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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원희룡은 왜 제주도민 의견을 비틀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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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덕 기자]

제주도에 국내 첫 영리병원이 생겼다. 원희룡 제주지사가 지난 5일 말 많고 탈 많던 녹지국제병원의 설립을 허가했기 때문이다. 제주지사가 직접 제안한 공론조사에서 제주도민의 절반 이상이 설립 허가를 반대했음에도 원 지사는 '허가'를 택했다. 당초 공론조사의 결정을 존중하겠다는 뜻을 밝혔던 원 지사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의 속내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원 지사는 왜 방향을 틀었을까. 더스쿠프(The)와 제이누리가 그 답을 찾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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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제주지사가 지난 5일 녹지국제병원 설립 허가를 내줬다.[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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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제주지사가 지난 5일 녹지국제병원 설립 허가를 내줬다.[사진=연합뉴스]

"제주를 방문한 외국인 의료관광객만을 진료하는 조건으로 녹지국제병원 개설을 허가한다." 원희룡 제주지사가 지난 5일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입장이다.

녹지국제병원은 중국 부동산개발업체 루디(녹지) 그룹이 전액을 투자해 설립하는 영리병원이다. 2017년 8월 지하 1층, 지상 3층, 병상 47개 규모의 건물을 완공했다. 의사 9명, 간호사 28명 등 134명의 직원 채용도 마쳤다. 제주시의 허가만 떨어지면 곧바로 진료를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원 지사가 기자회견에서 "원론적으론 녹지국제병원을 오늘(5일)부터 운영할 수 있다"고 말한 이유다.

원 지사가 녹지국제병원을 허가하면서 영리의료기관 설립을 가능하도록 제주특별법을 개정(2005년)한 지 13년 만에 국내 1호 영리병원이 문을 열었다. 진료과목은 성형외과ㆍ피부과ㆍ내과ㆍ가정의학과 등 4개과로 한정했다. 하지만 제주시의 허가 결정을 둘러싼 논란은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원 지사가 애초에 내세웠던 입장과 달라서다.

녹지국제병원 설립에 관한 논란은 2015년 12월 보건복지부가 '녹지국제병원 설립에 따른 사업계획'을 승인하면서 본격화됐다. 이후 개설 여부를 두고 주민들을 비롯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갑론을박을 벌였고, 원 지사는 지난 3월 공론조사 카드를 꺼냈다. 녹지국제병원 허가 여부와 관련해 도민의 공론화 절차를 거치겠다는 거였다. 지자체 차원에서 진행한 첫 공론조사였다.

그로부터 7개월이 흐른 10월 4일 공론조사위원회는 녹지국제병원 '설립 불허' 권고안을 냈다. 당시 불허 의견은 58.9%에 달했고, 찬성은 38.9%에 불과했다. "다른 영리병원 개원으로 이어져 의료의 공공성이 약화될 것 같다"는 의견이 많았다. 특히 숙의 과정에서 3차례의 여론조사가 있었는데, 조사가 진행될수록 영리병원 개설을 불허하자는 의견이 늘어났다.

"후폭풍 고려…" 더 큰 파장 예상

이런 결과가 나오자 원 지사는 "공론조사위의 결정을 최대한 존중, 녹지국제병원과 관련된 올바른 결정을 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1월 15일 열린 제주도의회에서도, 2019년도 예산안 제출에 즈음한 시정연설에서도 "녹지국제병원 불허 권고를 겸허히 수용할 것이다. 지역주민, 이해관계자, 도의회, 정부와 합리적 해결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제주도 내에서 녹지국제병원 설립이 무산될 거라는 기류가 감돈 이유였다.

하지만 이런 기류는 12월 들어 싹 바뀌었다. 지난 3일 원 지사가 녹지국제병원의 최종 허가여부를 12월 첫째주 안에 결정하겠다면서 "외국인 투자실적 정체와 경기침체, 투자자 신뢰 회복" 등을 거론했기 때문이다. 일부에선 '허가'를 염두에 둔 사전포석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돌았고, 이는 설說로 끝나지 않았다. 원 지사는 지난 5일 기자회견을 통해 "'외국인 의료관광객에 한정한 진료'라는 조건을 달아 허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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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지사의 입장이 돌연 바뀐 이유는 설립 불허 시 닥칠 후폭풍이었다. 기자회견 당시 그는 "투자된 중국자본의 손실 문제가 한ㆍ중 외교문제로 비화할 수 있고, 행정신뢰도와 국가신인도도 떨어질 수 있다"면서 "사업자의 손실에 대한 민사소송 등 거액의 손해배상 문제와 현재 채용된 직원 고용문제, 토지 반환소송 문제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국가적 과제인 경제살리기에 적극 동참하고, 감소세로 돌아선 관광산업의 재도약, 외국투자자본 보호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까지 심사숙고한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도 했다.

원 지사는 차선책이었다는 점도 강조했다. "녹지국제병원 측에 비영리 병원 전환을 권유했지만 거절했다. 설립 불허를 결정한 다음 인수하는 방법은 병원을 이끌 주체도 없고 재정능력도 없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했다. 모든 것을 감안한 차선책이었다."

그러자 "차선택을 택할 것이었으면 공론조사는 왜 했느냐"는 비판이 만만찮다. 애초부터 녹지국제병원 설립을 반대했던 시민단체 등은 원 지사의 기자회견 당일 제주도청에 진입해 소리를 지르고 소란을 피우기도 했다. 이들은 앞서 "영리병원을 허가할 경우 원 지사 퇴진운동도 불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시민단체들은 현재 대규모 촛불집회와 함께 공론조사위 실시에 따른 비용 3억6000만원의 구상금 청구소송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도의회의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지난 6일 성명을 통해 "지자체 최초의 숙의형 민주주의 사례로 평가되는 제주도 숙의형 공론조사위의 '설립 불허'라는 권고안을 뒤집는 행위"라면서 "도민들의 뜻과 민주주의를 일거에 짓밟은 폭거"라 맹비난했다.

또한 "정치적 처지를 타개하기 위한 정치적 결정"이라면서 원 지사의 결정을 규탄했다. 최근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자유한국당에 입당하고 범보수권 결집 움직임이 일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적 변방'에 머물러 있는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결정이라는 얘기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결국 원 지사는 제주의 미래를 위한 결정이 아니라 자신의 대권가도를 위한 결정을 내린 것"이라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국회에서도 우려가 이어졌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지난 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상무위원회에서 "이번 결정은 의료의 질 향상과는 무관하고, 의료 체계는 흔드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의견을 듣겠다고 만든 공론기구를 들러리로 세우고 이견이 분명한 사안을 일방적으로 추진한 건 나쁜 선례로 남을 것"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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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소하 정의당 의원도 "녹지국제병원에 제기된 국내 병원자본의 우회투자 의혹에 대한 명쾌한 해명도 없었고, 녹지국제병원의 사업계획서도 공개되지 않았다"면서 "원 지사는 이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한의사협회도 비판에 가세했다. 최대집 대한의협 회장은 지난 6일 제주도청을 방문해 "원 지사에게 녹지국제병원에 반대한다는 공식 입장을 전달했다"면서 이렇게 지적했다. "영리병원은 기업이다. 기업의 지상목표는 이윤창출이다. 이 때문에 의사가 환자를 진료할 때 환자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의사로서의 소명을 져버릴 가능성도 있다."

불구경하는 정부도 무책임

최 회장에 따르면 이번 결정은 역대 정부에도 책임이 있다. 영리병원 개설의 법적 근거는 김대중ㆍ노무현 정부 때 마련됐다. 이명박ㆍ박근혜 정부는 이 법을 근거로 영리병원 설립을 추진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이번 결정이 제주도의 독자적인 선택인 것처럼 대하고 있다. 이 역시 무책임한 불구경이다.

글 : 고원상 제이누리 기자 1950@jnuri.net

정리 :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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