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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황진미 TV톡톡] ‘붉은 달…’ 붉은 울음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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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달 푸른 해>(문화방송)는 아동학대를 소재로 한 미스터리 스릴러다. 방송 첫 주 만에 콘텐츠 영향력지수 1위를 차지할 만큼 화제성이 높고, 시청률도 매주 상승 중이다. 2015년 <마을: 아치아라의 비밀>(에스비에스)을 썼던 도현정 작가의 치밀한 플롯과 심장을 옥죄는 연출이 매회 궁금증을 폭발시키는 엔딩을 낳는다. 김선아, 백현진, 김여진, 이이경, 남규리, 차학연의 호연으로, 개성 강하고 사실감 넘치는 인물들이 장르 마니아들을 사로잡는다.

<붉은 달 푸른 해>는 역설적인 제목만큼 문학적인 감수성을 자극한다. 무관해 보이던 죽음들이 현장에 남겨진 시구를 매개로 연결된다. 뒤늦게 연쇄살인으로 인지해 수사하는 과정에서 아동학대의 참상이 드러난다. 여기에 아동상담가 차우경(김선아)의 심리상태가 중요한 변수로 등장한다. 서정주, 천상병, 최승자의 시구를 곁들인 연쇄살인이 심리 스릴러적인 분위기와 만나 음울한 정서를 자아내며, 아동학대라는 무거운 주제와 어울려 독특한 질감을 형성한다.

그동안 웰메이드 장르물들은 주로 케이블 채널을 통해 방송되었다. 스릴러는 복잡한 플롯과 수위 높은 장면들로 인해,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며 높은 시청률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폭넓은 시청층을 염두에 둔 지상파 채널들은 로맨틱 코미디나 가족극에 주력하였다. 그러나 진부한 사랑 놀음에 식상한 시청자들이 케이블 채널로 옮겨가면서, 지상파 드라마들은 시청자들의 눈높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이류 드라마로 인식되었다. <붉은 달 푸른 해>는 최근 고전하던 <문화방송>이 시청자들에게 외면받는 현실을 직시하고, 절치부심 내놓은 역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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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는 경찰을 지나치게 무능하거나 폭력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이들은 모든 용의자들에게 합리적인 의심을 던지고, 시청자와 추리의 보폭을 맞춰가며 적절한 단서들을 내놓는다. 한국 드라마의 고질적인 병폐였던 로맨스 중독도 없다. 남형사와 여형사는 연애는커녕 농담 한마디 섞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에 오히려 이들의 개성과 비밀이 부각된다. 특히 무표정하고 건조한 말투의 여형사가 수사에만 집중하는 모습은 그동안 장르물에서조차 여형사가 얼마나 감정적으로 소모되었는지 절감케 한다.

드라마는 차우경을 지렛대 삼아 추리의 판을 뒤흔든다. 드라마 초반에 그는 경찰에게 조력자이고 시청자에게 전달자인 역할을 하였다. 불가항력의 교통사고로 소년을 치어 죽인 뒤 소녀의 환영을 보게 된 차우경은 소년의 신원을 밝히는 일에 매달리다, 사산과 이혼의 아픔을 겪는다. 그는 죽음의 현장마다 시와 학대받는 아이가 있음을 경찰에 알리고, 소녀의 환영이 이끄는 대로 방치된 아이들을 구출해낸다. 하지만 중반 이후 그는 믿을 만한 조력자가 아니다. 경찰은 차우경이 모든 살인과 연관되어 있으며, 비밀 채팅을 통해 살인을 교사한 일명 ‘붉은 울음’과 동일인이 아닌지 의심한다. 시청자에게도 차우경은 믿을 만한 전달자가 아니다. 그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잃었고, 냉랭한 계모에게 애정을 갈구하며, 피억압의 태도를 보이는 등 학대의 징후를 드러낸다. 심지어 차우경은 자신도 믿기 힘든 존재다. 그는 아버지에게 주입받은 왜곡된 기억과 아동학대범들을 향한 선명한 살의로 혼돈스러워한다. 드라마는 차우경이 아동학대범들의 죽음을 단죄로 받아들이고, 무책임한 아이 엄마에게 섬뜩한 폭력성을 드러내는 장면을 통해 차우경에 대한 의심을 증폭시킨다. 그러나 차우경 혹은 그의 또 다른 자아를 범인으로 단정 짓기에는 아직 이르다. 그보다 복잡한 단서와 함정들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연쇄살인범을 쫓는 형식을 취하지만, 누가 범인인가보다 더 중요한 화두를 던진다. 바로 아동학대를 둘러싼 사회적 담론이다. 드라마는 아동학대범들에게 우리 사회가 쏟아붓는 공분을 잘 보여주며, 아동학대범들이 아이들이 겪었던 고통을 재현하는 방식으로 죽어나가는 것을 보여준다. 살해된 자들이 죽어 마땅한 자들이었으며, 이들의 죽음으로 학대와 방임에 놓여 있던 아이들이 구출되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드라마는 그러한 심판의 논리에 올라타지 않는다. 오히려 들끓는 정의감을 서늘하게 성찰하는 편이다. 아동학대범을 엄벌하라는 시위에 가장 앞장섰던 사람이 자신의 딸을 전교 일등으로 만들기 위해 또 다른 종류의 학대를 자행하는 모습은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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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는 응징의 카타르시스에 취하기보다, 학대받는 아이들이 놓인 상황에 주목할 것을 촉구한다. 미궁 속을 헤집으면 그 안에 가정폭력의 피해자인 엄마도 있고, 너무 이른 나이에 아이를 낳고 어떻게 돌봐야 할지 모르는 부모도 있으며, 노숙을 할 만큼 열악한 처지의 엄마도 있다. 이들에 대한 실질적인 도움 없이, 아동학대범을 향한 공분을 터뜨리는 것이 학대받는 아이들을 줄이는 데 얼마나 보탬이 될 것인가. 저출생이 국가적인 재난으로 일컬어지는 시대임에도, 여전히 국가는 아이들을 부모의 손에만 맡겨둔 채 돌보지 않는다. 드라마 <마더>, 영화 <어느 가족>과 <미쓰백>, 그리고 <붉은 달 푸른 해>가 모두 올해의 작품인 것이 과연 우연일까. 양극화와 저성장의 그늘 아래, 시대가 온몸으로 내지르는 ‘붉은 울음’에 귀를 기울어야 한다.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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