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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 아이돌 팬덤, 甲과 乙 사이] ①“콘서트 티켓·굿즈 안 사요”… 팬들의 이유있는 ‘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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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아이돌 산업의 규모가 확대됨에 따라 아이돌 팬덤의 영향력도 함께 성장하고 있다. 과거의 팬덤이 아이돌의 절대적인 지지자 역할을 했던 것과 비교했을 때 최근의 팬덤은 그보다 소비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하는 데 더욱 적극적이다. 이에 팬덤의 의견이 아이돌의 활동 방향을 좌우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물론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팬덤이 아이돌에 대한 애정을 기반으로 움직인다는 점은 한결같다. 때문에 더욱 막강해진 팬덤의 힘을 악용하는 사례 역시 적잖다. 갑(甲)과 을(乙) 사이에 놓인 아이돌 팬덤의 현재를 조명한다. -편집자주

헤럴드경제

마마무(사진=RB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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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손예지 기자] 아이돌 팬덤의 이유있는 ‘갑질’에 주목할 때다.

아이돌 팬덤의 사랑이 맹목적인 지지로 표현되던 시대는 끝났다. 최근 마마무 소속사 RBW를 상대로 보이콧에 성공한 팬클럽 무무가 이를 증명한다.

무무는 지난달 마마무의 소속사 RBW를 상대로 단독 콘서트 ‘2018 포시즌(4season) F/W’ 연기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냈다. ▲ 콘서트 제목에 해당하는 음반이 발매되지 않은 점 ▲ RBW의 콘서트 공지문에 지난 공연 포스터가 재사용되고 관련 정보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점 ▲ 콘서트 준비를 병행하기에 빠듯한 마마무의 스케줄을 근거로 공연의 완성도를 의심했다.

당시 RBW는 “콘서트의 성의 유무를 티켓 오픈 공지로 판단하지 말라”며 공연장 대관 문제로 일정을 변경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RBW의 대응은 무무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다. 이에 “무성의한 피드백에 동의할 수 없다”며 무무가 재반박에 나섰다. 이번에는 SNS를 통해 ‘#RBW_콘서트_보이콧’ 해시태그 운동을 전개했다. 이에 따라 상당수 팬들이 콘서트 선예매와 RBW 공식 쇼핑몰 이용 거부를 선언했다. 결국 백기를 든 쪽은 RBW였다. 공식 팬카페 투표를 거쳐 콘서트 연기를 확정한 RBW는 무무에게 “더 좋은 공연으로 찾아뵙겠다”고 약속했다.

무무의 보이콧은 두 가지 성취를 이끌었다. 콘서트 준비 기간이 연장된 덕분에 완성도 높은 공연을 보장받았고, 동시에 마마무가 여유롭게 콘서트를 준비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데 일조했다. 이와 관련해 마마무 멤버 문별은 “팬들이 우리를 걱정해준 덕분에 그 사랑을 한 번 더 느낄 수 있었다”며 “앞으로 (팬들과) 더 자주 소통하며 좋은 모습 보여드리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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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무 콘서트 연기를 요구한 팬클럽 무무의 보이콧 선언문(사진=마마무 팬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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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오늘날의 팬덤은 아이돌을 좋아하고 응원하는 위치에만 머물지 않는다. 소비자로서 양질의 콘텐츠를 얻기 위한 권리 행사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아이돌의 활동 방향에 의문점을 제기하고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공론화에도 앞장선다. 이에 무무의 보이콧과 비슷한 사례가 늘고 있다.

이달 초 서울 삼성동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이하 플레디스) 사옥에는 대량의 포스트잇이 붙어 시민들의 눈길을 끌었다. 플레디스 소속그룹 뉴이스트W의 팬클럽 러브가 부착한 것으로, 이달 중순 예정됐던 일본 음반 ‘웨이크, 엔(WAKE,N)’ 발매 기념 행사의 취소를 요구하는 내용이 적혔다. 일본 팬을 대상로 하는 이 행사는 멤버에게 사인을 받고 사진 촬영까지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러브는 이 과정에서 과한 신체 접촉이나 팬의 무리한 요구로 아티스트의 인권이 침해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러브가 수일간 온·오프라인에서 피드백을 요구한 끝에 플레디스는 지난 4일 “팬들에 심려끼쳐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행사 취소를 알렸다.

그런가 하면 아이돌 음반 수록곡을 바꾼 팬덤도 있다. 방탄소년단 팬클럽 아미가 주인공이다. 지난 9월 방탄소년단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이하 빅히트)는 일본 음악 프로듀서 아키모토 야스시와 협업을 예고했다. 이 소식은 큰 파장을 몰고 왔다. 일본 인기 걸그룹 AKB48의 제작자로 알려진 아키모토 야스시는 동시에 ‘우익’과 ‘여성 혐오 가사’로 논란의 중심에 선 인사이기도 하다. 이에 아미는 협업의 중단과 관련 자료 전량 폐기를 요구하며 보이콧 의지를 드러냈고, 빅히트도 결국 아키모토 야스시가 참여한 곡을 음반에서 제외키로 결정했다.

지난해에는 그룹 여자친구 팬클럽 버디가 공식 굿즈를 불매하겠다고 나선 바 있다. 멤버들의 전신 사진이 프린트된 대형 쿠션을 두고 성(性) 상품화라는 의혹이 제기된 탓이다. 이 논란은 여자친구 소속사 쏘스뮤직이 굿즈 출시를 철회하면서 일단락됐다. 같은 해 아이콘의 팬클럽 아이코닉도 소속사 YG엔터테인먼트(이하 YG)가 “멤버들의 건강을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스케줄, 빈약한 국내활동, 활동 계획 번복, 이미지 관리 전무, 스타일링 미개선 등 무책임한 처우를 계속해왔다”며 보이콧을 선언했다. 당시 양현석 YG 대표프로듀서는 자신의 SNS 계정에 직접 “아이코닉의 모든 요청 사항을 최대한 수렴하고자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 결과 아이콘은 올 한 해만 국내에서 네 장의 음반을 발표했다.

■ 팬덤, 甲이 되기까지… 영향력의 변천사

팬덤의 잇단 보이콧 성공 사례가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팬덤의 영향력이 소속사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음을 나타낸다.

실제로 과거 아이돌을 위해 팬덤이 할 수 있는 제한적이었다. 음반이나 굿즈를 구매하거나 공연에 참석하는 게 전부였다. 소속사가 제공하는 콘텐츠를 일방적으로 소비하는 데만 그친 것이다. 그렇다 보니 팬덤의 규모와 영향력은 별개의 문제로 여겨졌다. 일례로 1세대 대표 아이돌 H.O.T.는 2000년 서울 잠실 주경기장 콘서트에 약 5만 명이 운집했을 정도로 높은 인기를 자랑했지만, 당시의 대규모 팬덤은 H.O.T.의 해체를 막지 못했다.

2000년대 중후반 2세대 아이돌이 인기를 끌 때는 팬덤이 사회의 인식 변화를 위해 앞장섰다. 당대 가요계의 다른 장르에 비해 아이돌을 낮잡아 보는 경향이 심했기 때문이다. 이에 팬덤은 아이돌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고자 기부나 봉사활동과 같은 선행에 나섰다. 물론 소속사와의 관계에서는 여전히 주도권을 얻지 못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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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로 보는 팬덤 문화(사진=SBS, EBS 방송화면)


그러던 중 2010년대 이후 3세대 아이돌이 개체 수로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소속사와 팬덤의 구도가 역전되기 시작했다. 해마다 수십개 팀이 데뷔하는 가운데 아이돌과 소속사는 경쟁상대들을 제치고 더 많은 팬덤을 확보하기 위해 애정 공세를 펼쳐야 하는 입장이 된 것이다. 여기에 기술적으로는 SNS의 발달이 쌍방 소통의 활성화를 야기한 것도 큰 몫을 했다. 1~2세대 아이돌 팬덤이 소속사의 일방적인 공지에 따라 움직인 데 반해 3세대 아이돌 팬덤은 SNS를 이용해 궁금한 점을 직접 묻고 이에 대한 피드백을 요청하는 일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 같은 시대 변화를 활용한 것이 Mnet의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듀스’ 시리즈다. 팬 투표로 우승자를 가린다는 ‘프로듀스’ 시리즈의 규칙은 팬덤의 역할을 아이돌 기획과 제작의 영역으로까지 확대시켰다.

인기 아이돌 그룹을 다수 보유한 연예기획사 홍보 관계자는 “소속사에 직접 의견을 보내는 팬들은 이전부터 있었지만 말 그대로 ‘일부’였다”며 “‘프로듀스’ 시리즈의 출현과 SNS의 발달을 기점으로 팬들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특히 최근에는 팬들이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근거에 바탕해 활동과 관련한 개선 사항이나 바라는 점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실질적인 콘텐츠 기획이나 마케팅에 도움을 얻는 경우도 많다. 이에 내부적으로 온라인 모니터링을 통해서 최대한 팬들의 의견을 반영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그런 한편 부작용도 있다. 이 관계자는 “소속사의 공식 SNS 계정은 물론, 공개하지 않은 사무실 내선 번호로 공식 활동과 상관없는 문제에 대해 항의하는 팬들도 적잖아 업무에 곤란을 겪고 있다”며 자제를 부탁했다.

[甲과 乙 사이, 아이돌 팬덤] ①“콘서트 티켓·굿즈 안 사요”… 팬들의 이유있는 ‘갑질’

[甲과 乙 사이, 아이돌 팬덤] ②“팬들이 호구냐”… 누가 팬心을 이용하나

[甲과 乙 사이, 아이돌 팬덤] ③제3자→주인공… 미디어의 팬 활용법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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