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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도시화된' 개구리, 더 큰 소리로 암컷 유혹하도록 적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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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의 파나마에는 독특한 울음 때문에 ‘명물’로 불리는 개구리가 산다. 바로 ‘퉁가라 개구리(Tungara Frog)’다. ‘퉁’하고 길게 울음소리가 나고 바로 이어 ‘크릭’하는 소리가 뒤따른다. 전혀 다른 소리 같지만 한 마리가 내는 소리다. 퉁가라 개구리는 울음소리로 기교를 부려 암컷을 유혹하는데, 먼저 오는 긴 소리와 뒤에 오는 짧은 소리를 적절히 ‘연주’해야 더 매력적인 수컷으로 인식된다.

그런데 개구리의 울음소리도 인간이 만든 환경에 따라 변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바우터 하프베르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 교수 연구팀은 11일(현지시각) ‘도시화한’ 개구리일수록 더 복잡하고 세련된 울음소리를 낸다는 내용의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울음소리에 따라 암컷의 선호도도 달라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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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진은 도시와 산림지역 각각 11개를 선정해 퉁가라 개구리를 비교 연구했다. 그 결과, 도시 지역에 사는 퉁가라 개구리의 울음 소리가 더 복잡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 Nature Ecology&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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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만들어낸 소음 높을수록 복잡해지는 울음소리


연구진은 각 11개 도시지역과 산림지역에서 수컷 퉁가라 개구리의 울음소리를 수집했다. 그 결과, 도시 환경에 노출된 수컷들은 긴 울음소리 다음에 오는 짧은 울음소리를 더 자주 그리고 크고 선명하게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큰 이유는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도시 지역에서 더 심하기 때문이었다. 또 울음소리를 가리는 차량 소음 등 저주파 소음(Low-frequency Noise)역시 도시 지역에서 더 컸다. 경쟁자들과 소음을 뚫고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방법이 필요했다. 그런데 ‘크릭’소리가 나는 퉁가라 개구리의 짧은 울음소리는 광대역 주파수이기 때문에 경쟁자가 많은 지역에서 암컷을 유혹하기 쉬운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2007년 미국 텍사스대 연구진이 진행한 연구에서도 “한 지역에 사는 개체수가 증가할 수록 수컷 퉁가라 개구리의 짧은 울음소리는 더욱 잦아진다”는 결과가 나온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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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이 숲에 사는 개구리이고 빨간색이 도시 지역의 개구리다. 맨 왼쪽 그래프를 보면 도시 지역의 개구리가 짧은 울음소리를 1분당 더 많이 내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맨 오른쪽과 오른쪽에서 두 번째 그래프는 도시가 뿜어내는 빛과 소음이 숲 지역보다 크다는 것을 나타낸다. [자료출처=Nature Ecology&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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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자들도 좋아하는 짧은 울음...도시에서는 천적 없어 자신감


그런데 퉁가라 개구리가 내는 짧은 울음소리는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암컷이 소리를 잘 들을 수 있는 대신, 박쥐나 흡혈 파리 등 퉁가라 개구리의 천적도 이 소리를 더 잘 들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2006년 5월 텍사스대 라이언 박사 연구팀은 이 같은 사실을 밝혀냈으며, 2014년에는 움직이면서 잔물결을 일으키는 개구리의 울음주머니 역시 포식자의 눈에 띄기 쉬운 요소로 조사됐다.

이런 이유에도 불구하고 도시 퉁가라 개구리가 더 크고, 더 자주 짧은 울음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도시에는 상대적으로 천적이 적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연구결과 암컷 개구리들은 일관되게 도시 지역의 수컷들이 내는 복잡한 울음소리를 선호했다. 연구진이 스피커에 도시 개구리와 숲에 서식하는 개구리의 울음소리를 녹음해 양쪽에 배치한 결과, 40마리의 암컷 중 30마리가 도시 개구리의 울음소리를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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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울음소리를 많이 낼수록 암컷에게도 인기가 많지만, 천적에게도 발각되기 쉽다. 그러나 도시 지역에서는 박쥐 등 천적이 적어 퉁가라 개구리가 소리를 더 크게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포토]


도시지역-산림지역 서로 서식지 바꾸니...시골 개구리는 적응 못 해


연구진은 다섯 지역에서 개구리 총 112마리를 채집해 서식지를 바꿔봤다. 그랬더니 도시 지역의 개구리들은 상대적으로 빠르게 숲에서 적응했다. 연구진은 “도시 개구리들을 숲에 옮겼더니 박쥐와 기생충 등 포식자에 대비해 울음소리의 ‘복잡도(Complexity)’를 바꾸는 현상이 나타났다”며 “반면 숲 개구리들은 도시의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양상을 보였다”고 밝혔다. 만약 도시의 개구리가 숲으로 유입될 경우 그곳에 살던 수컷 개구리는 경쟁에서 밀려 도태될 수 있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연구진은 “도시화가 한 종의 서식환경과 짝짓기 신호까지 수정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밝혔다. 이 연구결과는 11일(현지시각) 국제학술지 ‘네이처 생태와 진화(Nature Ecology&Evolution)’에 게재됐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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