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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동네의원·국립병원도 수익 내는데 `영리병원`과 도대체 뭐가 다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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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년 논란 끝에 탄생…'투자개방형 병원' 오해와 진실은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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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녹지국제병원이 지난 5일 개설 허가를 받았다. 이로써 2002년 김대중정부가 경제자유구역 내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설립 근거를 마련한 뒤 16년 만에 국내 첫 영리병원이 탄생하게 됐다. 개설 허가를 신호탄으로 영리병원 도입을 둘러싼 찬반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찬성론자들은 "영리법인 탄생으로 의료산업 경쟁력이 강화되고 고용 창출, 해외 환자 유치 등이 보다 탄력을 받을 것"이라며 "비영리병원과의 경쟁 속에서 의료비 부담도 오히려 더 낮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반면 영리병원 도입을 반대하는 측은 "의료보험 체계가 무너져 의료비가 폭등하고 의료서비스 양극화 사태가 촉발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처럼 정반대 시각이 정면충돌하고 있는 영리병원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 괴담 수준의 선동에 쉽게 넘어가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는 세력도 존재한다는 점에서 영리병원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게 의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영리병원은 외국인 투자병원,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투자개방형 병원, 영리 의료법인 등 다양한 명칭으로 혼용돼 사용되는데 방점은 바로 영리(營利)에 찍혀 있다. 영리의 사전적 의미는 '재산상의 이익을 꾀한다'이다. 이 같은 사전적 의미를 기준으로 영리병원이란 것은 병원을 운영해서 돈을 벌고 이윤을 남기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많은 사람이 헷갈린다. 그렇다면 기존의 병·의원은 영리를 추구하지 않느냐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팩트는 동네의원과 개인병원, 대학병원도 모두 영리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돈을 벌어야 의사와 간호사, 행정직원에게 월급을 줄 수 있다. 심지어 국공립병원도 영리를 추구한다. 계속 적자를 내는 국공립병원은 경영평가 실적이 나쁘면 병원장이 해고되고, 직원들은 인센티브를 한 푼도 받지 못한다. 민간병원보다 공공성을 강조하는 국공립병원은 한때 흑자를 내면 안 된다는 인식 때문에 오랫동안 재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환자들로부터 외면을 받기도 했다. 공공성이 강한 게 의료인 것은 사실이지만 병·의원도 이처럼 돈을 벌어야 투자를 하고 인력을 고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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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국내 첫 영리병원 개설 허가를 받은 제주 녹지국제병원 전경(왼쪽). 영리병원 설립에 반대하는 제주도 내 시민단체 인사들이 제주시청 앞에서 결정 철회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제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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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영리를 추구하는 것에 차이가 없다면 영리병원과 기존 병·의원을 구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바로 영리병원은 병원 운영을 통해 벌어들인 이윤을 투자자에게 배당할 수 있다는 점이다. 주식회사처럼 병원에 지분을 가지고 있는 투자자에게 번 돈을 나눠줄 수 있는 것이다. 반면 기존 병·의원은 남긴 이윤을 외부로 빼낼 수 없고 벌어들인 돈은 모두 병원에 재투자해야 한다. 이처럼 이윤을 외부로 내보낼 수 있느냐 없느냐가 영리병원과 비영리병원을 구분하는 가장 큰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영리병원은 의사가 아니더라도 외부인이 투자 차원에서 병원을 개원·운영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의사, 의료법인, 사회복지법인, 학교법인 등만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약 6만개의 의원급 의료기관은 모두 의사면허증을 가진 개인이 개원해 운영하고 있다. 3283개의 대학(상급종합)병원과 종합병원, 병원은 의료법인이나 학교법인, 사회복지법인 등이 개설한 것이다. 개인 병·의원이나 법인 모두 의사가 대표를 맡는 구조로 의사만이 의료기관을 개원·소유·경영할 수 있다. 영리법원 허가를 받지 않는 한 의사가 아닌 자본가(투자자)나 기업은 병·의원을 개설할 수 없다.

영리병원 도입은 전 세계적인 추세다. 1970~1980년대까지만 해도 각국은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영국식 사회복지 모델을 채택해 영리병원을 허용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1990년대부터 급속한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노인인구 증가에 따른 의료비 지출이 폭증하자 희망하는 병·의원은 영리로 전환하도록 허용해줬다. 영국도 영리병원을 허용했다. 정부 지원을 받지 않고 자립 경영을 통해 병·의원을 운영하도록 한 것이다. 영리 허용으로 재정적 여유가 생긴 정부는 국공립병원에 투자를 늘려 의료시설과 의료의 질을 한 차원 높였다.

그런데도 국내에서 그동안 영리병원 설립이 어려웠던 것은 괴담 수준의 주장과 선동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영리병원을 허용하면 국내 의료 체계를 왜곡시켜 의료비가 폭등하고, 돈 있는 사람만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게 돼 부자와 서민층 간 의료 양극화가 심해진다는 주장이다. 이른바 영리병원이 주변 의료기관을 전염시켜 전체 의료비를 올리고 영리화시키는 감염원이 되는 '뱀파이어 효과(vampire effect)'가 심해질 것이라는 괴담이다.

하지만 슬론, 로제나우 등과 같은 유명 매체들이 미국의 영리와 비영리병원 서비스품질, 비용, 효율 등을 살펴본 결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우리나라보다 공공의료 역사가 길고 법 적용이 까다로운 유럽이 영리병원을 허용한 배경이다.

영리병원이 제공하는 고급 의료서비스를 이용하는 경우 진료비가 다소 비싸질 수 있지만 이는 고급 의료를 선택하는 소비자의 몫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임플란트나 성형수술은 영리병원 등장으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오히려 진료비가 떨어지는 현상도 발생했다. 영리 체인병원의 박리다매 전략으로 비보험 진료비가 저렴해진 것이다.

의료 양극화도 영리병원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영리병원은 기존 병원과 마찬가지로 저소득층 진료를 회피할 수 없다. 고급화·차별화 전략을 앞세운 영리병원도 있지만 박리다매형 수익 전략을 추구하는 병원도 존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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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영리병원을 시행하는 나라를 보면 영리병원이 영리만 챙겨 전체 의료비를 올리고 의료를 양극화시키는 감염원으로 변질된 사례가 없다. 오히려 상당수 영리병원은 이익이 발생하면 이 이익금을 활용해 저소득층을 무료로 치료해주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도 영리병원인 아라빈드 안과병원인데 환자의 70%를 무료로 치료해준다. 업계 관계자는 "의료 양극화 문제는 저소득층을 위한 건강보험 급여 확대와 상대적으로 진료비가 저렴한 공공의료기관 확충을 통해 저소득층 의료비 부담을 덜어주는 정책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또 공공의료 약화와 붕괴 주장은 특히 국민건강보험 체계가 확고하게 확립돼 있는 국내 현실을 호도하는 것이라는 게 의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영리병원 허용을 의료민영화로 연관 짓는 것도 합리적 예측이 아닌 근거 없는 공포감만 키우는 주장이라는 지적이다. 영리병원은 기업 형태로 운영되기 때문에 주식시장에 상장시켜 조달한 투자자금으로 시설을 확충하고 유능한 의료진을 세계 각국에서 스카우트할 수 있다. 싱가포르나 태국, 인도 등에 미국이나 유럽 의사들이 많은 이유다. 이들 국가는 최근 몇 년간 영리병원과 비영리병원이 경쟁하면서 의료 경쟁력이 상승하고 의료 관광객 역시 덩달아 급증하고 있다. 선택 폭이 넓어진다는 점에서 환자 입장에서 영리병원이 실보다 득이 많은 셈이다.

의료계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기득권층에 비판적인 시민단체들이 의사만이 병·의원을 소유·운영해야 한다고 의사를 변호하는 것은 아이러니"라면서 "의사는 영리를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것인지, 아니면 의사만 영리를 추구해도 된다는 편견이 어디서 나왔는지 되묻고 싶다"고 반문했다. 녹지병원이 국내 의료 공공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제주 지역경제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면 앞으로 병원 앞에 붙는 '영리'는 더 이상 금기어가 아닐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병문 의료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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