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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력근로제는 타협이 불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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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애초 연초 주당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줄이는 개정 근로기준법을 통과시킬 때 탄력근로제 확대 문제를 연계 처리했으면 이런 진통을 겪지 않아도 됐을텐데….”

탄력근로제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지켜보며 한 노사문제 전문가가 뱉은 탄식이다. 탄력근로제 논란이 노사 갈등을 넘어 노정 갈등과, 여야 갈등으로 비화하고 있다.

탄력근로제 문제가 꼬인 것은 양보와 타협보다 자기 이익을 우선하는 노사의 경직적 태도 탓이 크지만,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할 정치권의 ‘무능’도 빼놓을 수 없다. 여야정이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에 합의하자, 국회는 즉각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사회적 대화를 요구했다. 하지만 11월 말, 12월 초 등 시한을 정해놓고 결과를 내놓으라는 식으로 압박해, 노동계의 반발만 키웠다. 정부·여당이 실수를 깨닫고 연내처리 입장을 철회했지만, 이제는 야당이 반발한다. 사회적 대화는 이해 당사자 간에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충분한 시간을 갖고 기다리는 인내심이 요구된다. 여야정 모두 그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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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계는 노동시간 단축의 충격을 줄이기 위해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1년으로 연장할 것을 요청한다. 탄력근로제를 확대하면 회사가 노동자들의 주당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다. 바쁠 때는 많이 일하고 한가할 때는 적게 일하면서, 단위기간 안에서 평균적으로 주 52시간을 맞추면 되기 때문이다.

재계 20위권의 ㄱ그룹은 최근 연구개발센터를 완공했다. 애초에는 각 계열사에 흩어져 있는 연구개발 조직을 입주시키고 설비와 인력도 확대할 계획이었지만 보류했다. ㄱ그룹의 회장은 “연구개발을 하다보면 중요한 시기에는 수험생이 밤을 새우며 공부하듯 집중해서 일해야 성과를 낼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연구개발센터에 수천억원을 투자할 계획이었지만 지금 심정 같아서는 차라리 해외로 옮기고 싶다”고 털어놨다. 기업들이 탄력근로제 확대를 요청하는 것은 이런 현실적 문제 때문이다. 그래서 유럽연합 등 많은 선진국도 탄력근로제를 시행하고 있다.

반면 노동계는 탄력근로제 확대는 근로시간 단축 취지에 위배된다고 반대한다. 같은 연장근로를 해도 수당이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기업의 요청을 무시하면 장기적으로 기업 경쟁력이 약화되어, 일자리의 안정성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 하지만 노동자가 일방적으로 피해를 본다면 타협은 쉽지 않다. 결국 관건은 탄력근로제를 확대하면서 노동계의 우려를 해결할 해법을 찾는 것이다.

과연 탄력근로제의 타협은 불가능한가? 많은 노동문제 전문가들은 해법이 있다고 말한다. 첫번째는 유럽연합 등이 시행 중인 ‘최소 연속 휴식기간제’의 도입이다. 노동연구원의 배규식 원장은 “탄력근로제의 단위 기간이 확대되면서 아무런 보호장치가 없으면 바쁜 경우 하루 18시간씩 2~3일씩 계속해서 일을 시킬 수가 있어 노동자의 건강이나 안전에 위협이 될 수 있다”며 “유럽연합에서도 하루 11시간의 최소 연속 휴식시간과, 한 주 1회 ‘24시간+11시간(합 35시간)’의 최소 연속 휴식시간을 도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당 손실 문제도 보상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개정 근로기준법이 국회를 통과한 지 9개월이 지나도록 이해당사자인 노사는 단 한 번도 머리를 맞대고 이런 해법에 대해 논의한 적이 없다. 경사노위의 박태주 상임위원은 “정치권 논의만 있었을 뿐, 이해당사자 간 대화가 실종되어 정치 쟁점으로 변질됐다”고 탄식했다.

탄력근로제 문제가 꼬이면서 사회적 대화를 주도할 경사노위가 출범과 동시에 멈춰서 버렸다. 한국사회는 노사정 대타협이 아니고서는 풀기 어려운 난제가 쌓여 있다. ‘광주형 일자리’나, 자동차·조선 등 주요 산업 구조조정 문제는 그 일부다. 탄력근로제 문제가 잘 풀린다면 사회적 대화의 성공사례가 될 수 있다. 독일·스웨덴 등 선진국이 사회적 대화를 통해 위기극복의 지혜를 발휘한 것을 한국에서도 기대하는 게 ‘우물에서 숭늉 찾기’일까?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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