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5 (목)

[연말 연차 딜레마①] “또 써?” 눈치주다 연말 닥치면 “얼른 써라” 독촉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가짜 연차 계획서 쓰게 하고 일 시키기도

-직장인 80% “올해 연차 다 못썼다” 하소연

헤럴드경제

연차유급휴가 사용촉진제도가 시행된 지 15년이 지났지만, 직장인들에게 연차 사용은 어려운 일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 기사와 무관. [제공=123RF]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헤럴드경제=정세희 기자] #. “오늘까지 연차 계획서 내세요.” 3년차 직장인 박모(28) 씨는 며칠 전 과장으로부터 통보를 받았다. 올해 못 쓴 연차는 9일. 업무량이 많아 반차를 내는 것도 눈치 보이는 분위기 속에서 여름 휴가만 겨우 다녀왔던 터라 박 씨는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당장 2주 뒤 휴가를 가야하자 눈앞의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박 씨는 “여름휴가도 밀리고 밀려 9월에 다녀왔는데 갑자기 휴가를 가려고 하니 어디를 가야 할지도 모르겠다”면서 “법적으로 보장된 휴식 시간을 회사 마음대로 정하는 게 씁쓸하다”고 토로했다.

#. 직장인 2년차 최모(29) 씨는 연말에라도 연차를 쓰게 해주는 게 부럽다는 입장이다. 그는 회사에 쓰지도 못하는 ‘가짜 휴가 계획서’를 냈다. 회사에선 연차 휴가 계획만 빨리 내라고 재촉한 뒤 자연스럽게 일을 시켰다. 최 씨는 “아무도 문제제기를 못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참고 일을 할 수밖에 없다”면서 “신정 때라도 며칠 연차를 써서 겨울 휴가를 보내길 기대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연차유급휴가 사용촉진제도가 시행된 지 15년이 지났지만, 직장인들에게 연차 사용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연차유급휴가 사용 촉진제도(근로기준법 제61조)는 ▷회사에서 휴가사용기간이 만료되기 6개월 전에 근로자에게 사용하지 않은 연차휴가를 사용할 것을 요청하고 ▷만약 회사가 연차휴가를 부여했지만 근로자가 사용하지 않은 경우에는 회사의 금전보상의무가 면제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여전히 이를 악용하는 회사가 많아 직장인들에게 연차는 어렵게 쟁취해야 하거나 혹은 포기해야 할 존재가 돼버렸다.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이 지난달 19일 직장인 722명을 대상으로 ‘올해 연차 소진 현황’을 조사한 결과 79.1%가 ‘올해 연차를 다 쓰지 못했다’고 답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가 지난달 발표한 ‘2018년 대한민국 직장갑질 실태조사’에 따르면 ‘연차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다’고 답한 직장인 역시 임금 수준·기업 규모와 관계없이 43.6점(100점 만점)을 기록했다.

연차 휴가를 사용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업무가 많기 때문이었다. 올해 익스피디아가 발표한 ‘유급휴가 사용 현황 조사’에 따르면 연차를 사용하지 못한 직장인 30%는 ‘업무가 많고 대체 인력이 없어서’ 휴가를 쓰지 못했다고 답했다. 직원의 휴가를 독려하는 고용주는 절반 수준으로 한국(50%)이 세계 평균(63%)보다 낮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우리나라 직장인 10명 중 7명(72%)은 휴가가 부족하다는 의견을 전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수치다.

업무를 뒤로 하고 휴가를 떠난 직장인들은 쉬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답했다. 연차 휴가 중 ‘죄책감’을 느낀다고 답한 한국인은 55%에 달했다. 세계 평균은 35%다.

고용노동부는 회사에서 연차사용 촉진제도를 악용하는 경우 노동청에 이의제기를 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연차유급휴가의 사용 촉진제도는 사용자가 근로자들에게 연차휴가수당을 주지 않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아니라, 근로자들의 휴가사용을 장려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라며 “연차소진 계획서를 회사에 제출한 뒤 당사자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취소했다고 하더라도 연차 수당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say@heraldcorp.com

- Copyrights ⓒ 헤럴드경제 & heraldbiz.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