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9 (금)

국일고시원 화재 한달, 끝나지 않는 악몽…"퇴원 후가 더 두렵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화재 당시 3층 거주자 A씨 3도 화상에 한달째 입원중
임대주택 6개월간 지원해주지만…가재도구 살 형편 안돼
보험사는 재판 결과 보고 보상금 지급, 건물주는 책임 회피 급급

창문으로 탈출했던 B씨, 결국 다시 고시원으로
아시아경제

지난달 9일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 화재사고로 7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다쳤다. 사진은 화마의 흔적이 선명한 화재 직후의 국일고시원 모습. /김현민 기자 kimhyun8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아시아경제 이승진 기자] "불길을 뚫고 살아남았지만 앞으로의 삶이 더 두렵습니다."

7명의 생명을 앗아간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 화재가 발생한 지 한 달이 지났다. 뜨거웠던 여론은 잠잠해졌지만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생존자들은 생계의 막막함과 화재 트라우마로 여전히 밤잠을 설치고 있다.

10일 기자를 만난 화재 생존자 A(57)씨는 한 달째 병원에 입원 중이다. 그는 화재 시작 지점인 3층에 거주하고 있었다. 불이 나자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고 탈출하는 과정에서 양쪽 손등에 3도 화상을 입었다. 피부이식 수술을 받았지만 후유증으로 손이 구부러지지 않아 간병인 도움 없이 식사도 어려운 상황이다.

화재 당시 상황을 묻는 질문에 그는 두려움에 손을 떨었다. A씨는 "대리운전을 마치고 막 방에 들어왔을 때로 기억한다"며 "'쿵' 소리가 한 번 나더니 1, 2분 뒤 또 소리가 들려 방문을 열어보니 입구 쪽 방에서 연기가 났다"고 기억했다. 그는 지금도 큰 소리에 깜짝 놀라는 등 후유증을 겪고 있어 트라우마 회복을 위한 치료도 병행하고 있다.

A씨는 당시 인명피해를 키운 이유로 작동하지 않은 화재 비상벨을 꼽았다. A씨는 "이전에 오작동으로 여러번 비상벨이 울렸었다"며 "하지만 막상 화재가 나자 비상벨은 작동하지 않았다"고 했다. 누군가 오작동 소리가 싫어 비상벨을 일부러 꺼놓은 것 같다고 고시원 거주자들은 추측하고 있다. A씨는 "비상벨만 제대로 작동했더라도 인명피해는 훨씬 적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아시아경제

화재 당시 3층에 거주했던 A(57)씨는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대피하는 과정에서 양쪽 손등에 3도 화상을 입어 한 달 째 병원에 입원 중이다. 사진은 화상을 입은 A씨의 양 손 모습. (사진=이승진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천우신조로 목숨을 건졌지만 앞으로의 삶은 화마(火魔) 못지않게 무섭게 그를 짓누른다. 종로구청은 화재 피해자들에게 이달부터 6개월간 임대주택을 제공하기로 했다. 하지만 생존자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A씨는 "임대주택은 모든 가재도구를 우리가 마련해야 하는데, 당장 불타버린 옷들을 새로 살 돈도 여의치 않다"며 "우리 같은 처지의 사람들은 결국 고시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실제 화재 당시 창문을 통해 탈출한 3층 거주자 B(55)씨는 최근 퇴원 후 다시 고시원으로 향했다. B씨는 "임대주택을 지원해준다고 했지만 당장 겨울옷을 새로 마련할 돈도 부족해 고시원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며 "새로 옮긴 고시원에서 2주 정도 두려움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또 "보험회사는 과실여부를 두고 재판이 마무리될 때까진 돈을 지급해주지 못하겠다고 하고, 건물주 역시 책임 회피에 급급하다"고 했다.

한편 대한변호사협회 생명존중재난안전특별위원회는 고시원 화재 생존자와 유가족들을 위해 법률지원에 나선다는 계획을 밝혔다.
아시아경제

11월11일 화재로 7명이 사망한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 앞에 시민들의 고인들을 추모하는 추모꽃을 비롯한 추모물품이 놓여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승진 기자 promotion2@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