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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체코 역사로 보는 20세기 리얼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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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테이지-108] 현존하는 극작가 가운데 최고로 꼽히는 톰 스토파드(81·Tom Stoppard)는 체코 출신이다. 연극과 영화를 넘나들며 역사와 현세를 극본으로 꿰어내는 솜씨는 그만의 장기다.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인간 내면을 탐구했다면 그는 인간이 만든 흔적으로 추적하는 편이다. 국립극단이 지난달 29일부터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올린 연극 '록앤롤'은 스토파드만의 장기가 여실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그는 영국의 부조리극 전통에서 대성한 정통 극작가로 평가받는다. '록앤론'은 올해 들어서만 '애도하는 사람' '병동 소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를 연출하며 꾸준히 활동을 이어가는 김재엽 연출가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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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앤론'은 다양한 인간 군상이 출현한다. 자본주의를 오른쪽 극단에 놓았다면 왼편 끝에는 정통 마르크스주의를 놓고 곳곳에 이념 지향을 달리 하는 사람들을 배치한다. 인물 자체 만으로 벌써 20세기 역사를 리얼리즘 기법으로 충실히 구현한다. 가장 왼쪽 끝에 있는 인물은 막스다. 케임브리지대 역사학 교수로 정통 마르크시스트다. 공산주의가 무너지는 현실 속에서도 인간들이 공산주의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해 실패했다고 믿는 고루한 인물이다. 조금 오른쪽으로 이동하면 얀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막스 교수 밑에서 공부하다 체코로 이주한 지식인이다. 록앤롤 음악 마니아로 이 작품을 실질적으로 이끄는 주인공이다. 얀의 친구로 페르디난드가 나오는데 그는 적극적으로 사회 운동에 뛰어드는 지식인이다. 얀과는 이념 차이보다는 행동 양식에서 차이를 보인다. 끊임없이 비밀 경찰의 추적을 받는 그는 흡사 한국 운동권을 보는 듯하다. 얀과 페르디난드의 이념에서 좀더 오른쪽으로 가면 에스메, 앨리스, 스티븐 같은 인물이 나온다. 에스메는 막스의 딸이지만 히피다. 앨리스는 에스메의 딸, 스티븐은 앨리스의 남자친구로 자유분방한 성향을 띤다. 사실상 어떤 시스템도 거지만 이혼하고부하는 아나키스트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맨 오른쪽 끝은 나이젤과 캔디다. 나이젤은 원래 에스메의 남편이었 캔디다와 재혼한다. 캔디다는 자본주의에 충실한 칼럼니스트. 두 사람은 철저히 수익에 기반한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선정적인 기사를 쓰고 고급 아파트에 투자하는 낙으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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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길게 돌아서 인물을 소개하는 이유는 이들의 이념적 차이가 한국 현대에도 그대로 구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운동권 내부에서 흔히 고루한 마르크시스트도 있었고 자유를 추종하는 히피 혹은 아나키스트까지 다양한 군상이 모였다. 이들은 여전히 정치권에서 그룹을 형성해 나름의 이상을 구현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물론 나이젤과 캔디다처럼 자본의 논리에 충실한 사람들 또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록앤롤'은 다양한 인간의 이념적 차이에도 각자 개인으로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과정을 담담히 그린다. 이념은 이념대로 의미가 있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결국 개인으로서 인간이라면서. '록앤롤'은 스토파드의 자전적 희곡이다. 그 또한 20세기를 살아내야 했던 지식인으로서 얼마나 이념의 가치에 대해 고민했을까. 결국 '이념으로 나뉘어 미워하지 말고 차이를 인정하고 개인으로서 사랑하고 보듬어야 한다'는 다소 도덕 교과서 같은 결론으로 우리는 치닫게 된다. 미워하고 살기에는 지구에서 인간의 삶은 너무도 짧다. 권위에 저항하며 사랑을 노래한 록음악의 정신이 그런 것이 아닐까. '록앤롤'은 그것을 말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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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식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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