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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두 눈 대신… 열 손가락으로 세상과 만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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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시각장애 피아니스트 이와이, 오늘 금호아트홀 연세서 독주회

"4세 때 시력 잃고 배운 피아노… 다양한 표현 가능한 최고의 악기"

두 눈의 시력을 잃고 나서야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네 살 때였다. 유치원에서 남자아이와 놀다 나무 꼬챙이에 오른눈을 찔렸다. 왼눈은 날 때부터 앓았던 뇌 난치병 탓에 거의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그나마 성했던 오른눈이 세 차례 수술에 완전히 닫혔다. "차라리 수술하지 말걸, 후회했어요." 지난 10일 일본에서 날아온 시각장애 피아니스트 이와이 노조미(32)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눈두덩에 슬쩍 바른 라즈베리빛 섀도가 겨울 햇살에 반짝였다.

12일 오후 8시 서울 서대문구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독주회 '문라이트(Moonlight)'를 연다. 2년 전 모차르트홀 독주회에 이어 두 번째 한국 무대다. 베토벤이 세상 모든 슬픔을 담아 썼다고 알려진 소나타 14번 '월광'과 쇼팽의 야상곡 등을 들려준다. 지난 5일 도쿄 JT아트홀에서 같은 곡으로 먼저 청중을 만난 그는 "그곳 피아노가 112년 된 스타인웨이였다. 그 피아노로 나의 내면을 섬세하게 드러낼 수 있는 곡이 뭘까 고심한 결과가 이번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불치병을 앓고 있는 내 머릿속 MRI(자기공명영상).” 눈이 보이면 뭘 보고 싶으냐고 물으니 이와이 노조미는 이렇게 답했다. 오른쪽 사진은 10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와이(아래)와 한국인 어머니 김보미씨. /툴뮤직·박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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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대로 눈을 감싼 딸을 데리고 퇴원하던 날, 한국인 어머니 김보미(62)씨는 '무엇으로 이 아이를 지킬까' 머리를 싸맸다. 퍼뜩 떠오른 단어가 '음악'이고 '피아노'였다. 김씨는 "사람답게 살려면 음악을 해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했다"고 그날을 떠올렸다.

여섯 살에 도호가쿠엔음대 어린이 과정에 입학, 도호예술고와 도호예술대를 졸업했다. 도쿄에서 나고야까지 왕복 네 시간씩 기차를 타고 레슨 받으러 다녔다. 미국 텍사스크리스천대로 유학 가 석사 학위를 땄다. 2016년 슈베르트 콩쿠르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으며 국제 무대에도 이름을 알렸다. "바이올린도, 첼로도 해봤는데 저한텐 피아노였어요. 손가락이 열 개나 있잖아요.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죠."

악보는 A3 용지에 확대 복사해 코앞에 들이대고 외웠다. 그나마 0.01이던 왼쪽 시력이 유학 직전 사라졌다. 왼손은 왼손대로, 오른손은 오른손대로 녹음한 파일을 들으며 귀로 외운다.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해야 하는 협주곡도 베토벤, 모차르트, 슈만까지 익혔다.

오른눈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의안(義眼). 잘 때만 뺀다. 무대에 나가는 순간이 가장 기쁘고, 떨지도 않는다고 했다. "솔직히 힘든 일 너무 많은데, 그럴 때마다 따지고 들면 저 못 살아요. 케세라세라! 일단 부딪쳐보는 거죠." 견디기 힘든 건 "365일 24시간 내내 떠나지 않는 어지럼증"이다. 그럴 때면 엄마와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인다. 일본인 아버지를 닮아 술이 세다고 했다.

인터뷰 당일, 광화문 서울주교좌성당 근처에서 장애인 인권 단체들이 집회를 열었다. 이와이 모녀가 지나가려 하자 "장애인이다" "길 터드려!" 외침이 터졌다. 이와이는 "재미있는 경험이었다"며 크게 웃었다. "장애인이란 말 아무렇지 않아요. 맞으니까. 오히려 볼 수 없기 때문에 피아노를 더 사랑하게 됐고, 감사하는 마음이 크지요." 이와이는 "행복은 여러 곳에 떨어져 있다. 그걸 누군 줍고, 누군 못 주울 뿐"이라며 "모르고 지나치지 않기 위해 매일 노력해야 하는 게 삶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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