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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하룻밤 묵고 가소" 내국인에겐 아직도 불법인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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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숙박 인프라를 개선하기 위해 공유민박업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18일 이낙연 국무총리가 주재한 제1차 국가관광전략회의에서 올해 공유민박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도시 지역 거주자들은 '외국인 관광 도시 민박업' 제도에 따라 외국인에게 집이나 방을 빌려줄 수 있다. 그러나 내국인에게는 서울·부산 등 대도시는 물론이고 제주·강릉 같은 관광 도시에서도 거주자들이 집이나 방을 빌려주면 공중위생법상 불법이다. 당시 정부는 자동차나 사무실, 숙박 시설을 나눠 쓰는 공유 경제 플랫폼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우리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공유민박업을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조선비즈

숙박 공유 업체인 에어비앤비에 등록된 서울 명동의 한 숙소. 최근 이 같은 공유민박에 대한 내국인 수요가 늘고 있지만 관련 법규가 마련되지 않아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에어비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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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년이 다 된 지금까지도 진척은 없다. 50만 숙박업자가 강력히 반발하자 정부가 사실상 손을 놔버렸기 때문이다. 숙박업자들은 "경기가 최악인 상황에서 내국인 대상 공유민박업을 허용하는 것은 우리더러 망하라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 에어비앤비는 이달 초 공유민박업 도입을 촉구하는 시민 1만2832명 서명을 받아 청와대와 국무총리실, 문화체육관광부, 기획재정부와 국회, 여야 각 정당에 전달했다. '도시 지역에서 한옥이 아닌 자신의 집을 한국인과 공유하는 일은 제도적으로 가로막혀 있다. 정부와 국회가 숙박 공유의 이익을 인식하고 (관광진흥법을 개정해) 제도 마련에 나서도록 하자'는 내용이었다.

"생존권 위협" 숙박업계 강력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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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전희경·이완영 의원은 2016년과 지난해 시·군·구 지역 주민이 자신이 거주하는 아파트와 단독·다가구·다세대·연립주택을 활용해 공유 민박 영업을 하는 내용의 관광진흥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연간 180일 이내 숙식을 제공하는 공유 민박 영업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한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올 초 "상반기 중 국회 통과가 어려우면 관련 내용을 포괄한 관광숙박진흥법(가칭)을 정부 입법 등으로 추진할 방침"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와 관련, 에어비앤비는 "공유 민박은 유휴 자원을 나눠 쓸 수 있고, 다양한 지역에서 여러 가지 테마의 숙소를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공유 경제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최근 '한 달 살기' 등 전통적 관광 형태와는 완전히 다른 임대 수요가 늘고 있는데, 이런 다양한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라도 도시에서의 내국인 공유 숙박을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2016년 1만3800곳이던 국내 에어비앤비 등록 숙소는 올 들어 3만7100곳으로 늘었고, 이곳을 찾은 방문객은 39만2900명에서 188만8000명으로 급증했다. 내국인 비중은 44%에서 65%로 치솟았다.

"공유 경제 트렌드 인정하되 제대로 관리해야"

그러나 대한숙박업중앙회는 "현재 전국의 모텔과 콘도 등 숙박 시설은 3만곳이 넘는데 객실 점유율이 50%도 미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공유민박업을 허용하면 우리는 생존권을 위협받는다"고 주장했다. 전국에서 하루 90만개씩 1년간 공급되는 객실 3억2000만개 중 1억5000만개가 비어 놀리고 있는데 가정집까지 숙박 업소로 개방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정경재 대한숙박업중앙회장은 "공유민박업 허용은 단기 임대로 높은 소득을 얻으려는 집주인이 장기 임대 서민을 내보내는 결과로 이어지고, 호텔 영업을 포기하는 업체가 속출해 일자리 창출에도 역행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숙박 시설은 설립부터 운영까지 안전·위생·소방 등 각종 규제 200여개로 감독하는데, 공유숙박업은 이런 규정이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몰래카메라 촬영 등 성범죄 온상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해외 각국은 관광을 차세대 전략 산업으로 보고 공유민박업을 진흥책의 일환으로 도입하고 있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관광 정책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고 있는 일본은 지난 6월 공유 민박에 관한 근거를 담은 주택숙박사업법을 시행하고 있다.

관광 전문가들은 공유 숙박이라는 세계적인 트렌드는 인정하되 이를 제대로 관리할 수 있는 방식의 법률적 정비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칫 방치될 경우 안전과 위생, 범죄와 탈세의 온상이 된다는 것이다. 이훈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지자체가 에어비앤비와 협의해 정식으로 등록된 업체만 활동할 수 있도록 하고, 지자체에 에어비앤비가 직접 세금을 내는 유럽 일부 지역의 시스템을 우리도 참고할 만하다"고 말했다.

채성진 기자(dudmi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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