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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마흔넷에 IT업계 떠나 첼로 만들며 '인생 2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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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차 현악기 제작자 이성열씨

"엔지니어로 일할 때도 음악 즐겨… 좋아하는 일을 직업 삼고 싶었다"

조선일보

/장련성 객원기자


"19년간 IT업계에서 일하면서 늘 '인생 2막'을 꿈꿨어요. 큰 회사의 벽돌 하나가 되는 것보다 혼자서 처음부터 끝까지 할 수 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죠."

현악기 제작자 이성열(57·사진)씨는 원래 공학도였다. 대학 졸업 후 컴퓨터 제조업체에서 일하던 그는 44세에 직장을 그만두고 이탈리아 크레모나로 떠났다. 인생의 두 번째 우물을 파보고 싶었다고 했다. "좋아하면서도 직업으로 택할 수 있는 일을 찾다 현악기 제작자의 길을 걷게 됐어요."

지난 5일 이씨의 작업실엔 말린 목재 50여 점이 빼곡히 쌓여 있었다. 유학 시절 구입해 보관한 나무라고 했다. 그는 "10년 이상 말려야 얇게 깎았을 때 뒤틀리지 않고 변형이 덜 생긴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만드는 것'과 '음악'이 좋았다. 성냥 끝 황을 모아 폭탄을 만들고 라디오 조립도 즐겨 했다. 클래식에 빠져 있던 여섯 살 위 누나 덕에 일찍부터 클래식 LP판을 모았다. 한양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세계 최대 수퍼컴퓨터 제조사 크레이의 시스템 엔지니어로 12년간 일하면서도 음악은 놓지 않았다. 직장인 오케스트라 '테헤란밸리'(현 서울시민교향악단) 창단 멤버인 그는 지금도 이 단체에서 첼로 주자로 활동한다.

2005년 이탈리아 크레모나로 떠났다. 현악기 명장(名匠)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가 활동했던 곳이다. 5년 과정인 '크레모나 현악기 제작학교(IPIALL)'를 3년 만에 졸업하고 '칼슨 앤 노이만' 공방에서 2년간 도제 생활을 했다. 그는 "처음엔 앉을 자리가 없다고 거절당했다"며 "매일 찾아가 '서서라도 배우겠다'고 하자 자리를 만들어줬다"고 했다.

10년 차 제작자가 된 그는 지난 5월 현악기 제작 콩쿠르인 독일 미텐발트 콩쿠르 첼로 부문에서 2위를 수상했다. 그는 "큰 나무를 깎아 다듬어 앞판 뒤판을 만든다. 수선까지 하며 만들다보니 1년 꼬박 작업해야 첼로와 비올라, 바이올린을 한 대씩 완성한다"고 했다. "해외 공장에서 찍어내 들여오는 제품과는 질적으로 다르죠. 세월이 갈수록 울림을 더해가는 악기를 만들고 싶습니다."

[조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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