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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망명자 추방 막아라…네덜란드 교회 ‘무기한 예배’ 1100시간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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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인 가족 5명 추방 피해 교회로 대피

예배 중 경찰 못 들어온다는 법률 규정 이용

각지에서 온 목사 550명 돌아가며 24시간 예배

“가족 망명 받아들여질 때까지 이어갈 것”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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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헤이그의 베델교회에서는 하루 24시간 내내 예배가 진행된다. 10월26일 오후 1시30분부터 한순간도 쉬지 않고 설교와 찬송이 이어졌다. 10일까지 1100시간 가까이 이어진 마라톤 예배는 이 교회에 머무는 아르메니아인 가족 5명의 추방을 막기 위해서다.

네덜란드의 전체 교회 차원의 관심사로 발전한 이 예배의 이야기는 탐라지안이라는 아르메니아인이 2010년 조국을 탈출하면서 시작됐다. 그는 아내, 자녀 셋과 함께 남서부 해안 도시 캇베이크에서 임시 거주 허가를 받고 영주권을 얻기 위한 소송 등을 6년간 진행했다. 정부와의 소송에서 이긴 적도 있지만 결국은 패해 추방 통고를 받았다. 네덜란드에서 5년 이상 거주한 미성년자는 영주권을 받는 방법도 있었지만, 자녀들은 이 심사에서도 탈락했다. 야당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진 탐라지안은 생명의 위협을 받아 조국을 떠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사연이 알려지면 아르메니아에 남은 친인척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이유로 자세한 내막은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

탐라지안 가족은 추방 위기에 몰리자 교회로 대피했다. 네덜란드 법률에는 공권력이 도망자를 붙잡는다는 이유로 예배를 방해할 수 없다는, 중세 이래의 조항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이 가족은 애초 캇베이크에 있는 교회로 도피했다가 헤이그로 이동했다. 마라톤 예배를 하려면 대도시 교회가 유리하다고 교회 조직이 판단했기 때문이다. 앞서 경찰은 단순히 교회 안에 있다는 이유만으로는 체포를 피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예배는 20개 교파 목사 550명이 돌아가며 진행한다. 신교 쪽이 중심이지만 일부 가톨릭 사제들도 동참하고 있다. 다른 지역에 사는 목사들은 차 트렁크에 예복을 챙겨 헤이그를 오간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이들도 이 가족을 돕겠다며 나서고 있다. 학교에 가지 못하게 된 탐라지안의 21·19·15살 자녀는 자원봉사자들이 가르친다. 탐라지안 가족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데르크 스테헤만 목사는 “북쪽에서도, 맨 남쪽에서도, 동쪽에서도, 서쪽에서도 온 나라 사람들이 (탐라지안 가족을 도우러) 온다. 놀랍다”고 <뉴욕 타임스>에 말했다.

마라톤 예배가 언제 끝날지는 알 수 없다. 물밑 협상이 진행중이라는 소식도 있지만,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입장을 바꾸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다. 교회 쪽은 탐라지안 가족의 망명이 받아들여질 때까지 마라톤 예배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네덜란드 교회의 움직임은 이 나라도 예외가 아닌 유럽의 반이민 분위기와 대비된다. 네덜란드의 극우 자유당은 지난해 총선에서 2위를 차지했다. 자유당을 이끄는 헤이르트 빌더르스는 유럽 극우 정치인들을 대표하는 인물들 중 하나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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