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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한국 해군은 ‘게임’이 안됩니다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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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 정세가 조금씩 위험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동아시아 바다의 패권을 둘러싼 중국, 일본의 건함(建艦) 경쟁 때문이다. 구축함과 재래식 잠수함 건조로 시작된 양국의 해군력 증강 경쟁은 항공모함으로 옮겨가고 있다.

일본은 경항모급 헬기 탑재 호위함 이즈모를 개조해 전투기를 운용하는 ‘다용도 운용 호위함’을 만든다는 방침이다. 주변국의 반발을 의식, 항공모함이라는 말은 쓰지 않았지만 사실상의 항공모함이다. 일본은 미국에서 F-35B 스텔스 전투기 20~40대를 도입, 이즈모에 탑재할 계획이다. 또한 2030년대까지 3900t급 호위함 22척을 도입한다는 방침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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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대형수송함 독도함이 훈련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해군 제공


중국도 맞불을 놓고 있다. 스키 점프대를 갖춘 항공모함 랴오닝함과 산둥함을 운용중인 중국은 3,4번째 항공모함을 건조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2030년대 항공모함 5척 이상을 확보, 태평양으로 진출하겠다는 야심을 키우고 있다.

중국, 일본에 비해 경제력이 뒤진 우리나라는 이들 국가처럼 건함 경쟁에 뛰어들 여력이 없다. 효율적인 예산 사용을 통해 해군력 증강 효과를 높일 방안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그 방법으로 항공모함 확보 또는 핵추진잠수함 건조가 거론된다.

◆항공모함 확보 가능할까…예산 등 난제 산적

해군의 항모 확보 시도는 199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이뤄졌으나 뚜렷한 성과는 없었다. 그러나 지난 8월 해군이 방위사업청 국방전자조달시스템을 통해 ‘LPH(대형수송함) 미래항공기 탑재 운용을 위한 개조, 개장 연구’라는 연구용역 입찰 공고를 내면서 항공모함 확보 문제가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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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헬기 탑재 호위함 이즈모함. 일본은 F-35B 스텔스 전투기를 탑재해 사실상의 항공모함으로 개조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방위성 제공


이같은 입찰공고는 지난 5월 진수된 대형상륙함 마라도함(1만4600t급)에 F-35B 스텔스전투기 6대를 탑재하는 방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됐다. 중국과 일본이 항모 보유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작게나마 함재기 운용능력을 갖춘 상륙함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실제로 해군은 입찰 제안서에서 주변국이 상륙함이나 호위함에 F-35B를 탑재, 운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거나 관련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점을 연구용역 발주 이유로 꼽았다. 하지만 입찰에 응하는 업체가 없어 유찰됐다.

군 안팎의 시선은 세 번째 대형상륙함이 될 제2마라도함에 쏠린다. 마라도함은 개조공사를 해도 배의 크기가 작아 F-35B를 많이 탑재할 수 없고, 그나마도 해병대 상륙능력을 크게 낮춰야하는 단점이 있었다. 반면 4만t이 넘는 미 해군 와스프급 강습상륙함은 해리어 수직이착륙 전투기 20대와 해상작전헬기 6대, 공기부양정 3대 등을 탑재해 항공모함 임무도 제한적이나마 가능하다. 제2마라도함을 와스프급처럼 만들면 F-35B를 충분히 탑재, 항모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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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군 강습상륙함 마킨함에서 MV-22 오스프리가 이륙하고 있다. 미 해군 제공


관건은 비용이다. 지난해 5월 진수된 아메리카급 강습상륙함 2번함 트리폴리함(4만5000t)은 건조비만 30억달러(3조4000억원)가 투입됐다. F-35B 9대와 MV-22B 수직이착륙기 12대, CH-53E 중형 수송헬기 4대, AH-1Z 공격헬기 4대, MH-60S 2대와 강습상륙함 등 상륙작전 장비까지 포함하면 천문학적인 금액이 소요된다. 작전운용을 위해 2척 이상을 건조할 경우 예산규모는 더욱 늘어난다. 건조과정에서 비용이 상승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영국의 퀸 엘리자베스와 인도의 비클라마디티야 항모도 당초 예상보다 건조비가 크게 상승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미국 핵항모를 노리고 개발된 중국의 대함탄도미사일 위협에 취약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항공기 운용 경험이 부족한 해군이 무리수를 둔다는 지적도 나온다. 군 소식통은 “제트기인 P-8A 해상초계기도 운영하지 못한 해군이 첨단 전투기인 F-35B를 들여오면 제대로 쓸 수 있겠는가”라며 “제트기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게 우선”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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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4일 오후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서 진수된 독도함급 대형수송함 2번함 마라도함(LPH-6112). 독도함과 같은 배수량 1만4000t급의 마라도함은 1000여명의 병력과 장갑차, 차량 등을 수송할 수 있고, 헬기와 공기부양정 2대 등을 탑재할 수 있다. 부산=연합뉴스


◆핵잠수함 보유 여부 주목…난제도 존재

지난 9월 14일 해군 최초 3000t급 잠수함 도산안창호함이 진수식과 함께 그 모습을 드러냈다. 1980년대 독일에서 209급(1200t) 잠수함 9척 도입을 결정한 이후 30여년 만에 국내 기술로 3배 가까이 큰 잠수함 건조에 성공한 것이다.

도산안창호함 진수식은 한동안 잠잠했던 핵잠수함 건조 이슈를 다시 거론하게 하는 계기가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핵잠수함 개발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송영무 국방부장관도 관련 연구용역을 발주하는 등 핵잠수함 보유에 시동을 걸었다. 심승섭 해군참모총장도 10월 19일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에서 “핵잠수함은 기본적으로 작전 성능이 우수하고 한반도에서 운용하기에 가장 유용한 전력”이라며 “(도입이) 추진됐을 때를 대비해 태스크포스(TF)를 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핵잠수함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장착한 전략핵잠수함을 제외하면 무한대나 다름없는 잠항능력과 빠른 속도로 적 함정을 공격하고 아군 함대를 원거리에서 호위한다.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탑재해 지상공격을 감행하기도 한다. 중국과 러시아가 핵잠수함을 운용중이고, 일본이 디젤잠수함 18척을 운용중인 상황에서 주변국 견제를 위해 국내에서도 핵잠수함을 건조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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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일(현지시간) 림팩 훈련을 위해 하와이 진주만에 입항한 해군 잠수함 박위함. 미 해군 제공


핵잠수함 건조 과정에서 가장 큰 난관은 원자로와 핵연료 등 기술적 문제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이 담수화용으로 개발한 소형 원자로 ‘SMART-P’가 있으나 잠수함 내부에 장착하려면 새로운 원자로를 만들어야 한다. 원자로를 잠수함 안에 설치하는 기술은 또다른 차원의 난제다. 원자로에서 만든 동력을 잠수함에 전달하는 체계 등도 처음부터 연구해야 한다. 최신 핵잠수함에 쓰이는 핵연료는 우라늄 농축률이 90%에 달한다. 로스엔젤레스급을 비롯한 냉전 시절 핵잠수함도 농축률은 40%에 달한다.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감안하면 생산이 쉽지 않다.

이에 따라 외국과의 협력에 의한 공동개발 가능성이 제기된다. 그 중에서도 프랑스 DCNS의바라쿠다(5300t) 핵잠수함 기술이 거론된다. 바라쿠다는 안전잠항 심도 400m, 최고 속력은 수중 25노트(시속 46㎞), 수상 14노트(시속 26㎞)로 60명의 승조원이 탑승, 최대 70일간 작전한다. 4문의 533㎜ 어뢰발사관과 12개의 수직발사대(VLS)를 갖춰 어뢰와 기뢰, 대함미사일과 순항미사일을 사용한다. 농축률 20% 미만인 핵연료를 사용해 한미 원자력 협정 등 정치적 논란도 피할 수 있다. 핵잠수함을 건조한 미국, 중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에서 기술이전이 가능한 국가는 프랑스 정도에 불과하다는 현실도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한다.

관건은 비용과 정치적 문제다. 바라쿠다의 척당 건조비용은 12억6000만유로(약 1조6200억원)에 달한다. 4만t급 강습상륙함 건조비용보다 낮지만 이지스구축함 1척 건조비보다 비싸다. 핵잠수함 건조에 필요한 인프라 구축에도 예산이 소요된다. 그럼에도 강습상륙함보다 비용이 적게 들면서도 전략적 효과가 크므로 핵잠수함 건조가 더 낫다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미국과의 협상과정도 난관이지만, 탈(脫)원전 기조를 내세우는 현 정부가 국내외적으로 예민한 사안인 원자력의 군사적 이용에 나서는 것이 적절한지 여부도 논란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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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군 버지니아급 핵추진잠수함 일리노이함이 모항을 출발, 작전해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미 해군 제공


해군 함정을 확보하는 것은 10여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사업이다. 남북 화해 분위기에 힘입어 대양해군을 꿈꾸는 해군은 지금보다 더 큰 함정을 확보하려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일본보다 낮은 경제력과 국방예산으로는 항모와 핵잠수함을 동시에 확보할 수 없다. 둘 중에 하나만 선택이 가능하다.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미래 해군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점은 한국군의 전력 구조와 예산 규모, 정부의 정치적 목적에 적합한 의사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해군의 결단에 관심이 집중되는 대목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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