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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제왕적 대법원장’ 그대로…대법원 사법개혁안 대폭 후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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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법원조직법 개정안 국회 제출

개혁 핵심 ‘총괄권한’ 대법원장에

사법행정회의는 ‘심의·의결 기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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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장의 제왕적 권한의 상당 부분을 신설 사법행정회의에 넘겨 사법행정사무 총괄권한을 부여하려 했던 사법행정 개혁 방안이 무산됐다. ‘사법개혁 후퇴’라는 거센 비판이 예상된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12일 사법발전위원회(위원장 이홍훈 전 대법관) 건의 실현을 위한 후속추진단(위원장 김수정 변호사)이 ‘집행권까지 포함한 사법행정사무 총괄기구’로 상정했던 사법행정회의를 ‘중요 사법행정사무에 국한한 심의·의사결정 기구’로 위상과 역할을 낮추는 내용으로 대폭 수정한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국회 사법제도개혁특위에 제출했다.

앞서 후속추진단은 법관·비법관 위원 동수로 구성되는 사법행정회의를 집행권까지 지닌 사법행정사무 총괄기구로 신설하는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마련해 지난달 대법원장에게 제출했다.

김 대법원장이 이날 국회에 제출한 법원조직법 개정안은 후속추진단이 성안해 제출한 개정안과 크게 다른 내용이다. 김 대법원장은 후속추진단 발족을 즈음해선 추진단이 사법행정제도 개편안을 법안으로 만들면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으나, 개정안 마련 뒤에는 법원 내 의견수렴을 이유로 확정을 미뤄오다 애초 개정안을 크게 바꾼 수정안을 국회에 냈다.

특히, 김 대법원장은 취임 이후 대법원장의 제왕적 권한을 합의제 회의체에 넘기는 등 권한을 대폭 내려놓겠다고 밝혔으나, 대법원이 고쳐 제출한 법원조직법 개정안은 사법행정사무 총괄권한을 대법원장이 그대로 지니는 등 개혁 약속과는 거리가 멀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법원 내부망에 올린 글에서 “다양한 의견을 종합한 끝에 사법행정회의가 의사결정의 주체가 되고, 그에 따라 헌법상 사법부의 장인 대법원장이 법원사무처장을 통해 사법행정을 총괄하는 주체가 되는 것이 의사결정과 집행의 분리라는 개혁 취지에 부합하고 현실적인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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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행정회의 권한, 제한적일 수밖에

대법원의 개정안은 신설되는 사법행정회의가 중요한 사법행정사무에만 심의하고 의사결정을 하도록 했다. 수정 법안은 사법행정회의의 심의·의결 사항으로 △대법원규칙의 제·개정안 마련 및 제출 △대법원예규의 제·개정 △예산요구서, 예비금 지출안과 결산보고서의 검토 △법률 제·개정과 관련해 대법원장이 국회에 제출하는 의견의 승인 △판사의 보직인사 기본원칙 및 인사안 확정 △기타 대법원장이나 위원 3분의 1 이상이 부의하는 중요한 사법행정사무 등으로 열거했다. 사법행정회의가 심의하는 대법원예규 제·개정 및 예산요구 등에 관한 사항은 현행대로 대법관회의 의결사항이다.

대법원은 열거되지 않은 중요 사항도 사법행정회의가 심의·의결할 수 있다고 설명하면서도 “사법행정회의의 역량을 일정한 범위에 집중하도록 한다”고 밝혀, 실제로 사법행정회의가 법안에 열거되지 않은 다른 사법행정사무에 관여하는 것은 어려울 전망이다. 대법원 수정안은 “사법행정에서 의사결정 기능과 집행 기능을 분리한다”며 집행권 등 총괄권한도 대법원장에게 그대로 남겨뒀다. 또 판사 보직인사안 확정에는 사법행정위의 비법관 위원이 참여하지 않도록 명시해, 실제 권한 행사에도 적지 않은 제약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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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못지않게 강력한 권한 지닐 법원사무처장

사법행정회의의 인적 구성에서도 법관·비법관 위원을 5명씩 동수로 정한 추진단 개정안과 달리, 대법원 수정안은 의장인 대법원장 외에 법원사무처장을 당연직으로 정하고 법관 위원은 5명으로 하면서 대신 비법관 외부 위원은 4명으로 줄였다. 사법행정위 위원이 모두 비상근이어서, 총괄 권한을 유지하는 대법원장과 대법원장 지시를 받는 사무처장은 상근자로서 지금과 마찬가지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됐다.

지방법원의 한 판사는 “집행기구의 장인 사무처장이 상근 위원이 되면 사법행정회의는 사무처장이 장악하고 나머지는 들러리가 될 수도 있다. 의결과 집행을 분리한다면서 집행기구의 장을 의결기구에 넣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사무처장은 배석으로 충분하다. 헌재 사무처장도 헌법재판관회의 구성원이 아닌데 국회에서 헌재를 대표해 답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법원 수정안은 이와 함께 법원사무처장을 대법관회의의 동의 및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하고, 차장은 사법행정회의의 동의를 거치도록 했다. 사무처장과 차장은 법관에서 물러난 지 2년이 지나야 임명할 수 있게 하고, 사법행정회의가 재적 위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대법원장에게 법원사무처장이나 차장의 해임을 건의할 수 있도록 했다. 애초 추진단 안은 법관 퇴임 3년이 지나야 처장이나 차장에 임명하도록 했다. 사법행정회의의 해임건의권도 대법원장과 법원사무처장 외에 법관 위원이 5명으로 모두 합하면 3분의 2를 넘겨, 크게 실효성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위원 선정에선 전국법원장회의와 전국법관대표회의가 각각 1명과 3명을 추천하도록 했던 추진단 안과 달리, 대법원 수정안은 법원장회의와 법관대표회의가 각각 2명과 3명씩 추천하도록 했다. 또 외부위원은 사법행정회의 위원추천위원회가 4명을 단수로 추천하도록 했다.

추천위원회 구성도 추진단 안은 국회의장 추천 3명과 사회적 신망이 있는 사람 3명 등 모두 11명으로 정했으나, 대법원 수정안은 대법원장 지명 1명, 국회의장 추천 2명, 대한변호사협회장, 전국공무원노조 법원본부 대표,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 한국법학교수회 회장 등 7명으로 줄이면서 외부 위원 수를 크게 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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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사무처 탈판사화는 여전히 흐릿

대법원 수정안은 또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사법행정사무를 집행할 기구로 법원사무처를 신설한다는 사법발전위와 후속추진단 건의의 큰 틀을 받아들였으나, ‘법원사무처의 탈판사화’는 김 대법원장 임기 이내에 완성하는 쪽으로 크게 미뤄졌다.

대법원 수정안은 법원사무처의 실·국장과 심의관 등을 외부 개방직으로 임명할 수 았는 근거 규정을 뒀으나, 판사의 법원사무처 근무를 배제한 추진단 안과 달리 법원사무처 비법관화에 대해선 따로 근거규정을 두지 않았다. 대법원은 “업무방식 개선과 외부전문가 채용시스템 구축, 직제와 에산 확보가 함께 이뤄져야 해, 법원사무처 비법관화는 단계적으로 진행해 대법원장 임기 중에 완성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법조계 관계자는 “당장 어렵다면 법안에 탈판사화를 규정하고 부칙으로 경과규정을 두면 되는데도 아예 비법관화를 명시하지 않았다. 사법농단 수사가 진행되고 있어 국민 관심이 집중된 지금도 못한다면 나중엔 아예 힘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법원 수정안은 또 사법행정회의 산하에 분야별 위원회를 두되, 비법관 위원도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분야별 위원회에 비법관 위원의 필수적 참여를 보장하는 대신, 참여 가능성을 열어두는 데 그친 것이다.

법관 인사에서도 대법원 수정안은 사법행정회의에 법관으로만 구성되는 법관인사운영위원회를 설치해, 외부 위원이 법관 보직인사의 심의·의결에 관여하지 않도록 못박았다. 법관인사운영위원회는 판사의 보직에 관한 기본계획, 전보인사안, 판사 보직 사항 등을 심의한다. 사법행정회의는 판사의 보직인사에 관한 기본원칙을 확정해 법관들에게 공개한다. 대법원 수정안은 추진단 개정안과 마찬가지로 전국법원장회의와 전국법관대표를 법률상 기구로 격상했다. 또 대법원 재판과 사법행정의 분리를 위해 대법원 사무국도 따로 두기로 했다.

김 대법원장은 사법행정제도 개편 방안에 이어 전관예우 방지, 법조일원화에 따른 법관임용 시스템 개선 및 인사제도 개편, 상고심 개편 방안 등의 개혁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여현호 선임기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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