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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영리병원을 둘러싼 해묵은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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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제주 서귀포시 헬스케어타운 내 녹지국제병원의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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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가 국내 첫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 개설을 허가하면서 논란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 제주도는 내국인 진료를 막을 수 있다고 장담하지만 한 번 빗장이 풀리면 그 여파가 전국에 잇따른 영리병원 설립 시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공공의료의 비영리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국내 의료상황에서 첫 예외가 나온 이상 의료수익만으로는 흑자를 내기 힘든 국내 의료법인들이 외국 투자자와 손잡고 높은 수익을 거두면서 세제혜택까지 누릴 수 있는 영리병원 설립에 뛰어들 ‘당근’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개원 허가가 난 녹지병원의 경우 외국인 투자기업과 같은 세제상의 혜택을 받는다. 법인세와 소득세를 3년간 전액 감면받고 그 후 2년간은 반액 감면받는다. 지방세 역시 취득세는 전면 면제, 재산세는 10년간 면제받으며 3년간 수입자본재에 대한 관세도 물지 않는다. 공유수면 사용료 등 각종 부담금은 50%, 개발부담금은 전부 면제다. 학교법인이나 사회복지법인으로 등록된 대형병원 외에 재단법인 형태나 일반 의료법인의 경우 22%를 적용받는 법인세액 중 사실상 면세 범위가 최대 50%에 그치기 때문에 영리병원을 세워 얻을 수 있는 세제혜택은 상당한 수준이다.

■내국인 진료 거부 못해 논란

중국의 국영기업인 녹지그룹이 투자해 설립된 녹지국제병원이 논란이 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병원 운영으로 생긴 수익금이 투자자에게 돌아가는 영리병원이라는 데 있다. 국내에서는 그동안 의료의 공공성을 보호하기 위해 병원 운영을 통해 얻은 이익이 인건비나 연구비, 의료시설을 확충하는 데 드는 제반비용 등에만 재투자할 수 있게 하는 비영리병원만 허용해 왔다. 그럼에도 의료법의 이와 같은 제한을 비켜갈 수 있는 우회로는 있었다. 특별자치도인 제주도와 전국 8개 경제자유구역에는 출자총액의 50% 이상을 외국인 투자로 조달하는 등의 조건을 갖추면 외국계 의료기관이 영리병원을 설립할 수 있게 허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국내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수익구조를 살펴보면 영리병원 설립은 상당한 이익을 거둘 수 있는 돌파구가 될 수 있다. 병원의 수익은 크게 진료와 수술 등으로 거두는 의료수익과 각종 부대시설 등을 운영해 거두는 의료 외 수익으로 나뉜다. 지난해 기준 국내 ‘빅5’ 병원으로 분류되는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연세의료원, 삼성서울병원, 가톨릭의료원만 보더라도 연세의료원을 제외한 나머지 4곳은 모두 의료수익에서 적자를 기록했다. 가장 적자폭이 컸던 삼성서울병원은 의료수익 부문에서 2016년 약 570억원 적자를 냈지만 지난해에는 638억원으로 액수가 더욱 늘었다. 서울대병원과 가톨릭의료원, 서울아산병원 등도 100억원대의 의료적자를 냈다.

의료수익에서 난 적자를 메우는 것은 막대한 액수의 의료 외 수익이다. 이들 대형병원에서는 장례식장이나 주차장 등 부대시설을 통한 수익이나 연구개발 과제를 수주해내는 수익규모가 1000억원대에 달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의료부문에서 나오는 적자를 충분히 상쇄하고 이익을 남긴다. 물론 규모에 따라 의료 외 수익의 규모 역시 좌우되기는 하지만 의료분야의 막대한 이익을 노리는 자본이 영리병원을 통해 이익을 사유화하려는 시도를 할 여지는 큰 것이다. 한 중형병원의 관계자는 “어느 병원이든 의료수가 때문에 의료수익은 내기 힘든 구조임을 알고 있어 최신 의료기기나 수술법을 사용하는 등 비급여 항목을 늘리는 식으로 최대한 적자를 줄이려 한다”며 “영리병원은 의료수익을 전부 비급여로 가져가고 수익규모가 큰 의료 외 수익에 대해서도 초기 세제혜택까지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향후 어떻게든 병원을 설립하려는 시도는 이어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결국 이러한 유인이 있기 때문에 첫 영리병원인 녹지병원의 개원 이후 인천광역시와 경남 창원시 등 대도시를 접한 경제자유구역을 중심으로 영리병원 설립 시도가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의료계에서는 외국계 투자기업을 내세운 국내·외 자본에 의해 의료인력을 비롯한 전반적인 의료체계가 잠식된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한다. 강지언 제주도의사회 회장은 “엄밀히 말해 영리병원에 대해서라기보다는 투자개방형 병원인 영리법인을 반대하는 것”이라며 “외국 사례를 보면 영리법인이 전체의 20%에 이른다고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탄탄한 배경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공공병원 규모가 7% 정도에 불과하다. 이번 녹지병원 허가는 자본에 대한 의료기관 개설권을 허용한 첫 번째 사례라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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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병원 설립을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제주도청 진입을 시도하자 도청 관계자들이 막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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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선 영리병원 영향 받아 의료비 폭등

게다가 외국 영리병원이라도 의료법에 따라 외국인은 물론 내국인까지 진료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진료 거부는 인정할 수 없다는 원칙 때문이다. 제주도가 녹지병원의 내국인 진료를 금지한다고 밝혔지만 논란이 사그라지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공론조사위 참여를 거부한 녹지그룹 측 대신 사업수행자 측 의견을 제출한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는 ‘내국인도 진료 가능’하다는 의견이 포함된 자료를 공론조사위에 제출한 바 있다. 다만 제주도는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제주특별법)’에 따라 개설된 녹지병원에 대해서는 제주특별법이 우선”이라며 “외국인만을 진료대상으로 제한한 조건부 개설 허가는 현행법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 법률 검토 의견”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제주특별법에는 외국 의료기관의 내국인 진료 금지에 대한 조항 자체가 없기 때문에 법적 근거가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내국인의 진료를 금지하는 조례를 만들어도 상위법의 근거가 없을뿐더러 조례는 위반해도 과태료를 내는 수준의 벌칙만 적용할 수 있어 강제성도 낮다. 내국인 진료 금지에 반발하는 녹지병원 측이 소송을 제기하면 어느 쪽이 승소할지 쉽게 전망하기 힘든 형편이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은 “내국인 진료를 거부해 의료법 위반으로 형사고발이 이뤄지고 위법 판단이 내려진다면 진료대상을 내국인으로 확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환자 생명과 관계있는 ‘진료 거부’를 명문화하는 것 역시 헌법적 가치에 비춰볼 때 가능할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의료영리화저지제주운동본부도 “현재 제주특별법이나 관련 조례에는 외국인 전용 병원으로 허가하도록 하는 법적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내국인이 영리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되더라도 건강보험 혜택은 받을 수 없다. 또 녹지병원이 성형외과와 내과 등 병세가 심각한 대신 미용 등의 목적에 중점을 둔 4개 진료과목에 한정해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이곳을 찾을 내국인은 드물 것이라고 제주도는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시민사회에서는 녹지병원의 개원 사례를 시작으로 외국계 자본과 손을 잡은 영리병원이 연달아 문을 열 가능성이 현실화됐고, 공공의료체계에 구멍이 뚫리기 시작하면 의료 불평등이 더욱 심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우석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대표는 “영리병원은 목적이 이윤 배당이므로 의료비는 비싸도 의료의 질은 낮아 해외의 사례를 보면 영리병원 환자 사망률이 비영리병원보다 1.2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영리병원은 뱀파이어 효과로 주변 비영리병원 의료비까지 높이는데, 영리병원 의료관광 성공사례로 꼽히는 태국에서조차도 의료비가 50% 폭등했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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