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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2018사건 그 후] ① "아직도 악몽" 떠올리기조차 싫은 봉화 엽총 참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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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귀농인 이웃 갈등·민원 불만에 치밀한 계획…범행 동기 횡설수설

분노범죄·귀농문제, 배경 놓고 해석 분분…허술한 총기관리 강화 계기



[※ 편집자 주 = '황금개의 해'인 2018년, 무술년이 저물어갑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국제 등 분야별로 다사다난했던 가운데 우리 사회를 충격·슬픔에 휩싸이게 하거나 분노로 몰아넣었던 사건·사고도 어김없이 많았습니다. 어두운 자화상이기도 한 10건의 주요 사건을 되짚어봅니다. 사회 전반의 안전망을 다시 살피는 계기가 돼 '황금돼지의 해'인 2019년, 기해년은 좀 더 안전한 사회가 됐으면 합니다.]

연합뉴스

지난 8월 법원으로 이동하는 엽총난사 범인
[연합뉴스 자료사진]



(봉화=연합뉴스) 김효중 기자 = "탕, 탕, 탕". 지난 8월 어느 날 아침 경북 봉화 한 작은 마을에 울려 퍼진 총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총 맞은 사람은 도망가고 쏜 사람은 뒤쫓았다. 무슨 원한이 있는지, 그러나 그는 더는 쫓지 않았다. 다른 목적이 있어서다.

20여분 뒤 "탕, 탕, 탕, 탕…." 다시 총성이 울리고 시골 면사무소 직원들은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동료를 보고 두려움과 충격에 비명을 질렀다.

졸지에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부모, 남편과 아버지를 떠나보낸 아내와 자식은 지금도 악몽을 꾼다.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닥쳤는지, 꿈에도 생각했겠느냐고…." 시간을 그날 이전으로 되돌렸으면 하는 간절함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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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 소천면사무소 엽총 난사 흔적
[연합뉴스 자료사진]



4년 전 시골마을에 정착해 아로니아를 재배하던 귀농인 김모(77)씨가 저지른 참극이다.

그가 살던 곳은 60여 가구인 임기2리 마을에서 도로를 따라 1㎞ 떨어졌다. 5가구 주민이 산다.

2년 전부터 이웃 임모(48·승려)씨와 수도 사용, 쓰레기 소각, 개 소음 등에 따른 갈등으로 비극이 싹텄다.

게다가 김씨는 민원처리 불만으로 공무원과 경찰관까지 해치기로 마음먹었다.

엽총과 실탄 200발을 사 마당에서 연습으로 60발을 쏘며 수개월 전부터 치밀히 준비했다.

8월 21일. 그는 결국 분노를 참지 못하고 범행에 나선다. 오전 7시 50분 현동리 소천파출소에서 "까마귀를 쫓는다"며 엽총을 받아 임씨 집으로 갔다.

오전 9시 13분 귀가하는 임씨를 보고는 방아쇠를 당겼다. 다행히 어깨에 총탄을 맞은 임씨는 달아났다.

다리가 불편한 그는 2발을 더 쐈지만 빗나가자 포기하고는 14㎞ 거리인 파출소로 차를 몰았다.

경찰관들이 임씨 신고로 출동해 아무도 없자 오전 9시 31분께 인근에 있는 소천면사무소에 들어가 무작정 좌우로 2발씩 쐈다.

느닷없이 벌어진 총질에 일면식 없는 당시 6급 공무원 손모(47)씨와 8급 이모(38)씨가 가슴 등을 맞아 숨졌다.

당시 면사무소에 있던 민원인 박종훈(53·건축업)씨가 달려들어 총을 빼앗고 직원들이 합세해 김씨를 제압해 더 큰 참사를 막았다.

범행에 앞서 김씨는 오전 8시 15분께 이장에게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했다. 마침 병원에 간 이장은 화를 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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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총 난사 사건으로 숨진 공무원 합동 영결식
2018.8.24 [봉화군 제공]



김씨는 지난 7월 경찰서에서 엽총 소지 허가, 군청에서 조수 포획허가를 각각 받았다. 이후 파출소에 엽총을 맡긴 뒤 13차례 출고했다. 경찰은 이때마다 범행을 결심한 것으로 본다.

김혜금 영남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충동 조절이 안 돼 남에게 피해를 주는 간헐성 폭발 장애라는 말이 있는데 이 사건처럼 알려진 상황만으로는 왜 그런 행동이 일어났는지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봉화 사건 이후 총기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지자 경찰청은 총기 출고 심사를 강화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이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2012년부터 올해 6월까지 총포 사건·사고 88건이 발생해 32명이 숨지고 57명이 다쳤다.

허경미 계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봉화 사건 때 일반인 총기 출고 등 규정을 자세히 마련해 놓지 않았다"며 "112신고 대응 매뉴얼이 있는 것처럼 경찰이 총기 허가·반출 때도 매뉴얼에 따라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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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한 엽총 난사한 소천면사무소
[연합뉴스 자료사진]



귀농인과 원주민 사이 갈등을 사건 배경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전국 귀농·귀촌인 정착실태 장기 추적조사에 따르면 응답자(복수) 637명 가운데 29.7%가 마을 사람과 인간관계 문제, 23.3%는 마을 관행 때문에 마찰 등으로 생활이 곤란하다고 했다.

이에 채종현 대구경북연구원 박사는 "귀농인은 주거 목적에 따라 갈등이 갈린다"며 "귀농인과 현지인이 어울릴 장을 마련해 화합을 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귀농인과 원주민 갈등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견해도 있다.

봉화경찰서는 "김씨와 임씨 사이 오랜 갈등이 촉발한 사건으로 본다. 김씨는 다른 3가구 주민과는 별일 없었다"며 "김씨는 조사 과정에서 전혀 죄의식이 없었다"고 밝혔다.

본동네에서 떨어진 곳에 사는 김씨와 임씨를 포함한 5가구 주민은 외지에서 왔다. 임기2리 한 주민은 "김씨는 경로당에 안 와 마주칠 일은 별로 없었고 아예 어울릴 생각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씨는 지난 10월 국민참여재판 준비기일에 나와 "나라를 구하려고 범행해 죽은 사람 얼굴도 모른다. 나는 애국자다"고 강변했다.

따라서 사회 문제로 떠오른 노인 범죄의 한 유형으로 보고 사회복지, 정신적 유대 등 대안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사건이 일어난 지 석 달여가 지났으나 마을 주민과 현장에 있던 공무원은 끔찍한 그 날을 떠올리기 싫고 말하기도 꺼린다.

평소에도 한적한 이 마을은 강추위로 길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어렵사리 만난 70대 주민은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니 지금도 가슴이 떨린다. 주민 서로 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소천면사무소는 사건 이후 현장에 있었던 직원들을 전보하고 청사를 밝은 분위기로 바꾸는 노력으로 차츰 평온을 되찾고 있다.

강신곤 소천면장은 "사건이 나고 한동안 어수선하고 일손을 잡을 수 없었다"며 "총탄으로 깨진 유리창을 교체하고 직원 정신건강에도 신경 써 지금은 민원 업무를 차질없이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봉화군은 충격을 받은 주민과 공무원 등 930여명을 상대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검사와 상담을 했다.

군 관계자는 "1차 검사 때 대부분이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지만 정신건강 지원으로 안정을 되찾는 데 도움이 됐다"며 "앞으로도 사건 현장 공무원과 마을 주민을 상대로 모니터링과 정신건강 지원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살인과 살인미수, 살인예비 혐의를 구속 기소된 김씨의 국민참여재판은 내년 1월 16일 대구지법에서 열린다.

kimh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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