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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우버 면접관 1명은 다른 면접관 차별 언행 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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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버 최고다양성책임자 이보영

작년 사내 성추문 폭로사태 여파

조직문화 개선 임무 맡고 3월 임명

“실리콘밸리는 남성 중심 사회

여성·소수자 배제 악순환 이어와

다양성·포용 문화는 저절로 안 생겨

일부러 만들어야 조직 내 뿌리내려”

중앙일보

성추문 논란을 겪은 우버는 3월 한국계 여성인 이보영씨를 최고다양성책임자 로 임명했다. [사진 우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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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승차 공유업체인 우버는 지난 3월 최고위직 임원으로 한국계 미국인인 이보영씨를 임명했다. 우버에서 이씨의 공식 직함은 최고 다양성·포용 책임자(CDIO·Chief Diversity&Inclusion Officer)다. 인종·성차별·이민자 관련 이슈가 심각한 사회문제인 미국에서는 웬만큼 규모 있는 기업들이라면 대개 인사(HR) 조직과 별개로 ‘다양성과 포용(Diversity and Inclusion)’ 관련 조직과 책임자를 두고 있다.

기업가치 1200억 달러(약 135조원)로 대표적 글로벌 데카콘(자산 가치 10조원 이상의 스타트업)으로 꼽히는 우버가 최고다양성책임자(CDO) 자리를 만든 것은 지난해 회사가 사내 성 추문, 강압적인 조직 문화 등으로 큰 논란을 겪었기 때문이다. 우버의 전직 엔지니어였던 수전 파울러는 지난해 2월 노골적인 성추행, 성차별이 만연한 회사 문화를 폭로했다. 우버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트래비스 캘러닉은 성 문제를 방관하고 조장한 책임을 지고 지난해 6월 해임됐다.

우버는 최고경영자(CEO)·최고운영책임자(COO)·최고법률책임자(CLO)를 바꾼 데 이어 최고다양성책임자(CDO)로 이보영씨를 내정했다.

지난 4일 CDO 취임 후 처음으로 방한한 이보영씨는 서울 역삼동 르메르디앙 호텔에서 진행된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CDO로서 우버의 채용 과정, 업무 방식은 물론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을 때 보고· 처리하는 과정까지도 모조리 바꾸는 중”이라며 “우리가 겪은 일은 우버뿐 아니라 많은 테크 기업, 특히 스타트업들에 경종을 울리는 사례가 됐다”고 말했다. 이씨가 국내 언론과 인터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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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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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살 때 가족과 함께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 간 이씨는 2003년 뉴욕대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한 후 자신과 같은 소수 인종, 이민자 출신 여성이 미국 비즈니스 사회에서 성공하기 힘든 환경인 것을 깨닫고 다양성·포용 분야에 뛰어들게 됐다고 한다. 그는 “미국 대기업에서 나처럼 소수 인종에 이민자, 여성인 사람이 임원에 오르는 경우는 사실상 거의 없다”며 “내가 곧 다양성과 포용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20년간 다양성 관련 업무를 맡아 온 이씨는 우버에서 지난해 상반기 문제가 터지기 전부터 이런 문제가 발생할 것이 미리 예견했다고 한다. “우버가 조직 문화에 상당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여러 명에게 들어서 진작 알았다. 그래서 사건이 연이어 터졌을 때 놀라지 않았다. 우리는 그 일이 있고 난 뒤 많은 사람을 내보냈고, 남은 직원들에게는 아주 엄격한 잣대를 요구한다. 여전히 바로잡을 것이 많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2만 명 임직원 모두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점이다.”

높은 매출과 빠른 성장 속도를 최고 가치로 삼고 있던 미국 실리콘밸리 IT기업들은 우버 사태가 터진 후에야 조직문화를 정비하고 반성하기 시작했다.

“테크 기업, 스타트업의 많은 창업자, 기업가들은 회사를 포용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은 안중에 없다. 조직문화라는 것은 그저 자연히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조직문화는 창업자의 스타일을 그대로 반영한다. 남성 중심 문화가 강한 실리콘밸리에는 이런 회사들이 더 많은 투자를 받고 더 많은 성공을 거둔다. 자연히 남성 중심의 문화가 여성 및 소수를 배제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우버, 성추문 사태 이후 경영진 물갈이 … CEO에 이란 이민자, CTO에 베트남 난민

이씨는 “만약 트래비스 캘러닉이 우버 창업 초부터 다양성과 관련한 조직을 만들었다면 이렇게 힘들게 뒤늦게 문화를 고치지 않았어도 될 것”이라며 “다양성과 포용 문화는 의도적으로 일부러 만들어야 조직 내에 뿌리내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인공지능 기술에 내재한 각종 성·인종 차별도 문제다. 이씨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디자인하는 대부분의 전문가가 젊은 나이의 남성들”이라며 “편견을 없애고 공정하게 기술을 개발하려면 더 많은 여성이 인공지능 개발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버는 서류 면접부터 최종 면접까지 이르는 채용 과정도 계속해서 바꾸고 있다. 면접관으로 참여하는 1000명의 우버 직원은 이를 위한 교육도 따로 받았다. 기술 면접에 들어가는 5명의 면접관 중 한 명은 심사 과정에서 혹여나 차별적인 언행이 나오는지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

우버는 회사 임직원은 물론 외부 전문가들과 협업해서 다양한 의사 결정, 자문 기구를 만들었다. 최고경영자를 비롯한 임직원 50%, 외부 전문가 50%가 참여하는 ‘다양성 자문위원회’는 분기에 한 번씩 만나서 ‘우버가 과연 다양성을 제고하기 위해 제대로 일하고 있나’를 점검한다. 과거에 우버에 비판적이었던 외부 교수, 기업가들이 참여한다. ‘접근성(Accessibility) 자문위원회’는 장애인 단체 등 비정부기구(NGO)와 일하며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이 우버를 이용할지, 장애인들이 모빌리티 변화에 어떻게 적응할지 등에 대해 논의한다. 이씨는 “이 같은 조직 문화와 각종 제도를 정비하는 것이 회사의 사업과 직결된다”고 설명한다.

“지난해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을 때 해외 사업은 큰 타격이 없었지만 미국 내에서는 상당한 수의 고객을 잃었고, ‘우버 앱을 지우자’는 캠페인까지 일어났다. 여성을 차별하고 소외시키는 브랜드로 자리 잡으면서 매출·고객이 모두 다 떨어지고 브랜드 가치도 손상됐다. 조직 문화를 바꾸지 않으면 기업은 절대 성장할 수 없다.”

우버는 이제 이민자, 난민 문제 등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씨는 “다라 코스로샤히 현 최고경영자(CEO)는 이란 이민자 출신, 투언 팜 최고기술책임자(CTO)는 베트남 난민 출신”이라며 “전체 직원들 3분의 1은 여성·이민자·성소수자·히스패닉 등 자신의 배경과 관련한 그룹에 가입해 의견을 모으고 회사에 권리 개선을 위한 다양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선영 기자 dynami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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