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19 (화)

10살 형준이도, 출산한 ‘어린 엄마’도…‘다시는 들어오지마’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소년원에서 보낸 일주일]

③24시간 당직근무기

주말엔 수업·직업훈련 대신 운동·면회·종교행사

온종일 아이들과 지지고 볶는 시간

감호에 식사시간도 ‘빠듯’

소년 떠나보낼 때 마음으로 우는 선생님

야간에 환자 생기면 근무자 ‘비상’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곳에 ‘거리의 아이들’이 있었다. 경기 의왕시 서울소년원과 안양시 서울소년분류심사원. 서울소년원의 다른 이름은 고봉중·고등학교다. <한겨레> 기자가 1주일간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만났다. 그들이 소년원에 오게 된 사연, 소년원 생활을 살폈다. 이곳은 성인 교도소보다 더 철저히 무전유죄 원칙이 관철되는 곳이다. 한번 소년원에 들어온 아이들은 다시 들어올 확률이 높다. 이 아이들을 다시 ‘거리’로 내몰지 않으려면 우리 사회가 무엇을 해야 할까. 3회에 걸쳐 실태와 대안을 싣는다.



한겨레

휴대폰을 본부에 반납하고 다섯개의 철문을 지나야 했다. 마지막 문 세곳은 손가락을 철문에 대는 지문인식을 하고서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지난달 10일 토요일 오전 9시, 경기도 의왕시 고봉중·고등학교(서울소년원) 당직근무자로 서울소년원에 들어갔다. 세상 밖으로 나가기까지 꼬박 스물네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지냈다.

평일이면 교사 자격증이 있는 소년원 선생님들이 중·고등 검정고시 학과목을 가르친다. 직업반은 직업훈련을 받는다. 이날은 주말이어서 수업과 직업훈련 대신 운동·면회·종교행사가 예정돼 있었다. 직업반 생활지도실에 도착하자 질문이 쏟아졌다. “선생님 기자예요?” “선생님 새로 왔죠?” “벌써 당직 서요?” 소년원 선생님 체험 6일째라 익숙한 얼굴도 제법 보인다. “얘들이 ‘눈치도사’예요. 선생님들 근무표를 다 꿰고 있어요. 가끔 근무 날을 바꾸면, ‘오늘 근무 아니지 않으시냐’고 물어와요.” 함께 당직 서는 ㄱ선생님이 말했다. 휴대폰이 없어 처음엔 어색했지만 곧 이를 느낄 새가 없었다. 오전 9시부터 축구·농구·팔굽혀펴기 등으로 나뉘어 운동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다툼이 없는지 살펴야 한다.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면회장으로 가는 부류와 식당으로 가는 행렬로 나뉜다. 면회자가 없는 아이들을 인솔해 식당으로 데리고 가는 데 최소 세명의 직원이 필요하다. 선생님은 식당으로 들어서는 행렬의 앞과 뒤, 중간 지점에 한명씩 자리를 잡는다. 밥 먹는 모습을 감호하고 식사가 끝나면 아이들이 저마다 필요한 약을 제대로 먹는지 확인한다. 보통 직장인에겐 쉼이 되는 식사 시간이 선생님들에겐 버거운 근무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밥 먹는 시간을 피해 이르거나 늦은 식사를 한다. 오후 4시 반, 이른 저녁 식사를 마치려 소년원 베테랑 ㄴ선생님의 숟가락이 바삐 움직인다. 밥과 국을 마시듯 해치웠다. “소년원 근무를 오래 하다 보면 밥 먹는 시간이 빨라져요.” 그 속도에 맞춰 먹으니 속이 더부룩해졌다.

만 14살 미만 ‘꼬마’ 소년원생들은 당직 선생님이 특별히 신경 써야 하는 아이들이다. 고봉중·고의 14살 미만 소년원생은 1.1%로 수는 적지만 손이 많이 간다. 소년원 선생님들은 교대하며 ‘육아’에 나선다. 열살 때 소년원에 들어온 형준이(가명)는 화나면 선생님을 깨물고 아무 데나 침을 뱉었다. 한글을 떼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속옷에서 대소변이 묻어 나올 때가 많았다. 젓가락질도 어려워했다. 형준이는 어릴 때부터 자기 것과 남의 것을 구분하지 않았다. 홀로 형준이를 키우는 엄마가 일하러 간 사이, 배고프면 음식 냄새가 이끄는 대로 걸었고 길거리 음식을 훔쳐 입에 넣었다. 문방구도 수시로 털었다. 초등학교는 오래 다니기 어려웠다. 소아정신과 병원에서도 고개를 저었다. 절도가 지속적으로 반복되자 판사는 형준이를 소년원에 보냈다.

형준이는 차츰 소년원에 적응했다. 학예회에서 동요도 불렀다. 반년 만에 열한살 아이를 내보낼 때 소년원 선생님들의 걱정이 깊어졌다. 나가서 잘 지낼지 의문이었다. “왜 걱정하세요? 좀 있으면 또 올 건데요.” 형준이와 함께 지내던 소년원생은 걱정하는 선생님에게 되물었다. 예언 같은 이 말은 적중했고 2년 만에 아이는 소년원으로 돌아왔다. 열세살, 이번에도 혐의는 절도였다. 다시 1년 넘게 지내다 사회로 돌아갔다. “꼬마 원생들은 각별히 신경을 쓰다 보니까 정이 많이 들어요. 이렇게 어린 아이들이 퇴소하고도 사회적응을 하지 못해 다시 소년원에 올 때면 매번 마음이 아파요.” 퇴소한 아이의 삶을 온전히 책임질 수 없는 선생님들은 어린 소년들을 떠나보내며 마음으로 운다.

ㄷ선생님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 아이라며, 동영이(가명·당시 18살)의 사연을 전했다. 동영은 앳된 얼굴이지만 다부진 체격이었다. 학교를 일찍 그만두고 건설 현장에서 하루 벌이를 했다. 일을 마치고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다 시비가 붙었고 주먹을 날려 이곳에 왔다. 소년원 의료진은 동영이를 검진하다 에이즈 감염을 의심했다. 외부 병원은 극히 드문 사례인 수혈로 감염됐다고 소년원에 전했다. 에이즈 감염 사실을 통보하는 악역이 ㄷ선생님에게 떨어졌다. “선생님, 저 이제 죽어요?” 동영은 한참 동안 울음을 쏟아냈다. 우는 소년을 안고 등을 두들겼다. 소년원을 떠나 병원으로 옮겨진 동영의 소식은 그 뒤로 끊어졌다고 ㄷ선생님은 말했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저녁 식사 이후 아이들 움직임이 뜸해졌다. 씻고 다들 텔레비전을 봤다. 여기선 ‘본방사수’가 어렵다.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추려 몇달 뒤에 보여준다. 이날은 두달 전 종영된 드라마 <아는 와이프>(티브이엔)가 텔레비전에 나왔다. 저녁 점호가 끝나고 밤 9시가 되자 불이 꺼졌다. 소년원 ‘푸르미 방송국’이 만드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울려 퍼진다. “중학교 때부터 속 썩여서 여기까지 와버렸네요….” 소년원생이 부모님께 전하는 사연을 전국 소년원 학생과 선생님이 듣는다. 가족들도 인터넷으로 들을 수 있다. “아이들이 최신 노래만 신청할 것 같지만, 의외로 옛날 노래를 좋아하더라고요. 여기선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가 인기예요.” 당직근무 조장 선생님은 폐회로티브이(CCTV)로 생활실을 살폈다. 아이들이 꿈틀거리며 하나둘 잠드는 게 보였다. 당직자는 야간에 초번·중번·말번으로 나눠 두세 시간마다 교대했다.

아이들이 잠든 야간에도 급한 환자가 생기면 근무자들은 비상이 걸린다. 여자소년원에선 간혹 갑작스럽게 출산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절도로 소년원에 오게 된 한 여자아이는 살이 붙은 줄 알았다고 한다. 임신으로 배 혈관이 터져 생기는 임신선이 점점 올라왔고 임신 판정을 받았다. 며칠이나 지났을까. 밤 10시, 산통을 호소했다. 조산이었다. 산모의 영양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다행히 아기는 건강했고, 어린 엄마는 아기를 안고서 소년원을 떠났다. 기자가 근무한 날은 종교행사 때 먹은 햄버거가 얹혔다며 밤 10시께 두 아이가 생활지도실로 찾아왔다. 선생님이 바늘로 엄지손가락을 따주자 생활실로 돌아갔다.

온종일 아이들과 지지고 볶는 시간이 저물고 자정이 되어서야 소년원이 고요해졌다. 일에 치여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한 오십대 조장 선생님과 얘기할 기회가 생겼다. 이십년 전 은사에게 소년원에 근무하게 됐다고 알리자 크게 기뻐하셨다고 했다. “세상의 중심보다 가장자리에 서는 게 더 의미 있지.” 조장 선생님은 은사의 말을 아직 기억한다.

자정이 넘어 심신안정실에 가서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자는 둥 마는 둥 아침 6시 반이 되니 생활지도실이 다시 부산해졌다. 아이들 수를 세고 아침 점호를 준비했다. “20년 일했으니 6일에 한번씩 당직 섰다고 치면, 3년은 아이들하고 같이 잤네요. 하하.” 근무를 마치고 악수를 건네는 조장 선생님 눈이 충혈돼 있었다.

해마다 연말 크리스마스가 되면 소년원 운동장 나무마다 붉은 전구들이 반짝이고 생활실에서는 캐럴이 울려 퍼진다. 사회와 단절된 이곳에서, 꼬마는 소년이 되고 소년은 성인이 된다. <끝>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 신뢰도 1위 ‘한겨레’ 네이버 메인에 추가하기◀] [오늘의 추천 뉴스]
[블록체인 미디어 : 코인데스크] [신문구독]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