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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김진호의 세계읽기]위기의 유럽 민주주의, ‘새로운 대중’이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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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프랑스 마크롱 정부의 유류세 인상 등 정책에 반대하는 ‘노란 조끼’ 시위대의 한 여성이 지난달 24일(현지시간) 파리 샹젤리제 도로의 신호등 위에 올라 프랑스 국기를 흔들고 있다. 파리|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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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은 끝났다. 지난 10일 오후 8시(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엘리제궁.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40)이 마이크 앞에 앉았다. 분장이 지나친 듯 얼굴엔 화장기가 역력했다. 한국과 프랑스 엘리트의 차이를 들라면 단연 모국어 실력이다. 어휘 선택은 물론 정확한 표준어 발음이 기본이다. 게다가 마크롱 대통령은 말의 강·약과 호흡조절에 능하다. 국립행정학교(ENA)를 졸업하고 37세에 경제장관에 올랐던 그가 아닌가. ‘분노’와 ‘병(malaise)’을 키워드로 말을 풀어나갔다.

“(일부 폭력행위에도 불구하고) 지난 몇주 동안의 사건에서 나는 분노를 보았다. … 부부 봉급생활자가 멀리 떨어진 직장에 가느라 매일 아침 일찍 집을 떠나 밤 늦게 돌아와도 한달 생활비를 맞추기 빠듯한 살림에서 오는 분노, 아이들을 돌보면서 매달을 보내도 생활을 개선할 어떠한 수단도 없기에 희망을 잃은 여성 가장의 분노. 이 용기 있는 여성들이 도로의 로터리에서 (기름값 걱정에) 처음으로 비탄하는 것을 나는 보았다. 일생 동안 아이들과 부모를 부양한 끝에 소박한 연금으로 살아가는 퇴직자들의 분노, 취약계층과 장애인들의 분노….”

왼쪽 눈썹을 내리깔면서 카메라를 직시하는 것 역시 마크롱의 특장이다. 그는 그러한 분노를 기회로 삼자고 호소했다. 지난 11월17일부터 매주 토요일 파리와 프랑스 전국을 뒤흔들었던 노란 조끼(질레존·gillet jaune) 시위 이후 첫 대국민 연설이었다. 시위를 촉발시켰던 유류세 인상은 이미 지난 5일 철회한 터였다.

마크롱 연설에 좌우 정당 비판…NYT “민주주의 새로운 위기”

시위 주도세력 없어도 공공 서비스 확대 등 전방위적 요구 분출

온라인으로 민의 모아 권력에 전달 직접 민주주의 정착 미지수

벨기에·네덜란드·몬테네그로 ‘잊힌 사람들’ 노란 조끼 만지작


그럼에도 8일 전국에서 13만6000여명 노란 조끼 무리가 거리로 나오자 마침내 ‘공화국 대통령’이 나섰다. 연설 전 4시간 동안 사회각계 지도층과 비상시국회의를 한 뒤였다.

“그들의 고통은 어제오늘 생긴 게 아니었건만 우리는 익숙해졌다. 해이해졌다. 모두가 잊히고 지워진 것처럼 느꼈다. 지난 40여년 동안의 병폐가 되살아난 것이다. 스스로를 찾지 못한 노동자들의 병, 공공서비스가 줄어들고 삶의 틀이 사라진 국토와 마을, 거리의 병, 각자의 목소리가 무시당하고 있다는 감정이 생기는 민주주의의 병….”

마크롱의 말은 노란 조끼 시위 이전과 180도 달라졌다. “최저임금 인상은 일자리를 창출하기는커녕 파괴할 것”이라던 그가 “누구든 자신의 노동을 통해 존엄하게 살 수 있는 프랑스를 원한다”면서 당장 내년 1월1일부터 최저임금을 100유로 인상하고 초과근무수당 면세를 약속했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담은 기업이 아닌, 정부가 지겠다고 했다. 월 퇴직연금 2000유로(255만원) 이하 수령자들의 사회보장기여금 인상안도 철회했다. 수익이 좋은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연말보너스를 지급한다면 보너스에 어떠한 세금도 매기지 않겠다고도 약속했다. 공분을 샀던 부유세(ISF) 폐지는 번복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1980년대 프랑수아 미테랑 사회당 정부 때 만들어져 지난해까지 재산 130만유로(17억원) 이상의 부유층에게 부과됐던 직접세다. 마크롱은 “부유세 부과 40여년 동안 과연 우리의 삶이 더 나아졌나”라고 반문하면서 “오히려 부자들이 외국으로 이주하면서 일자리를 늘릴 투자가 줄고, 프랑스는 더 약해졌다”고 말했다. 로스차일스계 투자은행에서 기업 인수·합병으로 돈맛을 본 ‘경제 대통령’다운 인식이다.

르몽드와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각국 언론은 마크롱의 ‘내 탓이오(mea culpa)’ 연설이라고 했지만 부분적 해석인 것 같다. 마크롱은 “나의 말로 여러분 중 일부가 상처받게 된 것을 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그보다는 1년 반 전 대선에서 표출된 민심의 요구에 신속한 응답을 하지 못한 데 따른 책임을 인정했을 뿐이다.

부자와 노동자 모두에게 감세를 하면서, 이날 약속한 학교교육·직업훈련 개선 및 공공서비스 확대라는 상반된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까. 마크롱은 “세금 징수를 늘리기보다는 정부지출을 줄여 재정 적자를 막겠다”고 말했다. 프랑스 기업의 경영자들은 물론, 프랑스에서 이익을 거둔 거대기업들 역시 세금을 내야 한다면서 기업세제를 깐깐하게 손볼 것임을 예고하기도 했다. 마크롱은 ‘정의’와 ‘효율’이 병립하는 균형재정을 자신했다. 하지만 자본시장은 벌써부터 미심쩍어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나 월스트리트저널 등 각국 언론이 마크롱의 ‘국민과의 새 계약’ 탓에 프랑스 경제개혁이 좌초될 것을 걱정하는 까닭이다.

마크롱의 연설 뒤 행해진 여론조사에서 노란 조끼 운동에 대한 지지율은 50% 안팎으로 내려갔다. 샹젤리제와 개선문에서의 폭력시위 다음날(2일) 조사에서 응답자의 72%가 지지한 것에 비해 여론의 지지가 확연히 줄어든 것이다.

다국적 기업 토탈과 루이뷔통(LVMH), 오랑주 등 파리 증시(CAC30) 상장 기업들 중 일부 기업은 ‘마크롱 일병을 살리자’는 프랑스경영자동맹(Medef) 호소에 마크롱이 권유한 연말 보너스 지급 방침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노란 조끼 운동은 과연 일순간의 에피소드로 끝날 것인가. 시위 5주째인 15일 프랑스 전국에서 다시 거리로 나올 노란 조끼의 숫자가 그 잣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마크롱 연설의 효과보다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노란 조끼 운동이 보여준 전혀 새로운 시위 양상이다.

세계화의 병폐가 극심해진 1990년대부터 프랑스 역대 정부가 내놓은 이른바 ‘개혁’ 조치들은 연금 납부기간 연장 및 수령액 축소, 사회보장을 비롯한 공공서비스의 축소, 노동시장의 유연화로 요약된다. 번번이 국민적 저항에 좌초됐거나 부분만 달성됐다.

13일 현재 70여만명이 참가한 노란 조끼 운동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시위였다. “모두 함께(Tous emsemble)”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던 1995년 총파업은 알랭 쥐페 총리의 공공부문 연금제도 및 사회보장제도 개혁에 반발해 일어났다. 하루 최대 200만명이 총파업시위에 나섰다. 2006년 3월 우파정부의 도미니크 드 빌팽 총리가 청년들의 취업 첫 2년간 해고를 자유화한 최초고용계약(CPE) 반대 시위에도 하루 최대 150만명이 참가했다. 파리에만 70만명이 운집했다. 민심의 반발을 야기한 정부 개혁안의 내용은 당시가 더 광범위했다. 그렇다면 시위 규모도 정부 개혁안도 미미한 노란 조끼 운동을 왜 주목해야 할까.

노란 조끼 운동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불과 1년여 전만 해도 프랑스 정치를 위기로 몰고 갔던 좌·우 포퓰리즘이 중심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1995년 총파업은 프랑스 민주동맹(CFDT)·노동총동맹(CGT)·노동자의 힘(FO) 등 3대노조가 앞장을 섰다. CPE 반대 시위는 대학생들이 주축이 돼 일반 시민이 동참했다. 2016년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국민투표(브렉시트)와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글로벌 트렌드가 된 포퓰리즘은 프랑스에서도 기성 제도를 뒤흔들었다. 지난해 4월, 5월 대선에서 세계화의 부수적 피해자 정도로 기성 정당의 외면을 받았던 ‘잊힌 그들’은 포퓰리즘에 열광했다. 이번엔 증오와 분노의 배출구가 되지 않았다. 페이스북을 비롯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도구였지만 특정 지도자가 없이 모두가 나선 수평적 플랫폼이었다.

마크롱의 연설 뒤 극우 지도자 마린 르펜은 “마크롱이야말로 야만적인 세계화의 전조”라면서 “자신의 (경제)모델 자체가 시험대에 올랐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극좌 ‘프랑스 앵수미즈(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의 장 뤼크 멜랑숑은 “돈을 나눠주는 것으로 반란이 진정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마크롱은 틀렸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누구도 노란 조끼 운동의 흐름을 주도하지는 못했다. 조력자 또는 관찰자의 역할에 만족해야 했다. 르펜의 극우와 멜랑숑의 극좌 지지자가 절반쯤 될 것으로 추산(르몽드)될 뿐이다. 정확한 실체는 알 길이 없다. 시위 지도부가 없다는 것은 대화와 타협을 통한 문제해결 방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말해준다. 실제로 마크롱 정부는 뒤늦게 위기를 감지하고 대화를 모색했지만 파트너를 찾을 수 없었다.

인터넷 투표를 통해 제시한 노란 조끼 시위대의 42개 요구조건은 유류세는 물론 에너지소비세·부가세 등 세제 개편, 주거, 교육, 사회보장 강화, 경제·사회 현안에 대한 국민투표, 스위스식 직접 민주주의 등 광범위하다. 유럽연합의 이민정책 반대라는 극우의 주장도 일각에서 제기됐다. 지도부가 없고 요구사항이 전방위적이었다. 르몽드가 페이스북 계정을 추적해 찾아낸 중심 인물은 8명에 달했지만 위계질서를 찾기는 어려웠다. 우리의 촛불혁명의 경우 초반부터 조직과 자금, 다채로운 시위 프로그램을 제공한 주체가 있었다.

제도권에서 보면 대화 상대방이 없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새로운 위기(뉴욕타임스)라는 논평이 나오는 게 자연스럽다. 하지만 제도권 언론이 언제 변화를 예측한 적이 있던가. 현시점에서 노란 조끼 운동의 성격과 전개방향을 규정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한 것 같다. 세계화 이전 길거리의 민심을 끌어안았던 좌파정당과 거대노조, 대학 등 기성 제도는 차례로 기대를 잃었다. 극좌와 극우로 쏠린 포퓰리즘도 믿음직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시민들이 온라인에서 직접 민의를 모아 권력에 전달하는 노란 조끼 운동이 직접 민주주의로 자리 잡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세계가 여전히 포퓰리즘병을 앓고 있는 동안 노란 조끼 운동이 ‘포스트 포퓰리즘’의 가능성을 내보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벨기에, 네덜란드, 몬테네그로 등 유럽 각국의 ‘잊힌 그들’도 노란 조끼를 입기 시작했다.

시위 와중에 마크롱 지지율이 작년 4월 대선 1차투표에서 그의 득표율(23.86%)과 비슷해졌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작년 프랑스 대선과 6월 총선을 관통했던 큰 흐름은 구체제 정당과 인물의 청산을 뜻하는 ‘데가지즘(Degagisme)’이었다. 그 바람을 타고 당선된 마크롱이 청산 대상으로 전락할지, 성공한 개혁가가 될 것인지는 부수적인 관심이다.

<국제전문기자 j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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