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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판사들, 만들어진 ‘법원 신화’의 몰락 두려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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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직 법관 표적집단 심층좌담]

‘사법농단’ 재판거래 아니라는 주장에

“공부 잘한 모범생들의 인정 경쟁

인사 눈치 보며 판결 신경 쓰지만

사법신뢰 잃자 조직 지키려 방어”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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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들은 왜 그럴까.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구속영장 기각은 이런 근본적 의문과 불신에 다시 불을 붙였다. 10일 열린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구속기소)의 첫 공판준비절차에서도 변호인은 “공소 기각”을 요청했다. 법원이 사법농단 재판에서 어떤 결론을 내릴지 벌써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왜 ‘재판 거래가 아니었다’고 주장할까.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판사들에게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한겨레>는 비영리 공공조사 네트워크 ‘공공의 창’과 함께 전·현직 판사 3명, 제3자인 변호사 1명을 대상으로 표적집단심층좌담(FGD)을 했다. 좌담은 지난 1일 이은영 한국여론연구소 소장의 사회로 3시간 넘게 진행됐다. 솔직한 얘기를 듣기 위해 참석자는 익명 처리했다.

■ 판사란 무엇인가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다(검찰청법 제4조). 변호사는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한다(변호사법 제1조). 그리고 법관은 이들의 주장을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헌법 제103조). 한 손에 칼을, 한 손에 저울을 들고 눈을 가린 정의의 여신 디케처럼.

현직 판사인 연수원1은 이런 직업적 소명을 판사로서 가장 좋은 점으로 꼽았다. “수익을 신경쓰지 않고 어떻게 하면 내가 좀 더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할 수 있다는 게 가장 좋았어요. 정말 철저하게 공익적인 직업인 거죠.” 법복을 벗고 변호사가 된 연수원2도 마찬가지였다. “판사로 있을 때 그 공공성이 큰 보람을 줍니다. 사건을 심리하며 이런 고민을 하는 나 자신이 뿌듯하기도 했고요.”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해 3월 발표한 ‘2016년 만족도 높은 직업 순위’에서 판사가 1위를 차지했다. 특히 사회적 평판(2위)과 수행 직무 만족도(4위)가 높았다.

그런데 이런 공익적 성격의 업무를 맡기에는 법관들의 ‘생태계’는 다양하지 못하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전교 1등을 거의 놓친 적 없는 이들이 학벌사회의 최정점에 있는 대학에 들어가 사법시험, 변호사시험에 합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사람들이 모인 사법연수원에서도 최상위권에 들어야 법관으로 임용될 수 있다. 연수원1은 “판사 대부분은 자신이 법원행을 택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 6대 로펌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연수원4는 처음부터 판사가 될 생각이 없었다. 그는 “공부 잘하는 사람들만 모아놓은 연수원에서도 가장 열심히 공부한 사람이 지금의 판사들”이라고 했다. “연수원에서 보면 정말 인상이 별로였던 사람들이 있어요. 법원에서 오신 교수님도 ‘저런 사람은 절대 법관으로 임관 안 시킨다’고 말할 정도였는데, 결국 연수원 성적이 좋으니 판사가 됐어요. 법원에서도 좋은 보직만 받더라고요. 성적을 이길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판사들은 ‘신성가족’
공부 잘하는 사람 모아놓은 연수원
그중 가장 열공한 사람들이 판사
중산층 이상 집안서 굴곡없이 자라
소수자 고려해야 하는데 시야 좁아


한국 법조계 초기 형성 과정을 그린 <법률가들>을 펴낸 김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저서 <불멸의 신성가족>에서 판사들을 ‘신성가족’이라고 불렀다. “법원 ‘신성가족’의 일원이 되려면 사법시험이라는 어려운 시험에 합격해야 할 뿐만 아니라 판사직 진입이라는 더 좁은 관문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성가족은 서로 닮았다. 연수원1은 “이렇게 균질한 조직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최소한 중산층 이상의 집안에서 태어나 인생의 굴곡 없이 자란 모범생이라, 하라는 대로 공부를 해서 여기까지 왔죠. 법원의 공공성이 인정되는 이유 중 하나가 사회적인 결정에서 다수뿐만 아니라 소수자의 이익도 고려하기 때문이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균질한 사람들의 시야는 뻔한 거예요.”

법관의 ‘공적 소명’을 위협하는 또 다른 요소는 업무량이다. <사법연감>을 보면 지난해 접수된 사건만 1806만9526건이다. 판사 2903명이 이를 처리했다. 실제 연수원2는 일에 치여 판사를 그만뒀다. “일은 좋은데 너무 많고 힘드니까 인생을 소모하는 느낌이었어요. 아침 7시에 출근해서 밤 9시 반에 퇴근하고 주말에도 일해요. 팽팽한 활시위를 당긴 상태에서 계속 생활하는 거예요. 아이들과 놀아줄 수도 없고 동물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내 인생을 좀 살자고 해서 나오게 됐죠.” 연수원1은 그런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너무 더운데 에어컨을 안 틀어줘서(법원도 공공기관 냉난방 제한 대상이다) 도저히 사무실에 나갈 수 없는 여름 주말에나 간혹 쉬었던 것 같아요.” 1주일 동안 법복을 입는 건 잠시다. 법복을 벗으면 매일 기록을 읽고 판결문을 써야 하는 ‘사무직’이 된다. 지난달 주말 야근을 마치고 퇴근해 갑자기 숨진 현직 판사도 ‘과로사’했다.

소송 당사자들에게 때로는 ‘운명’이 걸린 재판이 판사에겐 처리해야 할 ‘업무’로 다가온다. 변호사에서 판사로, 다시 변호사로 돌아간 연수원3도 그랬다. “법원에 있으면 소모되는 느낌, 피로감을 느끼는 게 있어요. 사건 처리하는 데 급급해져서 매너리즘에 빠져요. 사건 하나하나에 철학을 담을 겨를도 없고, 철학을 키울 틈도 없어요.” 사건 처리율과 장기 미제 사건 비율은 법관 인사평가에도 반영된다. 판사 수는 늘지 않는데 사건 처리 독촉을 받다 보니 판사들은 ‘재판하는 공무원’이 되어간다.

“판사들은 인사에 너무 약해…
‘화이트리스트’에 못 들까 걱정”
공적 소명 위협하는 요소들
판사가 해야 할 일 너무 많고 힘들어
재판은 단지 급한 ‘업무’로 다가와
사법 관료화 된 판사들은 인사 눈치
윗선에서 싫어하는 판결은 주저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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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사 불이익에 목매는 직장인 판사들은 승진을 포함한 인사에서 뒤처지면 안 되는 직장인이 되어간다. “재판 개입은 판사들에게 늘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법원행정처에서 내 재판 때문에 연락 오는 일은 아예 없거나, 일생에 한두번 있을까 말까죠. 하지만 해외연수를 신청하거나 법원을 옮기는 이런 인사는 매일 맞닥뜨리는 문제거든요. 그걸 늘 의식하다 보니 약간의 압박을 받았어요.” 연수원2의 말이다. 연수원3도 거들었다. “자기가 조만간 인사 대상이 된다고 생각하면 판결에 신경을 안 쓸 수 없죠.”

인사 눈치를 보는 판사는 사법 관료화의 산물이기도 하다. 지난 5월 대법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은 사법농단 사태의 원인 중 하나로 사법 관료화를 꼽았다. “법원행정처 출신 법관의 고등법원 부장판사(차관급) 승진, 행정처 차장을 대법관에 제청하는 인사 패턴이 점점 강화됨. 그에 따라 대법원장 인사권이라는 구심력을 벗어나지 못한 채 관료로서의 성향이 강해짐.” 대법원장은 인사권으로 대법원 판결이나 행정처의 사법정책에 반하는 판사들을 ‘관리’했고, 판사들은 인사권을 가진 윗선의 눈치를 보게 됐다.

법관 인사와 재판 개입은 이렇게 조우한다.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이 종종 그랬다고 한다. “형사재판은 힘들어요. 판사들 사이에선 형사재판을 맡지 않는 방법이 있었어요. 예를 들어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선고를 하면 ‘얘는 좀 위험하다’며 형사재판을 안 맡기는 식이죠.” 연수원2의 말에 연수원1도 동의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 심리를 했던 동료 판사가 ‘이거 무죄 하면 앞으로 형사 못 하겠지’라고 하더라고요. 그게 사실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런 의심들이 돌 때 불이익을 감수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재판을 할 수 있느냐가 문제가 될 수 있어요.” 연수원3도 “잘하지는 못하더라도 찍히지는 말아야지 하는 게 있다. 법원이 판사 인사를 자주 하는 이유는 통제에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법정에서 판사를 만나는 연수원4는 판사가 재판에서 고려하는 대상은 헌법, 법률, 양심 그리고 인사라고 꼬집었다. “법원 윗사람 누군가가 그런 사건에서 무죄가 나는 걸 싫어한다는 것을 아는 거죠. 형사재판을 안 맡긴 게 반드시 인사 불이익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 없지만 주변에서 보기에는 일종의 시그널이 되겠죠.”

연수원1은 “어떻게 판사가 이렇게까지 자기 직무의 공공성에 약한가”라는 회의도 들었다고 고백했다. “인사에 너무 약해요. 노동자들은 잘릴 각오를 하고 파업을 하지만, 판사가 코트넷(법원 내부통신망)에 글 쓴다고 해서 잘리지는 않아요. 대신 각종 ‘기회’를 박탈당할 수는 있는데 그것에 대한 불안감이 큰 거죠. 판사들이 정말 민감해하는 건 ‘블랙리스트’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화이트리스트’에 포함되지 못한다는 불안감일지 몰라요. 인정 경쟁에서 항상 이겨왔기 때문에 그 안에 들어가고 싶은 욕망이 강하거든요.”

일본 재판관(판사)이었던 세기 히로시 메이지대 법과대학원 교수는 자신의 책에서 일본 판사들을 “법복 입는 관료”라고 했다. “재판관의 세계가 외부와 격리된 ‘정신적인 수용소’이기 때문이고, 스모 선수의 순위표와 같이 분류돼 경쟁해야 하는 집단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 만들어진 사법신뢰 일본처럼 우리도 상당수 판사가 ‘정신적 수용소’에 살기 때문일까. 연수원1은 사법농단 사건을 대하는 “판사들의 태도가 충격적”이라고 했다. “판사 중에는 ‘이 모든 게 드러나면 사법부의 위상과 사법신뢰 자체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는 것이 아니냐’ ‘다 드러나는 게 옳은 것이냐’고 말하는 이들이 있어요. 그래서 대법원 추가 조사도, 검찰 수사도, 법관 탄핵도 반대한 거죠.” 그는 이를 “마치 1970~80년대 기업 홍보 방식이랑 비슷하다”고 했다. “우리의 나쁜 점은 적극적으로 숨기고 우리의 좋은 점은 과장해 홍보하자,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갖게 하자, 그게 우리 조직을 지키는 일이다, 이런 식이죠. 기만적인 홍보로 쌓은 신뢰는 언젠가 또 흔들려요. 그렇게 얻은 사법신뢰가 견고하게 유지될 수 있을까요?”

연수원2도 동의했다. “만들어진 신뢰를 과하게 받아오다가, 이제는 그런 신뢰를 과하게 잃고 있어요. 그런데 과하게 얻을 때는 가만있다가 잃을 때는 억울해하죠. 대법관 등 고위 법관들은 여전히 ‘사법신뢰는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판사들 상당수는 이번 사법농단 사건이 ‘침소봉대’됐다고 생각한다. 사법농단에 관여한 사람은 극소수인데 억울하게 법원 전체가 매도당한다는 것이다. “판사들은 일부 재판 개입 때문에 나머지 모든 재판도 그렇게 진행될 거라는 편견이 생기지 않을까 분노해요. 이해는 되지만 덮는 건 해결책이 아니잖아요. 단기간에 국민의 오해를 끝낼 수 있는 방법? 저는 없다고 생각해요.” 현직 판사인 연수원1은 한번 바닥을 친 사법신뢰가 단기간에 회복되기는 힘들 거라 전망했다. “‘삼성 신화’처럼 ‘법원 신화’도 만들어졌다고 봐요. 판사만이 아니라 보수언론 등도 ‘여기서 끝내라’는 식이죠. 그동안 우리나라 수준에 맞는 사법부를 가지고 있던 게 아닐까요.”

“행정처 개입을 조언이라 생각…
법원 자체, 개혁 불가능”
사법농단을 대하는 태도
대법관 등 고위법관들 여전히
‘사법신뢰는 만들어져야 한다’ 믿어
판사 상당수 ‘사법농단은 침소봉대’
우리가 해결할 테니 간섭말라 생각


■ 법관끼리만 믿어주는 판결 연수원3은 판사들이 이번 상황을 ‘집안일’로 선 긋고 있다고 비판했다. “법원 분위기를 보면 ‘우리 스스로 해결할 테니 간섭하지 말라’는 거 같아요. 그런데 사법제도는 사법부가 아니라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거잖아요. ‘우리 조직’ ‘우리 사법부’ ‘우리가 잘 해결할 수 있어’라고 하는데, 재판받는 사람들의 생각도 같이 들어가면서 해결해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간섭이라고 못마땅해하면 안 되죠.”

연수원1은 ‘외부’에 대한 적대감의 연원을 ‘판사다움’에서 찾았다. “판사들은 재판하면 언제나 한쪽 당사자로부터는 욕을 먹어요. 그래서 이런 외부 목소리에 흔들리면 안 된다는 훈련을 받죠. 게다가 외부는 주로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가 되는 경우가 많아요. 정쟁이나 벌이는 국회가 과연 삼권분립과 재판 독립을 지켜줄까, 오히려 국회가 재판에 직접 개입하는 게 아닐까 하는 불신이 크죠.”

처음부터 법원 밖에 있었던 연수원4는 이를 “잘못한 사람이 벌줄 사람의 자격을 따지는 태도”라고 꼬집었다. “지금 국민이 법원에 신뢰를 보내지 않는 것은 잘못 그 자체가 아니라 잘못이 드러난 이후의 태도 때문”이라는 것이다. “잘못을 덮거나 감춰서 추락하는 거죠. 사법부 신뢰 회복은 간단해요. 잘못을 깨끗하게 인정하고 어떤 벌이든 달게 받겠다는 자세면 되는 거예요. 지금은 어때요? ‘우리도 잘못했다. 그런데 너는 깨끗하냐? 우리보다 더한 검찰이 우리를 수사해? 우리보다 덜하지 않은 국회가 개입해?’ 이런 식이죠.”

연수원4는 지난 10월 법원행정처의 전관예우 실태조사 연구용역 결과를 언급하며 “판사들의 이중잣대”를 지적했다. 국민(41.9%), 검사(42.9%), 변호사(75.8%) 모두 “전관예우 현상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답했다. 반면 조사에 참여한 판사 중 23.2%만이 전관예우를 인정했다. 갑절 가까운 54.2%는 전관예우는 없다고 했다. 또 판사들의 56.1%는 수사기관에선 결과를 뒤집는 전관예우가 작동한다고 보면서도, 정작 형사재판에서는 “절차 이외에 결론을 바꾸는 영향은 없다”(45%), “절차든 결론이든 아무런 영향이 없다”(41.7%)고 답했다.

현직 판사인 연수원1은 이런 이중잣대를 “법원 판결은 당연히 믿어야 한다”는 판사들의 태도와 연결지어 설명했다. “판사는 신이 아니잖아요. 재판 결과를 판사끼리 믿어주는 건 아무 소용 없잖아요. 동료 판사가 동료 판사의 재판을 믿는 게 무슨 의미인가요. 재판 당사자, 국민이 믿을 수 있어야 하잖아요.”

답답했는지 연수원1의 목소리가 계속 높아졌다. “재판에 대한 믿음을 국민에게 강요할 수는 없으니, 판사들이 정말 양심껏 재판했다고 믿을 수 있는 근거를 사법부가 제공해줘야 해요. 그게 바로 공정한 재판 절차죠. 그래서 재판 절차와 결론이 분리될 수 없는 겁니다.” 그는 ‘재판 개입 자체가 없었다’는 주장은 그 전제부터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법원 내부에선 ‘재판 과정에 행정처나 고위 법관의 영향력이 있었더라도 재판 결론만 바뀌지 않았으면 되는 거 아니냐’는 주장이 그럴듯하게 받아들여진다고 한다. 연수원1은 “재판을 해보면 재판 절차와 결론은 분리될 수 없어요. 재판 절차가 망가졌어도 결론을 잘 내리면 재판 거래는 존재하지 않는 건가요? 판사의 뇌를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결론까지 바꿨는지 알 수가 없는데도요?”

연수원2는 법원의 이런 태도가 ‘신영철 재판 개입’ 때도 똑같았다고 떠올렸다. 2008년 신영철 전 대법관이 서울중앙지법원장으로 있을 때 이명박 정부 정책에 반대한 촛불집회 사건 형사재판을 특정 재판부에 몰아주거나 양형에 개입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그때도 일부 판사들은 ‘그 정도를 재판 개입이나 압박으로 느낀 판사가 이상하다’고 했어요. ‘그런 걸 거부할 강단도 없이 어떻게 판사를 하느냐’는 거예요.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래요. 행정처의 ‘조언’을 ‘개입’으로 느끼는 판사가 이상하다는 거죠.”

사법개혁 물꼬 틀 방안은
재판거래 없었다고 한목소리 내면
국민이 믿어줄 거라는 생각은 코미디
법관 탄핵 없으면 신뢰회복 어려워
개혁은 대법원장이 나서야 하는데…


■ 법관=기득권…자체 개혁 어려워 ‘나를 믿으라’는 선언은 평판사부터 대법관까지 공통됐다. 지난 6월 대법관 13명 전원(대법원장 제외)은 “재판 거래는 사실이 아니다”라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연수원4는 “(문제가 된 재판이 끝나고) 한참 나중에 임명된 대법관들까지 ‘재판 거래는 없었다’고 한목소리를 냈어요. 입장문을 발표하면 국민이 믿어줄 거라고 생각하는 게 코미디죠”라고 했다. “비극이 여기 있는 거 같아요. 국민은 너무 화가 나지만 당장 이런 법원에 재판은 또 받아야 한다는 거죠.”

‘비극’을 끝내는 방법의 하나로 연수원1은 ‘법관 탄핵’을 제시했다. “만약 신영철 대법관 사태 때 법원이 단호하게 대법관을 징계했다면, 이후 재판 개입은 없었을 거예요. 저도 동료 법관들이 불쌍해요. 하지만 탄핵이라는 헌법적 판단이 이뤄지지 않으면 10년, 20년 뒤에 어떤 식으로 오늘의 상황을 받아들이게 될까요?”

연수원4는 “사법개혁의 물꼬를 틀 수 있는 건 대법원장인데, 요즘 뭘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자신을 평화로운 ‘요순시대’의 대법원장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연수원2도 “법원 자체 개혁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연수원1도 회의적이었다. “지금 김명수 대법원장을 엄청난 권한을 행사하던 전임 이용훈·양승태 대법원장과 비교할 수 없어요. 훅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촛불 같은 입지죠. 대법원장이 검찰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말을 한 순간 법원 내 30~40%는 등을 돌렸다고 봐요. 기득권을 해체하는 일이라 기득권이 돌아선 거죠. 대법원장이 한발 내디디면 세발 물러서는 반발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심층좌담이 끝나고 엿새 뒤 법원은 두 전직 대법관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좌담 참석자들에게 추가 의견을 구했다. “범죄가 아니라고 위헌 행위가 합헌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이 사안을 제대로 해결하기 위한 첫 단추는 법관 탄핵이다.”(연수원1) “영장이 기각될 거라 예상했다. 이로 인해 탄핵이 더 중요해졌다.”(연수원2) “기각을 예상했다. 전직이지만 대법관 구속영장을 발부하면 법원의 존재가치, 자존심을 스스로 허무는 느낌이라 쉽지 않았을 것이다.”(연수원3) 연수원4는 말했다. “그 누구의 영장보다 법원의 부담과 고민이 컸을 것이다. 이해한다. 다만 누가 그 고민의 결과를 수긍하겠느냐.”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이번 FGD를 공동기획한 ‘공공의창’은 14개 여론조사 및 데이터 분석 기관이 모인 비영리 공공조사 네트워크다. ‘한국 사회를 투명하게 반영할 수 있는 조사, 정부 정책의 방향을 제시하고 공동체를 강화할 수 있는 조사’에 뜻을 모으고 2016년 출범했다. 매달 한차례씩 공익성 높은 공공조사를 실시해 발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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