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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프리즘] 영리병원과 ‘영리’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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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최근 제주도가 국내 첫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 개설을 허가해 논란이 불붙었을때, 문득 ‘영리(營利)’라는 단어 의미가 궁금해졌다. 국어사전을 펼쳐봤다. ‘영리’의 사전적 의미는 ‘재산상의 이익을 꾀함. 또는 그 이익’이라고 돼 있다. 세간의 인식대로 ‘비영리’는 절대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고, 이익을 꾀하는 ‘영리’는 나쁜 것일까.

이번에 허가된 영리병원은 외국 자본과 국내 의료 자원을 결합, 외국인 환자 위주로 종합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기관이다. 정부는 외국인 투자 비율이 출자 총액의 50% 이상이거나 미화 500달러 이상의 자본금을 가진 외국계 의료기관인 영리병원의 설립을 제주도와 8개 경제자유구역에 한해 허용하고 있다. 영리병원은 이름 그대로 기업처럼 이윤을 남겨 투자자에게 배당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반면 녹지국제병원 허가 이전,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모든 병원은 모두 비(非)영리병원이었다. 현행 법령 상 우리나라에서 병원은 의사나 정부, 지방자치단체, 학교법인, 사회복지재단, 의료법인 등 비영리 기관만 세울 수 있다.

하지만 비영리병원이라고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2016년 국내 종합병원 327곳은 당기순이익 3886억원, 순이익률 0.4%를 기록했다. 이를 기업 회계기준에 적용하면 당기순이익은 1조6800억원, 순이익률은 2.6%나 됐다. 이 중 상급종합병원 43곳은 당기순이익 24억원, 순이익률 0.3%였다. 이를 기업 회계기준에 적용한 결과 당기순이익은 8336억원, 순이익률은 5.4%였다. 물론 비영리병원은 영리병원과 달리 병원 운영을 통해 얻은 이익을 의료 시설 확충과 인건비, 연구비 등 병원의 설립 목적에 맞도록 재투자해야 한다.

영리병원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의료 영리화가 확산되면 의료비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당장 대한의사협회는 영리병원이 허가된 바로 그날 “녹지국제병원 개원은 의료 영리화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며 반대 성명을 냈다. 하지만 비영리병원인 국내 병원 중 대부분이 이익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의료 영리화는 이미 어느 정도 이뤄져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이익을 추구하는 ‘영리’가 과연 환자에게 부정적인지도 따져 봐야 한다. 그동안 정부 등이 세운 국ㆍ공립 병원조차 흑자를 통해 직원을 추가로 뽑고 투자도 해 왔다. 국내 의료진이 각종 장기 이식에 성공하고, 해외 환자가 국내 의료기관을 찾는 등 ‘의료 한류’가 자리잡은 것도 국내 비영리병원들이 운영에서 생긴 이익을 연구개발(R&D) 등에 투자한 덕이 크다.

다만 영리병원 때문에 의료 공공성이 훼손돼서는 안된다. 의료비 폭등, 경제적 수준에 따른 의료 양극화 등 해외에서 나타난 영리병원의 부작용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허가 조건대로 영리병원의 대상이 내국인이어서는 안된다. 의료 공공성의 근간인 건강보험 당연지정제가 기존 국내 병원의 반발로 흔들리는 일도 없어야 한다. 보건당국과 영리병원을 허가해 준 제주도가 꼼꼼하게 살펴야 할 일이다.

k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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