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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엄동설한에 어딜 가라고"...10년째 노숙인 텐트촌 '골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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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지난 4일 방문한 용산역 부근 텐트촌의 모습. /사진=오은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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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역 뒤편 인적이 드문 차도 옆을 따라 내려가다보면 난데없는 캠핑용 텐트들이 눈에 띈다. 주변에 널린 가재도구와 옷가지들을 보면 이 곳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할만큼 허름하다.

'열린공간'이라고 쓰여진 공터에는 20여개의 텐트와 비닐집 들이 나란히 길을 따라 설치돼 있다.

10일 용산구에 따르면 노숙인들이 거주하는 이 곳 텐트촌에는 약 20여명의 사람들이 거주 중이다. 상주하는 인원은 약 7~8명 정도다. 10년 전 노숙인들이 하나 둘 텐트를 치고 살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촌'이 됐다.

■"자활 공간인데…나가면 어디로 가죠"
이 텐트촌에 9년째 살고 있는 이모씨(60)는 최근 일을 마치고 텐트로 돌아온 뒤 가슴이 철렁거렸다. 용산구에서 '불법으로 침거하고 있는 텐트를 아래 기일(11월 30일)까지 자진철거하지 않을 시 강제조치 하겠다'는 안내문을 붙여놨기 때문이다. 이씨는 "날씨도 갑자기 추워졌는데 어디로 가나 싶어서 눈앞이 깜깜해졌다"며 "가끔 철거한다는 말을 들은 적 있지만 강제 조치를 한다고 한다고 하니 여기 사는 사람들 모두가 놀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용산구 관계자는 "환경정비를 위해 안내문을 붙인 것은 맞다"며 "거주하는 사람들을 강제로 끌어내진 못하니 우선 빈 텐트부터 정리하려고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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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씨(60)가 거주하는 텐트 내부. 이곳에서 생활하며 돈을 모아 임대아파트에 들어갈 계획이라는 이씨의 텐트엔 간단한 가재도구들이 준비돼 있다. /사진=오은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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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곳 노숙인들을 위해 봉사하는 자원봉사단체 프레이포유의 손은식 목사는 "텐트촌은 노숙인들의 자활을 위해 필요한 꼭 공간"이라고 주장한다. 손 목사는 "일정 주거지가 있다는게 자활을 위한 일을 할 수 있는 큰 동기부여가 된다"고 말했다.

손 목사 말처럼 텐트촌에서 자활 활동을 해 지금은 노숙인 생활을 끝낸 사람들도 있다. 용산역에서 노숙인 봉사를 하는 전모 할머니(82·여)는 아들과 함께 9년간 텐트촌 생활을 했다. 전 할머니는 "텐트촌에 사는 동안 아침에는 신문을 돌리고 폐지도 주워 팔았다"며 "당시 텐트촌이 있었다는게 고마운 일"이라고 했다.

현재 거주 중인 이씨 역시 "저녁에 일을 하고 낮에 이곳에서 자면서 임대아파트로 들어갈 돈을 모으고 있다"며 "(노숙인)시설에서 지원해주는 일은 2~3개월이면 끝나는 경우가 많아 지속적인 돈벌이를 찾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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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촌 한 쪽엔 비닐과 박스로 덮은 '박스집'도 있다. 용산구 관계자는 "겨울철 화재 사고의 위험이 커 빈 곳만이라도 정리하려 했다"고 말했다. /사진=오은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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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아낼 순 없잖아요"
그러나 용산구도 텐트촌 때문에 난감한건 처지다. 용산구 관계자는 서울시철도시설관리공단 소유인 이 부지의 노숙인 텐트촌 문제로 많은 민원을 받아왔다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주민 민원뿐 아니라 철도시설관리공단에서도 '환경정비를 해야하니 노숙인들을 시설 등으로 옮겨달라'는 요청이 온다"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사람들을 설득해 시설로 보내는 것 뿐인데 그분들이 못 나간다고 하면 강제로 할 수 있는게 없어 사실상 해결이 어렵다"고 밝혔다.

실제 텐트를 철거하는 강제집행을 하기 위해서는 부지 소유주인 철도시설관리공단이 나서야 한다. 그러나 지난달 30일에 예정됐던 철거는 실행되지 않았다.

이유는 철도시설관리공단도 딱히 방안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관리공단 관계자는 "현재 개발부지가 아니기 때문에 공터로 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땐 철거가 맞다"면서도 "그 분들을 추운 날씨에 나가라고 독촉할수 없어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onsunn@fnnews.com 오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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