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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4년전에도 똑같은 ‘비정규직 참변’…변한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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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보령화력 발전소에서

홀로 밤근무하던 아기 아빠도

컨베이어에 끼여 숨진 채 발견

안전 위한 2인1조 도입은 외면

사고 사망자 10%가 ‘기계 협착’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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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력발전소 안에서 야간 근무를 하던 젊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컨베이어벨트에 몸이 끼여 숨졌다. 한 사람은 2018년 12월11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숨진 김용균(24)씨, 또 다른 사람은 2014년 11월18일 충남 보령화력발전소에서 숨진 30대 초반 박아무개씨다. 박씨는 태어난 지 100일도 안 된 딸아이를 둔 아빠였다.

날짜와 장소만 달랐을 뿐, 두 사고는 닮은꼴이었다. 두 발전소는 직선거리로 60㎞ 떨어져 있을 정도로 가깝다. 박씨의 죽음 뒤 4년이 흘렀지만, 위험에 내몰린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지는 달라지지 않았다. 비상정지장치(풀코드)만 설치됐을 뿐이다. 그조차 2인1조 근무 체제가 도입되지 않아 무용지물이었다. 그렇게 억울한 죽음이 반복됐다.

13일 <한겨레>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2014년 보령화력발전소 사고 조사보고서를 입수했다. 보령화력발전소(한국중부발전 보령화력본부) 내 탈황설비에서 현장운전원으로 일하던 박씨는 2014년 11월18일 밤 9시20분께 건물 3층에서 김용균씨처럼 컨베이어에 끼여 숨진 채 발견됐다. 박씨도 김씨처럼 발전소 운전·정비 업무를 하청받은 한전산업개발 소속 비정규직이었다. 그도 김씨처럼 담당구역 순찰, 설비 운전상태 점검 등을 했다. 둘 다 4조2교대로 일했다.

사고가 일어난 당일 박씨는 야간 근무였다. 저녁 6시30분에 출근해 다음날 아침 7시에 퇴근할 예정이었다. 탈황설비는 화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오염물질인 황산화물을 제거하는 곳이다. 컨베이어벨트가 황산화물 제거 때 쓰이는 석고를 운반한다. 김용균씨가 컨베이어에서 낙탄(떨어진 석탄)을 제거하듯이, 박씨도 중간중간 컨베이어벨트 위 석고의 움직임을 바로잡아줘야 했다.

박씨도 김씨처럼 홀로 죽음을 맞았다. 사고 목격자도 없었다. 폐회로텔레비전(CCTV)은 고장나 있었다. 박씨는 컨베이어벨트 바로 옆 통로의 안전난간을 넘어 벨트 위로 올라갔다가 넘어져 기계 안으로 말려들어간 것으로 사고 조사보고서는 추정했다. 김용균씨와 달리 주변에는 ‘풀코드’(레버를 당겨 기계를 정지시키는 장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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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가 일어난 이후 조사를 맡았던 근로감독관 등은 문제점을 지적했다. 정비 등의 작업을 할 때는 기계 운전을 정지해야 하고(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92조), 비상정지용 장치를 설치해야 하며(규칙 192조), 이상을 발견하면 제어실 담당자에게 연락해 설비 가동을 중지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회사 쪽은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됐지만 1·2심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컨베이어벨트 모든 곳에 비상정지용 장치를 설치할 수는 없다는 등의 이유로 무죄가 되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산안법상 사업주가 안전·보건 의무를 소홀히 해서 노동자가 숨지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지만, 실제 징역형을 선고받는 경우는 피의자의 1%도 되지 않는다.

박씨와 친하게 지냈다는 이태성 발전비정규직연대회의 간사는 “사고 뒤에 안전난간과 비상정지장치가 추가 설치됐지만 석고나 석탄을 제거할 때마다 컨베이어벨트를 멈출 수는 없는 일이고, 분진 때문에 폐회로텔레비전으로 작업자 안전을 모니터링하기도 어렵다”며 “2인1조로 일해야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보령화력발전소 박씨의 죽음이, 태안화력발전소 김씨의 죽음을 막는 교훈이 되지는 못했다.

박씨와 김씨처럼 컨베이어벨트에 몸이 끼여 숨지는 이는 해마다 7~8명에 이른다. 지난해 기계·기구에 몸과 옷이 끼여 숨진 노동자는 102명이었다. 해마다 100명 이상의 노동자가 이렇게 숨진다. 전체 산업재해 사고 사망자 가운데 끼임(협착) 사고 사망자는 10명에 1명꼴로 ‘추락’ 다음으로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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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득 의원은 “경제적 효율만 따진 민영화와 외주화로 노동자의 안전은 뒷전으로 밀렸다. 수익구조가 열악한 하도급 업체들은 인력을 줄이고, 안전 설비에도 충분히 투자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이런 구조를 바꾸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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