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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취임 1년 반 만에…동력 잃은 ‘불도저’ 마크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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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재정적자 GDP 3.4%로 다시 늘 듯…권위적 국정 탓 전임자들처럼 개혁 좌초 우려



경향신문



프랑스 전역을 뒤흔든 ‘노란 조끼’ 시위 한 달 만인 지난 10일(현지시간). 거칠 것 없던 젊은 대통령이 “책임을 통감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최저임금 인상을 비롯한 시위대의 요구를 대폭 수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로 인해 프랑스의 만성적인 재정적자 문제가 다시금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프랑스 경제를 되살리겠다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사진)의 개혁 행보에도 빨간불이 들어왔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취임 이후 대대적인 ‘친시장 개혁’에 나섰다. 노동시장을 유연화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비대화한 사회보장제도를 개편해 공공 지출을 줄이고, 법인세와 부유세는 낮춰 투자를 늘리겠다는 구상이었다. 2013년 이후 두 자릿수를 넘나들던 실업률은 9%대에서 보합을 유지했고, 가계 가처분소득도 지난해부터 2년간 오름세를 보이는 등 객관적인 지표도 나쁘지 않았다. 마크롱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취임 1년여 만에 ‘역대급 성과’를 거뒀다는 자찬이 터져나왔다.

마크롱 대통령의 개혁은 노동자들의 반발로 이어졌다. 전직 투자은행가 출신의 마크롱 대통령이 ‘부유층만을 위한 정책’을 편다는 여론이 거셌다. 특히 복지 정책의 혜택을 누리기엔 소득이 높지만 생계를 꾸려가기에는 어려운 중산층이 이러한 비판 여론을 주도했다. 그럼에도 마크롱 대통령은 대규모 시위에 직면해 개혁을 포기한 전임 정권의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입장만 고수했다. 노동 개혁에 반발하는 노동자들을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라고 비난하거나, 일자리가 없다며 하소연하는 20대 청년에게 “일할 의지만 있다면 일자리가 널렸다”고 응수한 것도 구설에 올랐다.

‘노란 조끼’ 시위는 마크롱의 이러한 기세에 제동을 건 최초의 사례였다. 네 차례 시위에 참가한 누적 인원이 70만명을 돌파하는 등 민심이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자, 마크롱은 결국 최저임금 인상을 비롯한 노란 조끼 시위대 요구를 대폭 수용하겠다고 몸을 낮췄다. 최저임금을 월 100유로(약 13만원) 인상하고, 추가 근무 수당을 비과세로 전환하며, 저소득층 은퇴자에 대한 세금 인상안도 철회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마크롱식 개혁의 동력은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현지 LCI 방송은 11일 프랑스 정부가 내년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규모 예상치를 2.5%에서 3.4%로 대폭 올렸다고 보도했다. 전날 대통령이 발표한 공약을 이행하는 데 최대 100억유로(12조9000억원)가 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기 때문이다. 지난해 프랑스는 2007년 이후 처음으로 GDP 대비 재정적자를 유럽연합의 권고 상한선인 3% 아래로 떨어뜨리는 데 성공했는데, 이를 다시 어길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언론의 전망도 비관적이다. 파이낸셜타임스 칼럼니스트 기드온 라흐만은 “프랑스의 본질적인 모순은 더 낮은 세금과 더 좋은 공공서비스를 동시에 요구한다는 것인데, 이는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며 “마크롱 대통령도 거리 시위에 직면해 개혁을 포기한 역대 대통령처럼 반발 여론에 고꾸라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프랑스 정부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 구글 등 정보기술(IT) 대기업에 5억달러 규모의 체납 세금을 징수해 세수부족분을 메꾸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미 1.8%까지 떨어진 경제성장률이 더 둔화된다면 프랑스의 위기는 더 깊어질 것이라고 신문은 내다봤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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