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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재기의 천년향기](19)고려 청자 (상)-의자·악기에 변기까지…이런 고려 청자도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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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어난 아름다움 자랑하는 병·항아리 많지만 일상 생활용품에도 청자가 두루 쓰여

청자로 만든 피리·장구의 소리는 어떨까 호기심 자극…연꽃무늬 청자 변기도 있어

고급스러운 문방용품 등 실제 사용 공예품들, 고려 지배층 생활상 연구에 귀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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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 퇴화문두꺼비모양 벼루(보물 17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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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을 하나만 들라면 무엇을 꼽을까.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인 안동 봉정사 극락전, 예술성과 신앙심이 어우러진 신비한 명작 고려 불화, 기록문화유산의 정수인 해인사 대장경판(‘팔만대장경’), 언제 봐도 격조가 있는 나전칠기함이나 도금한 은 주전자…. 더 있다. 지금의 한국사 서술을 가능케 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본인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직지심경)과 고려 금속활자…. 여기에 고려 청자도 있다.

고려시대 대표 문화재를 꼽으라는 것은 까다로운 물음이다. 어쩌면 해서는 안되는 질문이다. 문화재라는 게 저마다 특별한 역사적·학술적·예술적·기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지 않은가.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이 고려 건국 1100주년을 기념해 개막한 ‘대고려, 그 찬란한 도전’ 특별전만 봐도 그렇다. 특별히 엄선한 것만 전시장에 나왔는데도 450여점에 이른다. 그동안 설문조사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고려시대를 상징하는 문화재로 청자를 손꼽는다. 비교적 명품이 많이 전해지는 데다 식기나 병·주전자같이 일상 생활용품이어서 친숙하고, 또 아름다워서다.

워낙 유명한지라 고려 청자에 관해선 누구나 한두 마디 언급할 수 있다. 그래서 이번 ‘도재기의 천년향기’에서는 비교적 주목받지 못한 고려 청자들을 보고자 한다. 국보·보물처럼 청ㄱ자를 대표하는 걸작들에 대한 더 깊은 소개는 다음 ‘하’편으로 미루고 ‘상’편에서는 덜 알려진, 국보·보물로 지정되지 않은 것도 조명한다. 청자를 즐긴 고려시대 지배계층의 생활문화를 살펴보는 데는 걸작들만큼 쓸모가 있는 유물들이다. 고려인의 소소한 일상생활상을 상상해보기에는 더 나을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고려 청자 하면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멋스러운 병이나 주전자, 향로, 접시나 항아리를 생각한다. 국보·보물로 언론매체에서 자주 보는 청자들이다. 우선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국보 68호·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이 떠오른다. 구름과 학 무늬를 상감(표면을 파내 흙이나 안료로 채워 무늬를 표현) 기법으로 표현한 걸작 매병(입이 좁고 어깨 부분은 넓으며 어깨 아래가 홀쭉한 병)이다. 향로로는 복을 기원하고 무병장수를 상징하는 칠보 무늬를 뚫음(투각) 기법으로 만든 뚜껑의 향로(‘청자 투각칠보문뚜껑 향로’·국보 95호)가 손꼽힌다. 주전자로는 모란꽃 무늬가 상감기법으로 표현된 표주박 모양(‘청자 상감모란문 표주박모양 주전자’·국보 116호) 등이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식기나 정병 등 명품 청자는 참으로 많다. ‘국보’로 지정된 청자만도 20여점, ‘보물’까지 합하면 100여점에 이를 정도다. 모두가 빼어난 형태미, 수준 높은 표현미가 돋보이는 무늬, 비취옥을 연상시키는 비색(翡色)의 색감 등 청자가 지닐 수 있는 아름다움을 조화롭게 갖춘 것들이다.

그런데 고려 청자는 생각보다 훨씬 더 다양하다. 그 종류는 물론 형태도, 무늬도, 색감도, 쓰임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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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 투각고리무늬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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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청자 의자가 흥미롭다. 국립중앙박물관·이화여대박물관 등에 소장된 것이 있는데, ‘청자 투각고리문 의자’(보물 416호·이대박물관 소장)는 모두 4점으로 개성 출토품으로 전해진다. 고리 무늬를 뚫음기법으로 표현한 의자들의 높이는 48~50㎝, 몸통 지름은 34~38㎝다. 배가 부른 원기둥 모양에 국화와 연꽃·식물넝쿨(당초) 무늬가 장식됐다. 굽 바닥을 보면 모래받침이 있어 가마에서 구웠다. 아마 왕족·귀족들이 술이나 차를 마실 때 쓴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서는 화분대, 받침용품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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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 쌍사자형 베개(보물 7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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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 베개도 있다. ‘청자 쌍사자형 베개’(보물 789호·삼성미술관 리움 소장)는 암수로 보이는 사자 두 마리가 꼬리를 맞대고 머리가 닿는 판을 받치는 형태다. 높이 10.5㎝, 길이 21.8㎝, 너비 8.2㎝로 맑은 비취빛이 은은한 베개의 위쪽 판은 연잎을 형상화한 것으로 연잎 잎맥이 세밀하게 음각돼 있다. 연구 결과, 청자 절정기인 12세기 당시 청자 제작지로 유명한 전남 강진군 사당리 일대 가마에서 만든 것으로 나타났다. 모양이 흡사한 또 다른 쌍사자형 베개가 일본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에도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베갯모에서 안쪽으로 유연하게 휘어져 시각적 아름다움은 물론 기능성도 돋보이는 ‘청자 상감모란구름학무늬 베개’ 등이 소장돼 있다. 청자 베개는 당시 낮잠용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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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 구름학국화무늬 피리(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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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 구름학모란무늬 장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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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로 만든 악기, 그 소리는 어떨까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놀랍게도 청자 피리, 장구가 전해진다. 청자 피리는 국내외에 있는데,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품은 36.5㎝ 길이에 7개의 구멍이 있고 흰 구름과 학·국화 무늬가 표면을 격조 있게 장식했다. 청자 장구는 상대적으로 더 남아 있다. 구름과 학·모란 무늬를 섬세하게 새긴 ‘청자 구름학모란문 장구’(호림박물관 소장)가 손꼽히는데, 길이 57.6㎝에 양쪽 끝 동그란 부분에 덧댄 가죽 등은 없어진 상태다. 중앙박물관·광주박물관·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등에도 청자 장구들이 보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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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 상감 주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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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 연꽃무늬배모양 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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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청자들, 주사위와 변기(중앙박물관 소장)도 이색적이고 흥미를 자극한다. 청자 주사위는 가로·세로·높이가 각 1.2㎝로 면마다 검은색의 점을 상감기법으로 표현했다. 이 주사위로 고려시대 당시 주사위가 놀이 도구의 하나였음을 알 수 있다. 전남 신안군 해저에서 발굴된 원나라의 무역선 ‘신안선’에서도 주사위가 나와 선원들의 놀이용품으로 추정됐다. 청자 변기는 길이 51.2㎝, 높이 16.8㎝로 배를 닮은 듯하다. 표면에는 연꽃무늬까지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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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 원숭이모양 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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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대나 문인들에게는 문방용품이 중요하다. 자신의 취향과 실용적 측면을 따져 다양한 문방용품을 사용한다. 고려 문인들은 함께 모여 술과 차를 마시며 시를 짓다보니 수준 높은 문방용품들, 술병과 술잔, 각종 차 도구(다구)들이 남아 있다. 독특한 형태미를 자랑하는 연적을 비롯해 벼루, 붓을 꽂아놓는 붓꽂이, 먹물을 담아두는 먹항아리, 도장 등이다. 청자 벼루는 희귀한데, 보물 1382호 ‘청자 상감신축명 국화모란문 벼루’는 제작 시기와 제작자, 사용자 등에 관한 명문이 있어 학술적 가치가 높다. 명문을 보면, 1181년 5월10일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충남 태안 대섬 해저에서는 접시와 향로 등과 함께 고려 유물이 발굴됐는데, 두꺼비 모양 벼루가 있었다. 흰색과 검은색 점으로 표현된 이 ‘청자 퇴화문두꺼비모양 벼루’(보물 1782호)는 함께 발견된 목간(종이 대신 글이 써진 나무조각)으로 볼 때 강진에서 제작돼 개경으로 운송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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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 투각연당초무늬 용머리장식 붓꽂이(보물 19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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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 붓꽂이는 멋스럽다. 윗면에 붓을 꽂는 3개의 구멍이 있는 ‘청자 투각연당초문 용머리 장식 붓꽂이’(보물 1932호)는 맑은 색감과 용머리 장식, 뚫음기법이 돋보인다. 아마 왕실에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청자 원숭이모양 먹항아리’도 눈길을 끈다. 먹항아리도 희귀한데, 높이 7.1㎝의 이 먹항아리는 목에 방울을 단 원숭이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먹물을 담는 항아리를 들고 있다. 청자 도장으로는 ‘청자 원숭이모양 도장’ 등이 남아 있다. 특히 여성 용품으로는 작지만 무늬의 표현이나 색감, 조형성이 빼어난 유병과 화장품을 담은 화장품합 등이 있다. 당시 여성들은 청동제 거울을 보며 분, 기름 등으로 화장을 한 것으로 보인다. 작은 청자 합은 왕실에서 의약품 보관용기로도 쓰였다. 이외에 청자 화분, 화병 등도 사용됐다.

청자는 건축 부재로도 쓰였다. 청자 기와가 대표적이다. 역사서 <고려사>에는 ‘의종 11년(1157년) 궁궐 후원에 양이정(養怡亭)이란 정자를 세웠는데 청자 기와를 덮었다’는 내용이 있다. 고려 궁궐터인 개성의 만월대, 전남 강진 사당리 청자가마터에서는 청자 기와 조각들이 나왔다. 청자 기와는 일반 기와보다 크기가 절반 이상 작으며, 모란 등의 무늬가 새겨지기도 했다. 또 다른 부재로는 지금의 ‘타일’이라 할 수 있는 청자 도판을 비롯해 난간의 기둥, 각종 건축장식물이 있다.

이 같은 독특한 청자들은 고려 지배계층이 생활 속에서 실제 사용한 공예품으로 당시 생활상 연구에 귀한 자료들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유명 청자들에 더해 이들 이색 청자는 고려시대 청자문화의 풍성함을 잘 보여준다. 청자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주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이런 청자들은 평소 전시장에서 접하기 어렵다. 다행히 국립중앙박물관의 특별전 ‘대고려전’에서는 청자 피리와 의자, 장구 등을 만날 수 있다.

한 시대를 풍미한 공예품은 동시대 그것을 사용한 사람들의 미적 수준, 취향과 정서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따라서 전해지는 청자들은 고려 지ㄱ배층의 또 다른 얼굴이다. 수준 높은 미감을 드러내면서 한편으론 호화롭고 사치스럽기도 하다. 2018년 현재 한국의 수많은 공예품들, 먼 훗날 후세들은 지금의 우리들을 어떻게 평가할까.

사진제공 문화재청·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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