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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IF] 킬러앱 제시하지 못한 로봇 기업들… 줄줄이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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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미국의 로봇리포트는 "보스턴의 로봇업체인 지보가 지식재산권을 뉴욕의 투자사에 매각하면서 사실상 문을 닫았다"고 보도했다. 지보는 세계적인 인공지능 연구자인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신시아 브리질 교수가 2010년 창업한 회사로, 세계 최초로 인간과 교감할 수 있는 동명(同名)의 '소셜 로봇'을 개발했다. 지난해 미국 주간지 타임지는 지보를 '올해의 혁신 기술'로 선정해 표지에 실었다.

전 세계 로봇업계를 선도하던 스타 기업들이 잇따라 몰락하고 있다. 역시 MIT의 로드니 브룩스 교수가 만든 리싱크 로보틱스는 지난 10월 회사를 청산했다. 이 회사는 이른바 '협동 로봇(Cobot)' 개념을 처음 만들었다. 이미 입력된 프로그램대로만 작동하던 산업용 로봇을 사람과 같이 작업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창업 10년 만에 역시 시장의 벽을 넘지 못하고 업계에서 사라지는 운명에 처했다.

로봇 업계에서는 "스타 과학자가 만든 로봇들이 스마트폰의 성공 경로를 따라가려고 했지만 소비자의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킬러 앱 제시 못 해 퇴출

소셜 로봇 지보는 가족의 얼굴과 음성을 구별해 다르게 반응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웠다. 물건을 집거나 청소를 하는 대신 사람과의 교감을 무기로 내세운 것이다. 지보는 시장에서 7000만달러(약 791억원) 이상을 투자받으며 미래형 가정 로봇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1년이 지난 뒤 회사는 예정된 업그레이드와 제품 배송을 하지 못했다. 그 사이 시장은 아마존의 에코와 구글의 홈 같은 인공지능 스피커로 쏠렸다.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다는 점에서 로봇과 별 차이가 없지만 가격은 50달러대로 900달러에 가까운 지보보다 저렴했기 때문이다.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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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메이필드 로보틱스의 소셜 로봇 '쿠리'도 올여름 제품 발표를 앞두고 지난 7월 개발을 중단했다. 모회사인 독일 보쉬가 시장성이 없다고 프로젝트 1년 만에 퇴출시킨 것이다. 쿠리는 비디오, 오디오 실시간 감상 기능을 내세웠으나 역시 인공지능 스피커와의 차별화에 실패했다.

전문가용 로봇과 완구로 눈 돌려

미국 로봇업체 미스티 로보틱스의 팀 엔월 대표는 국제전기전자학회(IEEE) 기고문에서 "소셜 로봇들의 실패는 '킬러 앱(killer app, 특정 제품을 성공시키는 결정적인 기능)'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공상과학(SF) 영화 덕분에 소비자들의 기대감은 높아졌는데 정작 로봇은 다른 가전기기와 구분되지 않는 기능만 내세웠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로봇 공학자인 UCLA 데니스 홍 교수도 지난해 1월 "잠시 가지고 놀다 흥미를 잃어버리는 장난감이 아니라면 그 가격으로 마땅히 구입해야 할 이유가 아직은 없어 보인다"고 소셜 로봇의 몰락을 예견했다.

전문가들은 지금 기술로 소비자의 기대감을 충족할 수 없다면 우회로를 택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미스티 로보틱스는 전문가들의 소프트웨어 개발용 2400달러짜리 로봇으로 성공을 거뒀다. 이 로봇은 지난 10일 IEEE 스펙트럼지의 '올해의 로봇 선물 10선'에 선정됐다. 반대로 저가(低價) 장난감 시장에서 성공한 로봇들도 나왔다. 앤키의 175달러 불도저 로봇 '벡터'가 대표적이다. 역시 로봇 선물 10선에 꼽혔다. 일본 소니는 올 초 12년 만에 장난감 로봇 개 '아이보'를 다시 출시해 3개월에 1만대를 파는 성공을 거뒀다.

제조업 기본기 못 갖춰 낙오

산업용 로봇은 가정용 로봇과 달리 수요는 넘쳐났다. 산업용 로봇 시장은 지난해 전 세계적으로 31%나 성장했다. 협동 로봇도 복잡한 프로그램을 하지 않고 바로 사람에게서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인기를 끌었다. 다품종 소량 생산이 많은 중소기업에서 특히 수요가 많았다. 하지만 리싱크 로보틱스는 "협동 로봇 시장을 창출하는 데 성공했지만 제조업의 기본기를 갖추지 못해 경쟁에서 낙오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리싱크 로보틱스는 시장에서 1억5000만달러(약 1696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그럼에도 브룩스 교수는 아이로봇을 창업해 로봇 청소기 룸바를 탄생시켰을 때와 같은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는 협동 로봇이 "핫케이크처럼 불티나게 팔릴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실제 판매는 부진했다. 고가(高價)에 내구성이 떨어지고 배송마저 늦자 시장은 전통적인 산업용 로봇 강자인 덴마크 유니버설 로봇으로 옮겨갔다. 이어 스위스 ABB와 독일 쿠카까지 협동 로봇 시장에 진입하면서 리싱크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스타 과학자들의 비전은 훌륭했지만 팔릴 기술로 구현하는 일은 다른 사람의 몫이 된 셈이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yw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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