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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8 (목)

비극적 역사현장 사라예보… '다크 투어리즘' 1번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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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대전과 내전 역사 간직한 곳… 호텔엔 침대 없고 군용 모포만

관광객 3년새 10만명이상 늘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수도 사라예보에 있는 '더 워 사라예보' 호스텔에는 편안한 침대도, 조식도 없다. 숙소 바닥에는 매트리스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고, 그 위에는 군용 모포가 깔렸다. 호텔 안은 연기로 자욱하고, 밤새 총소리와 박격포 폭발음 소리가 들려온다. 콘크리트로 이뤄진 벽에는 총알 구멍이 뚫려 있고, 박격포탄이 박혀 있기도 하다.

2017년 6월 문을 연 이 호스텔은 1992년 발생해 4년 동안 이어진 보스니아 내전 당시를 재현한 숙소다. 호스텔 주인 아리잔 쿠르바직(27)은 군복을 입고, 자신을 '제로 원(Zero one)'이라는 암호로 소개한다. 실제 내전 당시 자신의 아버지가 사용했던 암호명이다. 전직 사라예보 관광 안내자였던 그는 "사람들이 사라예보에서 진짜 원하는 게 뭘까 생각해보다가 이 숙소를 열었다"고 했다.

조선일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수도 사라예보에 있는‘더 워 사라예보’호스텔의 실내 모습. 딱딱한 평상에 군용 모포가 깔려 있고, 벽 곳곳엔 방탄모와 전투복이 걸려 있다. 보스니아 내전(1992~1995년)을 재현한 숙소로, 비극적 역사를 되새기고 교훈을 얻자는 뜻으로 작년 6월 문을 열었다. /더 워 사라예보 호스텔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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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족 갈등의 비극을 간직한 장소이자, 제1차 세계대전의 시발점이 된 사라예보가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의 1번지로 거듭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최근 보도했다. 다크 투어리즘은 전쟁·학살 등 비극적 역사의 현장이나 엄청난 재난과 재해가 일어난 곳을 돌아보며 교훈을 얻는 여행이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한 미국 댈러스,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학교에서 고문의 현장으로 변한 캄보디아 프놈펜 교도소 등이 대표적이다.

사라예보는 지난 1세기 동안 세계사에서 여러 번 비극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 라틴 다리 위에서 세르비아 민족주의자 청년에게 오스트리아-헝가리 황태자 페르디난트 대공 부부가 암살당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시작을 알리는 총성이었다. 1992년 3월에는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연방공화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지만, 보스니아보다 세르비아에 통합되길 원하는 세르비아계 때문에 내전이 벌어졌다. 당시 수도 사라예보는 약 4년간 세르비아계에 포위됐다. 전국적으로 10만명이, 사라예보에서만 1만1541명이 죽었다. 내전 생존자이자 다크 투어리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지야드 주수포비치씨는 "역사적으로 보면 비극인 곳이지만, 다크 투어리즘에는 최적의 장소"라고 말했다.

주수포비치씨가 주로 관광객을 이끌고 찾는 장소는 라틴 다리와 내전 당시 폭격으로 검게 그을린 국회 의사당, 외신 기자들이 머무르며 사라예보의 상황을 알렸던 홀리데이인 호텔, 사라예보 국제공항과 시내를 연결해 구호물자들을 도심 주민들에게 공급했던 희망의 터널 등이다. 포탄 자국을 빨갛게 칠한 '사라예보의 장미'는 도심 곳곳에서 마주칠 수 있다. 다크 투어리즘이 성행하면서 사라예보를 찾는 관광객 수는 해마다 늘고 있다. 사라예보 관광청에 따르면 사라예보를 찾은 관광객은 2013년 30만2570명에서 2016년에는 40만7338명으로 늘었다.

사라예보 워 호스텔에서 묵은 미국인 앤드루 번스는 WSJ에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경험"이라며 "그동안 책을 읽어도 와 닿지 않던 내용을 이곳에서는 마치 현실처럼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워 호스텔 주인 쿠르바직은 "전쟁을 겪지 못한 사람들이 전쟁이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 조금이라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남정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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