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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걸을 수도, 설 수도 없었다" 故김용균씨 열악한 작업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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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탄 끼었는지 살필 땐 여차하면 기계로 빨려들어갈 듯"

김 씨 부모·동료·현장조사 관계자 등 증언

연합뉴스

타들어가는 어머니의 마음
(서울=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 14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故 김용균 태안화력 발전소 노동자 사망사고 현장조사 결과 공개 기자회견에서 김 씨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오열하고 있다. 2018.12.14 superdoo82@yna.co.kr



(서울=연합뉴스) 성서호 기자 = "하나밖에 없는 아들, 한 번도 속 썩인 적이 없는 착한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에 우리도 같이 죽었습니다. 그곳에서 함께 일하는 다른 아이들에게도 말했습니다. 거기서 빨리 나오라고요."

이달 11일 새벽 충남 태안군 원북면 태안화력 9·10호기에서 운송설비점검을 하다가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김용균(24)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는 이렇게 단장(斷腸)의 고통을 눈물로 호소했다.

김 씨는 남편 김해기 씨와 함께 이날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 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시민대책위원회' 주최로 연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김 씨는 전날 오후 2∼6시 고용노동부, 안전관리공단, 원청인 서부발전, 태안화력 협력업체인 한국발전기술과 함께 아들 김 씨가 숨을 거둔 현장을 찾았다.

현장에서 본 아들의 작업환경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다는 게 김 씨의 증언이다.

김 씨는 몇 차례 눈물을 삼키고 가슴을 움켜쥐면서 어렵게 말을 이어 나갔다.

김 씨는 "내가 이런 곳에 아들을 맡기다니, 너무 많은 작업량과 열악한 환경 때문에 말문이 막혔다"며 "어제는 기계가 멈춰 있어서 그나마 앞이 잘 보였지만, 동료들 얘기로는 평소에는 너무 먼지가 많이 날려 앞이 잘 안 보인다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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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화력발전소 노동자 사망사고 현장조사 결과 발표
(서울=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 14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故 김용균 태안화력 발전소 노동자 사망사고 현장조사 결과 공개 기자회견에서 김 씨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조성애 정책기획국장,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이태성 간사, 아버지 김해기씨, 어머니 김미숙씨. 2018.12.14 superdoo82@yna.co.kr



힘없이 울먹이며 어깨를 들썩이던 남편 김 씨는 아내의 말을 가로막더니 "너무 미치고 죽을 것만 같다. 제발 우리 아들 좀 살려달라"면서 "열악한 시설에서 우리 아들이 억울하게 죽어갔다"고 갈라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1994년생으로 올해 9월 17일 한국발전기술의 컨베이어 운전원으로 입사한 김용균 씨는 이달 11일 새벽 1시께 설비 점검 도중 기계 장치에 몸이 끼어 목숨을 잃었다.

시민대책위원회에 따르면 김 씨는 교대 근무자로 오후 6시 30분에 출근해 현장에서 컨베이어 벨트 부품인 아이들러(idler) 이상소음 발생 시 베어링 이상 유무 확인, 낙탄 제거 작업 등을 맡았다.

이날 기자회견에 나온 김용균 씨의 동료는 "김 씨가 사고를 당한 곳은 분탄이 많이 발생하는 곳인데, 분탄 때문에 아이들러에 간섭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거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조성애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정책국장은 "기계에 이물질이 꼈는지 보려면 상체를 조그만 개구부에 깊숙이 집어넣어야 하는데 작업을 하다 보면 옷깃이 눌려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현장 노동자들은 자신들도 몇 번쯤 '훅' 하는 느낌으로 빨려가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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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대책위 제공]



조 국장은 "김 군은 혼자서 6㎞에 가까운 구간을 맡아 점검했다"며 "이 구간을 하루에 3번 움직여야 하는데, 하루에 제대로 쉴 틈 없이 18㎞를 꼬박 걷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냥 걷는 것도 힘든데 낙탄을 치우면서 가야 하고, 통로가 좁고 곳곳에 물웅덩이가 있어 곡예 하듯이 움직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김용균 씨의 동료는 "작업장에는 곳곳에 턱이나 장애물이 있는 데다 각 컨베이어 벨트 위로 설치된 구간으로 넘어가면서 이동해야 할 때가 있는데 지붕이 너무 낮아서 기어가야 한다"고 말했고, 조 국장은 "600∼700m가량의 긴 컨베이어 벨트 중간에 설치된 작업용 다리를 기어서 넘나든다는 것이다. 천장만 높이면 걸어 다닐 수 있는 건데 설비 투자를 하지 않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조 국장은 이어 "통로의 공간도 좁고, 사방이 고속 회전체인 작업환경인데도 호스나 남은 자재, 석탄 때문에 보이지 않는 방지턱 등으로 걸려 넘어지기 쉬운 매우 위험한 작업환경인데도 이를 개선하지 않았다"고 규탄했다.

이들과 시민대책위는 하청에 대한 원청의 '죽음의 외주화' 때문에 김용균 씨가 사망했다면서 향후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어머니 김 씨는 "지하 탄광보다 열악한 곳이 지금 시대에도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책임지고 이 일을 이렇게 만든 사람들을 엄중히 처벌하고 하나하나 다 밝혀서 국민께 알려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so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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