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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동남아 항공사들, 언제 이렇게 컸니? 하늘이 깜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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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20년 70% 급속 성장]

- 보잉도 쩔쩔매

동남아 항공사들이 주문한 비행기 100조원 이르러… 보잉도 눈치봐

조선일보

하노이=김경필 특파원


지난 10월 29일 승객과 승무원 189명을 태우고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북서부 팡칼피낭으로 가던 인도네시아 저비용항공사(LCC) 라이온에어의 보잉 737 여객기가 바다에 추락해 탑승자 전원이 숨졌다. 세계 최대의 항공기 제작사 보잉이 내놓은 최신 기종 보잉 737 MAX(맥스) 8가 처음으로 낸 사망 사고였다. 사고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초기 조사 결과는 보잉이 이 기종에 추가한 기능이 오작동해 조종사들이 조종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도 보잉은 라이온에어의 관리 부실과 조종사들의 대응 실패 가능성을 지적하며 항공사에 책임을 미뤘다.

화가 난 루스디 키라나 라이온에어그룹 회장은 미국 경제 전문지 포천과 인터뷰에서 "배신당한 기분"이라며 보잉에 대한 여객기 주문의 전량 취소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자 보잉의 주가는 이틀 만에 5.6% 급락했다. 라이온에어가 보잉으로부터 넘겨받기를 기다리고 있는 여객기가 190대, 220억달러(약 24조7000억원)어치에 달했기 때문이다. 라이온에어는 항공업계에서 손꼽힐 만한 '큰손'이었던 것이다. 라이온에어와 보잉의 분쟁과 보잉의 주가 폭락은 빠르게 성장하는 동남아시아 항공 운송 시장을 보여준다. 항공금융 전문지 에어파이낸스저널에 따르면 올해 9월 말 현재 동남아 항공사 가운데 에어아시아그룹·라이온에어그룹·싱가포르항공·비엣젯항공 등 4곳이 주문해놓은 항공기만 880억달러(약 98조7800억원)어치에 이른다. 이 항공사들은 이미 보유하고 있는 항공기 전체 수량에 육박하는 항공기를 주문해놓았을 만큼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항공운송 수요가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동남아"

동남아 항공 운수 산업이 날아오르고 있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 따르면 앞으로 20년간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은 중국과 함께 세계에서 항공 운송 수요가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이 될 전망이다. ASEAN 10개국의 연간 항공 여객 수는 2016년 4억2000만 명에서 2036년 7억4000만 명으로 20년 새 70%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회계법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는 동남아의 항공 여행 수요가 중산층의 확대, 관광 산업 성장, 국제선에 대한 동남아 각국의 규제 완화로 인해 2016년부터 2036년까지 매년 평균 5.8%씩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조선일보

(위부터)라이온에어, 비엣젯항공, 에어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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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는 항공 운송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조건을 두루 갖췄다. 인구 6억4000만 명에 달하는 동남아 경제는 2000년부터 2016년까지 연평균 5.2%의 고성장을 거뒀다. 경제 성장으로 빈곤층이 줄면서 항공기를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중산층이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2010년 동남아 인구의 29%에 불과했던 중산층 비중은 2030년에는 65%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리적 특성도 항공 운송 수요를 끌어올리고 있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태국 방콕,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베트남 호찌민 등 연간 총생산이 2000억달러 안팎으로 비슷한 경제 중심지들이 서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다. 이 도시권들은 육로나 해로로는 단시간에 접근하기가 어려운 반면, 항공편으로는 짧게는 1시간, 길게는 3시간 30분 만에 연결된다. 또 각국 내에서도 철도와 고속도로 같은 육상 교통에 대한 인프라가 부족해 항공편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이에 따라 국내선과 동남아 국가 간 노선의 수요가 급성장하고 있다. PwC에 따르면, 동남아 전체 항공 수요에서 국내선과 역내 국제선 수요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6년 25%에서 2036년 33%로 커질 전망이다. 특히 인구 2억6000만 명으로 동남아 인구의 40%를 차지하는 인도네시아는 1만8000여 섬으로 이뤄져 있어 자국 국내선의 중요성이 높은데, 인도네시아의 연간 항공 여객 수는 국내선을 중심으로 앞으로 20년간 1억3500만 명이 늘어나면서 동남아 전체 수요 증가를 견인할 것으로 보인다. 국토가 남북으로 2000㎞ 이상 길게 뻗어 있고, 철도망이 부실해 수도 하노이에서 최대 도시 호찌민까지 철도로 40시간이 넘게 걸리는 베트남도 국내선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 베트남은 2016년 연간 항공 여객 수가 3800만 명에 불과했으나 2036년에는 4배인 1억5000만 명으로 늘어나, 세계에서 항공 수요가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나라가 될 전망이다.

인프라 부족·안전 문제 우려도

항공산업이 급성장하면서 단기간에 유수 기업으로 부상하는 항공사들도 잇따라 탄생하고 있다. 소득수준이 낮은 동남아에 적합한 저가 제품을 제시한 저비용항공사들이다. 말레이시아의 에어아시아그룹은 1993년 설립돼 적자에 시달리다가 빚더미에 올랐지만, 2001년 타임워너의 전 임원 토니 페르난데스에게 인수된 이후 항공 산업 붐을 타고 10여년 만에 동남아 최대 항공사로 성장했다. 2000년 임대 여객기 1대로 운항을 시작한 인도네시아의 라이온에어그룹은 18년 만에 국영 가루다인도네시아를 제치고 인도네시아 최대 항공사가 된 것은 물론, 5개 항공 자회사를 거느린 동남아 2위 항공사로 성장했다. 2007년에 세워진 베트남 최초의 민영 항공사 비엣젯항공은 11년 만에 유럽 에어버스에 여객기 100대를 한 번에 주문할 정도의 대형 항공사가 됐다.

잘나가는 동남아 항공 운수 산업에도 그림자는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가 공항 인프라 부족이다. 항공기가 뜨고 내릴 활주로, 여객과 화물을 처리할 터미널, 정비 시설, 공항과 도심을 연결할 교통편 등 항공 운수 관련 시설의 확충 속도가 수요 증가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각국이 황급히 신공항 건설과 기존 공항 확장에 나섰지만 이미 주요 공항들은 과밀화와 처리 속도 지연 문제를 겪기 시작했다. 동남아 전문 매체인 일본 닛케이아시안리뷰는 "동남아 지역의 항공 여객 수가 너무 빠르게 늘고 있어 공항들이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IATA는 "2030년까지 동남아 100대 공항 가운데 52%가 터미널 확장, 69%가 활주로 증설이 필요하며 이를 해내지 못하면 항공 운수 산업의 성장이 제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노이=김경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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