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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안 쓰는 물건의 월세까지 내주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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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이런 홀로

안 예쁜 미니멀 라이프

1월1일 ‘인생 최대의 정리’ 단행

아침마다 옷 입기 수월해지고

집에서 하는 일 집중력 높아져

‘자랑할 수 있는 삶’에 대한 갈망

쓰레기봉투에 담아 함께 버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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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2016년 1월1일 나의 미니멀 라이프는 시작되었다.

계기가 된 것은 그 전해, 2015년 가을이었다. 개가 죽었다. 열여덟살이었다. 목줄에 달았던 이름표 하나만 남기고 개가 쓰던 물건을 모두 정리했다. 팔목만한 작은 개 한마리의 삶이 걷히고 난 내 방은, 막 이사 온 날처럼 낯설었다. 내 방이 이렇게 넓었던가, 하고 놀라다가 문득 깨달았다. 언젠가는 내 물건들도 정리될 날이 올 것이다. 그래서 자문해보았다. ‘지금 이 방 안의 물건 중, 그날까지 남겨둘 만한 게 얼마나 될까?’ 세밑에 빌려 읽은 책 한권은, 가을 이후 계속 남아 있던 그 찜찜한 깨달음 위로 단숨에 불을 질렀다. 김윤경이 번역한 사사키 후미오의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라는 책을 읽자마자, 나는 편의점에서 100ℓ짜리 쓰레기봉투를 열장 사 왔다. 새해가 코앞인 저녁이었다.

그때 우리 집은 열릴 일 없는 수납상자로 가득 차 있었다. 그해 나와 언니는 스물네평 아파트에서 열두평짜리 투룸 빌라로 이사를 왔다. 이사를 하는 내내,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테트리스를 하는 기분’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이사 날 새벽까지 각자 ‘나름대로’ 한 정리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허를 찌른 것은 베란다였다. 베란다에 그렇게 많은 물건이 처박혀 있었을 줄이야. 나도 언니도 그걸 몰랐던 이유는 간단했다. 모두 쓸 일이 전혀 없는 것들이었기에, 수납장을 열어볼 일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이삿짐을 다 푼 뒤에도, 거실 한쪽에는 플라스틱 수납상자로 쌓은 벽이 남았다. 테트리스로 치자면 ‘게임 오버’인 상태. 부끄럽지만, 그대로 1년을 살았다. 그래서 사사키 책의 두 문장을 읽고,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물건의 집세까지 내주지 말라.”

“수납하지 말고 정리를 해라.”

언니랑 반씩 부담을 해도, 첫 월급의 4분의 1 정도가 집세로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방에도 거실에도, 사람 한명이 큰 대자로 누울 만한 틈이 없었다. 이 집에서 내가 짐보다 열세에 몰려 있다는 것은 헤아릴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집 안 가득 흘러넘쳐 있는 물건들은, 눈을 감아도 무의식까지 따라와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그러니 쉬어도 쉬는 것 같지가 않았다. 책을 한권 읽어도 잠깐 업무를 다듬을 일이 생겨도, 일단 카페에 나가곤 했다. 집에서는 집중이 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할 일 자체에다, 외출할 준비까지 덤으로 붙고 나면 모든 게 귀찮아져서 결국 미뤄버리기 일쑤였다. 미뤄놓은 일이 있으니 집안일에도 마음이 가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최대의 물건 속에서 내 일상의 가능성은 점점 최소로 줄어들었다. 그래서 한해의 마지막 밤에, 나는 (언니와) 내가 만든 수납 정글에서 탈출하기로 했다.

그렇게 새해가 밝음과 동시에, 내 인생 최대의 정리도 시작되었다. 2.5톤 트럭으로 실어 온 살림이, 이듬해 내가 독립하면서는 1톤 트럭이 헐렁할 만큼 줄었다. 처음 2주일 동안은 무지막지하게 살림을 줄였다. 집에 붙어 있는 시간은 오롯이 ‘정리’에만 매달렸다. 수납상자의 벽을 해체하기는 쉬웠다. 열고, 재활용품과 일반 쓰레기를 분류하기만 하면 됐다. 100ℓ짜리 봉투 열장을 다 채워서 버리는 데 일주일 정도가 걸렸다. 그다음 일주일은 다시 옷과 책, 주방용품, 가구 차례로 살림살이를 줄여나갔다. 나눔, 기증, 판매, 폐기.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정리를 했다. 매일 계단으로 쓰레기를 들고 나르느라 손목이 시큰거렸다.

그러나 ‘탈정글’의 결과는 훌륭했다. 첫째, 당장 아침에 옷 골라 입기가 수월해졌다. 계절마다 즐겨 입는 옷 서너벌만 남기고, 넉자짜리 양문형 옷장 하나에 1년 입을 옷을 다 집어넣었다. 입을 옷이 빤해지니, ‘옷은 많은데 입을 게 없다’고 갈등할 필요가 없었다. 바쁜 아침마다 나를 혼란에 빠뜨리던 엄청난 경우의 수는, 사실 그 대부분이 허수였던 것이다. 둘째, 오랜만에 우리 집이 좋아졌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집에서 내가 하는 일들이 좋아진 것이다. 집안일을 하든, 텔레비전을 보든 그 순간 하는 일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었다. 마치 깨끗하게 치운 책상에서 공부를 시작하는 것처럼, 이젠 더 샐 데가 없이 집중만 하면 되는 기분이었다. 전에는 그런 온전한 몰입의 순간을 느끼고 싶어서 여행에 집착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감각을 바로 내 집 안으로 옮겨 올 수 있다는 것은 아주 놀랍고도 흡족한 일이었다.

물론 마음이 마냥 개운하지는 않았다. 남의 집으로, 혹은 쓰레기 처리장으로 흩어 보낸 1.5톤의 물건들에 대한 반성에서까지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얼핏 멋스럽게 들리는 ‘미니멀 라이프’를 우리말로 옮기면 ‘최소 생활’ 정도가 될까. 애초에 최소한만 잘 샀더라면 버리는 일도 없었을 것이 자명했다. 그래서 점차 내 소비 습관에 배어 있는 ‘최대 생활’의 경향을 놓고도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자 미니멀 라이프가 생활의 모든 방면에서 효율적인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장 볼 때도 마트 할인 쿠폰은 거의 활용할 수 없게 되었고, 1+1, 대량구매 할인 등의 이점도 포기해야 했다. 한 상자 쟁이면 한병에 800원꼴인 탄산수가, 한병만 사려면 1500원인 식이었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게 한개라면, 한개만 사보았다. 그런 식으로 일단 쟁여놓고 보던 내 소비 방식을 조금씩 바꿔나갔다. 약간 싸게 들여놓은 물건들이 결국은 내 월세방을 잠식하는 것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스스로도 한번 하고 말겠지, 싶은 의구심과 함께 시작된 내 새로운 생활이 올해로 3년이 되어간다. 그사이 사회적으로도 미니멀 라이프가 잘 알려지고, 비교적 구체적인 이미지를 띤 유행으로 자리 잡은 것 같다. 언젠가 내가 좋아하는 웹툰 <어쿠스틱 라이프>에서, ‘미니멀 라이프를 위해 무인양품에 가서 일단 미니멀한 물건을 산다!’라는 댓글을 보고 무척 웃었던 적이 있다. 또 인스타그램에서 ‘#미니멀라이프’를 검색하면 나오는 18만5천여개의 ‘집스타그램’ 사진들도 그렇다. 대부분 무인양품이나 이케아를 연상시키는 흰색, 연회색, ‘오크색’의 색조를 띠고 있다. 그러나 풀옵션 원룸에서 계속되는 나의 미니멀 라이프는, 번쩍번쩍 광이 나는 붙박이 가구 사이에서 전개되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보는 것은, 나비와 코스모스꽃이 큼직하게 새겨진 사각등이다. 그렇다. 이 집의 미니멀함은 무인양품과도 이케아와도 자연주의와도 결을 달리한다.

나의 미니멀 라이프는 예쁜 집을 목표로 하는 게 아니다. 사실 나도 처음 자취를 시작했을 때는 집 꾸미기와 집 자랑에 무척 공을 들였다. 그러나 이제는, 가끔 예전에 쓰던 미니홈피와 페이스북을 볼 때면 부끄러움에 숨이 턱턱 막힌다. 그 안을 점철한 ‘나니까’와 ‘나도’의 기록들 때문이다. 그러니 어쩌면, 3년 전 겨울밤에 내가 버리기 시작한 것은 수납상자 속 물건들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에스엔에스(SNS)로 자랑할 수 있는 삶을 갈망하던 보송보송하고 소란스러운 욕심이, 제일 먼저 그 100ℓ짜리 쓰레기봉투에 담겨 우리 집에서 퇴거했을 수도.

그렇게 물건과 들뜬 감정들이 치워진 빈자리에 나는 ‘비어 있음’을 그대로 놓아두고 살고 있다. 비우고 난 집의 색과 함께 살고 있다. 나의 미니멀 라이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내년 목표는 책장을 반으로 줄이는 것이다.

유주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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