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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닭장’ 같은 소년원…‘옴’ 걸린 피부 벅벅 긁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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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원에서 보낸 일주일]

① 질병·갈등 부르는 ‘과밀수용’

한 명당 한 평도 안 되는 공간

다닥다닥 붙어 자며 질병 고통

수십년전 사라진 피부병 전염도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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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거리의 아이들’이 있었다. 경기 의왕시 서울소년원과 안양시 서울소년분류심사원. 서울소년원의 다른 이름은 고봉중·고등학교다. <한겨레> 기자가 1주일간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만났다. 그들이 소년원에 오게 된 사연, 소년원 생활을 살폈다. 이곳은 성인 교도소보다 더 철저히 무전유죄 원칙이 관철되는 곳이다. 한번 소년원에 들어온 아이들은 다시 들어올 확률이 높다. 이 아이들을 다시 ‘거리’로 내몰지 않으려면 우리 사회가 무엇을 해야 할까. 3회에 걸쳐 실태와 대안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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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소리도 내면 안 돼.”

용석(가명·19)이가 2년 반 전 소년원에 처음 들어왔을 때 같은 방 형들에게 들은 말이다. 방문을 여닫을 때, 움직일 때, 방귀·트림·코골이 소리조차 내지 말라는 요구였다. 소년원 은어로 “소리를 잡는다”고 한다. 한명당 한평(3.3㎡)의 좁은 공간을 차지하고 사는 아이들에게 때로 소리는 권력과 서열의 도구다. 콩나물시루처럼 좁은 방에서 나이 많은 형들이 동생들의 소리를 잡고, 코를 고는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의 눈치를 본다.

지난달 6일, 경기 안양시 서울소년분류심사원(심사원) 원생들이 사는 좁은 방에 들어섰다. 아무도 없는 빈방인데도 퀴퀴한 체취가 코를 찔렀다. 11월에 이 정도인데, 여름이면 얼마나 심한 냄새가 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군데군데 뜯겨 나간 벽지에 누런 곰팡이가 슬어 있고 젖은 활동복이 간이 건조대에 널려 있었다. 53㎡(약 16평) 정도 되는 생활실에 사는 원생은 16명. 붐빌 때는 한방에 20명까지 수용한다. 심사원 방마다 딸려 있는 화장실은 하나뿐. 한 화장실에 변기와 세면대는 각각 두개씩이다. 변기와 변기 사이에 낮은 칸막이가 있어서 볼일을 보면서도 서로 얼굴을 볼 수밖에 없다. 이 좁은 화장실을 차지하려고 아침마다 고통의 기다림이 이어진다.

심사원을 거쳐 소년원에 간 아이들도 ‘칼잠’을 피하지 못한다. 33㎡(10평)가량의 고봉중·고등학교(서울소년원) 생활실에 사는 아이들은 9~15명. 오토바이 무면허 운전으로 1년 전쯤 소년원에 들어온 경훈(가명·17)이는 매일 밤 잘 때마다 옆자리에 누운 아이와 부딪친다. 점호가 끝나고 중앙을 기준으로 왼쪽과 오른쪽에 여섯명씩 나눠 눕는데 옆사람과의 간격이 좁아서다.

고통스러운 ‘대기’도 심사원과 마찬가지다. 진우(가명·18)는 서울소년원 화장실을 쓰려고 아침마다 30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이곳 생활실에는 방마다 화장실이 없다. 아이들이 생활실 밖으로 나갈 때는 충돌을 막으려 신입과 기존 학생이 따로 움직이는데, 다른 아이들이 나가는 동안 나머지는 하릴없이 대기해야 한다. “1960~70년대 군대 내무반과 제일 비슷한 곳이 지금 심사원, 소년원 아닐까요?” 20년 이상 소년원에 근무한 직원은 생활실 모습을 이렇게 설명했다. 병영 생활관에 점차 침대가 들어오면서 현대화하는 것과 달리, 소년원은 여전히 오래된 과거에 머물러 있다.

특히 인구가 집중된 수도권 지역의 서울소년분류심사원과 서울소년원 생활실은 늘 초과수용 상태다. 지난해 서울소년원 일평균 수용인원은 정원(150명) 대비 164%(246명)로 기준을 훌쩍 넘어섰다. 서울소년분류심사원도 정원 대비 139%로 상황은 비슷하다. 지은 지 30년 이상 지난 서울소년원(1986년)과 서울소년분류심사원(1984년)은 시설 증축 등 개선이 필요하지만 늘 뒷전으로 밀린다.

10명 이상 붙어사는 좁은 방에서 강자와 약자, 갈등과 다툼, 배제와 폭력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방에서 가장 센 ‘방대’(방 대장의 줄임말)가 되려고 힘겨루기를 한다고 경훈이는 말했다. “솔직히 한방에 ‘깔미’ 한명 없으면 거짓말 아닌가요?” 깔미는 ‘깔수록 밉다’는 말로 ‘왕따’를 뜻하는 은어다. 방대가 한 아이를 타깃 삼아 폭력을 주도하는 사고가 종종 일어나는데, 이를 ‘깔미 공 때린다’고 한다. 경훈이도 공 때리는 데 가세했다가 분리 수용 징계를 받은 적이 있다. “저는 전혀 때릴 생각이 없었어요. (방대가) 시켜서 한 일이에요.”

과밀 수용으로 인한 원생들의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한다고 이민재 고봉중·고 의무과장이 설명했다. “이런 환경에서 살면 정상적인 사람도 정신적으로 문제 생기지 않을까요?” 소년원 ㄱ선생님도 “일반 학생이라도 이렇게 비좁은 곳에 몰아넣는다고 생각해보세요. 싸움이 없을까요?”라고 반문했다. 아이들끼리 벌이는 부당 지시나 힘겨루기는 폐회로티브이(CCTV)와 선생님들의 지속적인 감시로 몇년 새 크게 줄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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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밀 수용은 질병을 수반하기도 한다. 수십년 전에나 있었던 ‘복고병’이 날마다 진행중이다. 2, 3일에 한번씩 가렵다고 몸을 벅벅 긁으며 아이들이 의무과장을 찾아온다. 밖에서는 흔치 않은 ‘옴’이다. 옴은 진드기가 가려움증을 유발하는 피부질환인데, 다닥다닥 붙어 잘 수밖에 없는 소년원에선 사라지지 않는다. 아이들이 “가렵다”고 의무과에 찾아오면 때는 이미 늦는다. 여러 아이에게 전염된 뒤다. 옴 환자가 생기면 한방의 이불과 옷가지를 다 삶아야 하는데, 발병 때마다 그러기 쉽지 않다. 아이를 격리 수용시키고 치료제를 바르면 옴은 며칠 만에 나아진다. 그러나 이튿날에는 다른 방에서, 혹은 같은 방 다른 아이가 가려움을 호소한다. 옴은 좁은 방에 갇혀 사는 아이들의 몸을 타고 넘나든다. 의무과장은 계절마다 소년원생들이 감기를 달고 산다고 말했다. “한 사람이 한달 동안 감기 두세번 걸리는 일은 예사죠.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같은 질환을 소년원생 한명이라도 앓게 되면, 크게 위험할 수 있어요.”

과다 인원이 수용된 소년원의 선생님들은 교화와 통제라는 1인2역을 소화해야 하지만, 눈앞의 일탈을 막는 데 급급할 수밖에 없다. 고봉중·고(서울소년원)에서 만난 한 담임 선생님은 “우리 반에 당장 한명만 더 와도 아이들을 상담하고 신경 쓰는 시간이 굉장히 준다.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데만 힘을 쏟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기자가 찾아간 지난달 9일에도 고봉중·고 선생님 회의에선 통제 관련 공지가 전파됐다. “오늘 ○○지역에서 ○○○이 신입으로 옵니다. 그 아이는 그 지역 출신 원생들한테 선배랍니다. 기싸움이 일어나는지 잘 봐야 합니다.”

아이들은 감시와 통제를 몸소 느낀다. 용석(가명·19)이는 “선생님들이 카메라(폐회로티브이)로 (생활공간을) 지켜본다. ‘몸 베개’(강한 아이가 약한 아이 몸을 베고 눕는 일) 하지 말라고 계속 (원생들에게) 얘기한다”고 말했다. 학생 통제 강화는 손쉬운 격리로 이어진다. 징계를 받은 아이들이 가는 소년원 분리수용실은 늘 만원에 가깝다. 지난해 고봉중·고생 중 76%가 징계를 받았고, 연인원 대비 130%가 분리수용 조처를 받았다. 천종호 부산지법 부장판사는 “소년원 내 격리수용 비율이 높다는 건 그만큼 생활환경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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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원 본연의 목적인 교화에 충실하려면 과밀수용 해소가 먼저라는 지적이 나온다. 2016년 강원도 춘천의 신촌정보통신학교(춘천소년원)는 4인 1실로 전환하면서 효과를 봤다. 지난해 춘천소년원이 아이들에게 내린 징계는 전년보다 36% 줄었다.

닭장 속에 갇힌 아이들은 운동시간이 되면 족쇄 풀린 것처럼 폭주한다. 하루에 팔굽혀펴기를 300개 넘게 하는 아이도 있었다. 소년원에 입소한 뒤 몇개월이 지나면 몸이 커지면서 단체로 입는 트레이닝복 상의는 ‘쫄쫄이’가 된다. 프로레슬링 선수가 강연을 온 적이 있는데 “그렇게 푸시업 많이 하면 어깨가 망가진다”고 할 만큼 아이들은 쉬는 시간마다 푸시업을 해댔다. 영호(가명·18)는 “간밤에 몰래 화장실에서 팔굽혀펴기를 하다 걸려 선생님에게 혼이 난 적이 있다”고 했다. 축구장과 농구장에서 선생님이 “집합” 외칠 때까지 아이들은 온 힘을 다한다. 한 선생님은 “연휴에도 되도록이면 매일 운동시키려고 해요. 운동시키면 과밀수용 스트레스가 그나마 덜하거든요”라고 말했다.

소년원의 세탁기는 3년이면 고장이 난다. 생활관 세탁 담당 아이가 자신이 속한 방의 아이들 옷을 대신 빨아주는데, 워낙 수가 많다 보니 세탁기가 오래 견디지 못한다. 가정용 세탁기 5대가 100여명의 빨래를 밤낮으로 해댄다. 밤이 되면 소년원 불이 꺼지면서 세탁기 소리만 멀리서 가느다랗게 새어나온다. 푸시업으로 우람해진 어깨를 부딪치며, 뒤척이던 아이들이 잠에 빠져들었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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