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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발전소 외주화 ‘30년 폭주’, 노동자 안전 팽개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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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정규직 몫 설비 정비·운전

1980년 말에 한전 자회사로

2000년대 다시 민간업체로

“한전 땐 문제 즉각 해결됐는데

하청업체에선 예산 탓 대처 느려”

“일감 배로 늘었지만 인원 그대로”

작업강도 세지니 산재 뒤따라

2013년 정비물량 입찰 의무화 뒤

하청노동자 운명도 덩달아 휘청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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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24)씨 죽음의 이면에는 ‘외주화’(아웃소싱)가 있다. 죽음의 이유를 짚으려면, 지난 30년간 진행된 한국전력공사(한전) 외주화의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 김씨가 맡았던 발전소 설비 정비·운전 업무는 애초 한전 정규직들의 몫이었다. 1980년대 말에 한전 자회사, 2000년대 다시 민간업체로 그 업무와 사람이 떠밀려 갔다. ‘효율성 제고’를 명분으로 하청업체에 관련 업무를 맡겼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안전은 점점 열악해졌다. 현재 발전 5개사의 설비 정비·운전 업무는 한전 자회사인 한전케이피에스(KPS)와 민간 하청업체 9곳이 나눠 맡고 있다.

“한전에서 일할 때는 기술 문제를 보고하면 즉각 해결됐는데 하청업체로 온 뒤에는 대처가 항상 느려요. 계약에 정해진 예산 제약 때문이래요. 지금은 문제 제기하면 ‘앞으로 계약 어려워진다’는 소리가 대번에 나와요.”

경남 고성의 삼천포발전소에서 일하는 26년 경력의 노동자 박아무개씨는 1992년 한전에 입사했다. 숨진 김용균씨처럼 컨베이어벨트 운전원으로 일했다. 한전을 평생 직장으로 생각했지만, 5년 뒤인 1997년 박씨는 한전의 자회사인 한전산업개발로 일방적으로 전적되었다. 한국산업경제연구원이 한전에 대해 경영진단을 벌여 “단계적인 민영화가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놓은 뒤에, 한전은 설비 정비·운전 업무를 차례로 회사 외부로 빼냈다. 박씨가 근무하는 한전산업개발은 100% 한전 자회사로 출발했으나 2003년 민영화되었다.

외주화는 인력 부족과 안전 문제를 불렀다. 박씨는 지난 13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한전에 재직할 때 1호기뿐이던 삼천포발전소가 이제 4호기까지 늘었다. 일감은 배로 늘었지만 근무 인원은 그대로”라고 말했다. 작업 강도가 세지니 산업재해는 필연적이다. 남성화 한국발전산업노조 사무처장은 “원청의 재산인 설비를 정비해 전기를 만드는 생산과정에 참여하는데도 주력업무와 비주력업무로 나눠 관리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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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민영화가 가속화됐다. 1999년 ‘전력산업구조개편 기본계획’에 따라 한전은 자회사 형태로 5개 발전사를 만들었다. 이들 자회사는 다시 업무의 일부를 떼어 손자회사를 만들었다. 자회사와 손자회사 지분은 조금씩 민간으로 넘어갔다. 2013년 정부는 민간 설비운전업체의 경쟁력을 키운다며 정비물량 일부에 대한 경쟁 입찰을 의무화했다. 사업을 따내기 위해 김용균씨가 일했던 한국발전기술과 같은 하청업체들은 2~3년마다 경쟁한다. 하청 노동자들의 운명은 입찰 결과에 따라 휘청였다.

강원도 영동발전소에서 일하는 김경래(40)씨는 2013년 계약직으로 한국발전기술에 입사했지만 이듬해 회사가 입찰에서 떨어졌다. “입사할 때는 1년 뒤 정규직 전환을 약속받았는데, 회사가 ‘6개월 계약 연장’과 ‘삼천포발전소 전보’를 제안했다.” 고향을 떠날 수 없던 김씨는 영동발전소 입찰을 따낸 다른 민간 하청업체로 옮겼다. 그 회사는 김용균씨가 일하던 한국발전기술이었다. 김경래씨는 월 200만원 남짓을 번다. 하지만 당장 2년 뒤에 회사가 입찰에서 떨어질까봐 늘 불안하다.

정흥준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발전소 설비운전 외주화의 경우, 사실상 노무도급에 불과해 불법파견의 소지가 농후하다”며 “기본적으로 위험한 대형 설비를 갖고 있는 제조업은 하청을 맡길 수 없도록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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