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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여행] 발길 닿는대로 마음 닿는대로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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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가기 전에… 감성 돋는 청주여행

매년 그렇지만 이맘때 ‘순식간’이란 단어가 많이 떠오른다. 분명 달력의 1월 1일을 보며 ‘새해가 시작됐구나’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달력의 마지막 장이다. 더 이상 달력을 뜯거나 넘기기보다 새로 시작할 달력을 찾는 때가 왔다. ‘뭐 한 것도 없는데 이리 지나갔지’란 생각이 든다. 괜스레 마음이 뒤숭숭해진다. 올해가 가기 전 매일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삶. 사람들과 부대끼며 치였던 일상을 한 번은 멈추고 싶어진다. 그래야 아쉬움이 덜 남을 듯싶다. 멋들어지고, 화려한 풍광보다는 차분히 한 해를 정리할만한 소소하게 ‘씨익’ 미소 한 번 지을 수 있는 여행지가 어울릴 때다. 친구끼리, 연인끼리, 부부끼리 서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발걸음을 맞춰 걸을 수 있는 마음 편해지는 여행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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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 정북동토성은 옛 모습을 간직한 성터로, 해지기 직전 새로운 모습을 담을 수 있다.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한 여행자의 다양한 실루엣이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진다.


◆내가 주인공이 되는 감성 여행

과거 충북 청주와 청원은 다른 행정구역이었다. 청주와 청주를 둘러싸고 있는 청원 지역이 2012년 합쳐져 한 지역이 됐다. 청주와 청원의 분위기는 사뭇 차이가 난다. 도시에서 즐길 수 있는 골목길 감성 여행과 대청호를 둘러볼 수 있는 생태 여행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원하는 대로, 취향대로 골라 걷는 재미가 있다.

청주 도심을 벗어나 북쪽 미호천 방향으로 향하다 철길을 건너면 불쑥 흙담이 솟아 있다. 사람 키보다 조금 더 높은 옹벽이 사방으로 담을 쌓고 있다. 주차장의 표지판에 쓰여있는 토성 안내문을 보고서야 이곳이 과거 성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높은 돌담으로 둘러싸인 성곽을 생각하면 안 된다. 이름도 흙으로 쌓여 있는 곳이기에 정북동 토성이다. 누구나 몇 걸음이면 성벽 위에 올라설 수 있다. 성벽 위에서 내려다보면 넓지 않은 부지 주위를 토성이 사각형 형태로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성 밖으로는 방어시설인 해자가 파여 있다. 그게 전부다. 성에 대해 좀 더 부연하면 청동기 말기나 원삼국시대인 2∼3세기경 처음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토성 중 흔적이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성으로 알려지고 있다. 성벽의 높이는 3.5∼5.5m, 성벽의 길이는 155∼185m로 폭이 2m 정도인 성벽 위에 올라 한 바퀴 돌아보는데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는다. 후백제 때 견훤이 이곳을 창고로 이용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는데, 넓지 않은 부지에 어떤 건물들이 들어섰을지 상상력을 동원해 그림을 그려봐야 한다.

그저 옛 모습을 간직한 성터일 뿐 여행지라고 하기엔 많이 부족한 곳이지만, 해지기 직전 도착하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단순히 풍경이 주인공이 아니다. 오롯이 여행자 본인이 주인공이 되는 풍경이 펼쳐진다. 성벽 위에 올라서서 하늘 한 편이 서서히 붉게 물드는 모습에 빠져들 수 있다. 하지만 그 모습보다 성 밖에서 노을을 바라보며 감탄하는 성벽 위 여행자의 실루엣을 담을 수 있기에 특색 있다. 혼자서 유유히 걸어도 좋고, 커플이라면 살짝 애정표현도 좋다.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실루엣에 등장하는 인물이 본인이란 것을 아는 사람은 자신과 찍어주는 이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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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여도 버팀목 역할을 하는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으니 그리 외로워 보이지 않는다.정북동 토성이 해질 녘 감성을 자극하는 곳이라면, 청주 시내에 있는 상당산성은 성곽을 돌아보며 청주 시내를 내려다보고, 성내 식당에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여행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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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산성에선 성곽을 돌아보며 청주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다.


겨울이면 눈썰매장으로 변하는 공터를 따라 오르면 출발점인 남문 공남문이다. 성곽을 한 바퀴를 돌아도 좋지만, 서문까지 성곽 위를 걷다 성내 식당들이 있는 곳으로 내려가는 코스가 일반적이다. 4.2㎞ 정도의 성곽 전체를 도는데 1시간 30분 가량이 걸린다. 산성이기에 오르내림이 있다. 백제시대부터 토성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는 상당산성은 임진왜란 때에 일부 고친 후 숙종 때 화강암으로 석성을 쌓았다. 성의 규모가 작지 않지만, 후삼국시대 견훤과 왕권이 전투를 벌인 후 큰 싸움이 벌어진 적이 없다. 그렇기에 지금도 외형이 잘 보존돼 있는 편이다. 산성은 잘 보존돼 있지만, 성내에 식당뿐 아니라 마사지샵 등 산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가게들이 눈에 띄는 점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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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수암골은 ‘청주의 마지막 달동네’로 불렸지만, 지금은 벽화마을로 유명하다. 아이들을 소재로 한 벽화와 연탄을 소재로 한 그림들이 눈길을 끈다.


청주의 풍경을 담을 수 있는 곳으로는 수암골도 있다. ‘청주의 마지막 달동네’로 불렸지만, 지금은 벽화마을로 유명해져 카페들이 곳곳에 들어서 있다. 6·25 전쟁 이후 피란민들이 정착한 산비탈 마을이다. 전국에 많은 벽화 마을이 있지만, 수암골은 지역 주민들과 의견을 주고 받아 작품을 그려 그림에 정감이 간다. 젊은이들이 마을을 떠나 아이들이 주는 것이 아쉬워, 아이들이 술래잡기를 하거나, 뛰어 노는 모습을 소재로 그린 벽화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원하는 주민들의 바람이 그려진 셈이다.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소나무와 학이 등장하고, 빨래터 풍경이나 연탄이 소재로 사용됐다. 수암골은 ‘김탁구 마을’로도 알려져 있다.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실제 촬영지로, 마을 초입엔 팔봉제빵점이 남아있다. 제빵점에선 아직도 드라마에 나온 봉빵 등을 판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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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대청댐 전망대에서는 평화롭게 흐르는 금강 물줄기를 조망할 수 있다.


◆호반 풍경에 젖어드는 사색 여행

“그 우물 안 먹겠다고 침 뱉고 가더만 그 물 마신다는 속담이 있는데 딱 그 짝이여.”

청주를 감싸고 있는 청원에서 대청호 풍경을 담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 중 하나가 구룡산 기슭에 있는 현암사다. 대청호를 오른편에 끼고 달리다 나오는 전망대 인근에 있다. 계단을 꽤 올라야 한다. 10여분 정도 오르면 계단 끝에 있는 작은 절집이 나온다. 절집에 이르는 순간 ‘내륙의 바다’ 대청호가 펼쳐진다. 호수 중간중간 산봉우리들이 섬처럼 솟아 있다. 절집은 규모가 작은 만큼 고즈넉하다. 마당에 놓인 평상에 앉아 가만히 대청호를 바라보고 있어도 그리 눈치를 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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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처한 지역 문화재, 민가 등 유형·무형 문화재 등을 이전 복원한 문의문화재단지.


호수를 가슴에 충분히 품은 후 보살과 현암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청남대 때문에 절집이 없어질 뻔했다며 속담 하나를 툭 던진다. 대청호에 있는 옛 대통령 별장 청남대를 조성할 때 현암사에서 청남대가 내려다보이자 ‘높으신 분’이 절집을 없애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다행히 현암사는 없어지지 않았는데, 절집을 없애라고 한 이는 물러난 후 설악산 백담사에서 숨어 지냈으니 아이러니가 따로 없다.

‘높으신 분’ 시절인 1983년에 지은 청남대는 노무현정부때인 2003년 일반에 개방됐다. 신록이나 단풍이 없는 시기지만 청남대는 관리가 잘돼 있고, 역대 대통령 관련 시설들이 있어 둘러보기 좋다. 역대 다섯 명의 대통령이 89회를 이용했는데, 청남대 조성 초기엔 대통령이 내려와 있는 동안 인근 마을은 해가 지면 통행이 금지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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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별장이었던 청남대는 2003년 일반에 개방됐다.


역대 대통령 이름을 딴 산책길은 이명박 전 대통령까지 6곳이 조성돼 있다. 길게는 1시간 30분, 짧게는 20분이 걸리는데, 저마다 특색이 달라 골라 걷는 재미가 있다. 과거엔 이곳을 경비하던 부대가 있었는데, 지금은 민간에서 관리해 유지 비용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청남대 안에 주차를 하려면 방문 하루 전날까지 예약을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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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구룡산 자락의 현도장승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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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동창작마을엔 나무에 앉아 있는 새끼 사자 등 눈길을 끄는 작품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으리으리하고, 붐비는 청남대와 달리 호수 건너편에 있는 문의문화재단지는 분위기는 정반대다. 대청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처한 지역 문화재, 민가 등 유형·무형 문화재 등을 이전 복원한 곳이다. 옛 생활상을 보여주기 위해 조성된 곳이지만, 대청호를 내려다보는 전망대 외에는 여행객의 관심을 끌기엔 매력이 크지 않다. 오히려 인근에 있는 장승공원과 마동창작마을이 정감 있다. 구룡산 자락에 있는 현도장승공원(구룡산장승공원)엔 정상까지 500여개의 장승이 세워져 있다. 2004년 폭설로 마을이 큰 피해를 입었는데, 쓰러진 나무로 주민들이 웃음과 익살 넘치는 장승을 만들었다고 한다. 웃음과 익살보다는 혼자 장승공원을 둘러보면 섬뜩한 느낌이 들 정도로 표정이 험상궂다. 마동창작마을은 작업공간과 전시공간으로 사용되는 폐교다. 건물 안에는 커피나 컵라면을 무인함에 돈을 내고 이용하는 ‘셀프 카페’가 있다. 나무에 앉아 있는 새끼 사자와 녹슨 물고기 등 눈길을 끄는 작품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청주=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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