정을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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