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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쌀값 60% 급등에도… 농민 눈치에 비축미 못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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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文 대선공약 지키려 공격적 매수… 햅쌀 나와도 계속 올라

지난 10월 중순부터 햅쌀 출하가 시작됐다. 대개 햅쌀이 나오면 쌀 공급이 늘어 쌀값이 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한 가마(80㎏)당 19만원을 돌파한 쌀값이 미동도 않고 있다. 정부는 쌀값 고공 행진이 계속되자 지난 14일 '지난해 사들인 비축미 5만t을 시장에 추가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햅쌀 출하 시기에 정부가 비축미를 푸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하지만 농민 단체들은 곧바로 "정부가 다시 쌀값을 떨어뜨리려 한다"고 반발했다. 이개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19일 국회 농해수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더 이상 비축미를 시장에 푸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농민 달래기에 나섰다.

◇쌀 농가들, 햅쌀 출하 늦춰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5일 기준 산지 쌀값은 19만3684원으로 지난달(19만3008원)보다 676원 올랐다. 지난해 같은 시기(15만3124원)와 비교하면 26.5%(4만560원) 오른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던 지난해 5월(쌀값 12만원대)과 비교하면 1년 반 만에 60%(약 7만원)나 올랐다. 쌀값이 급등하면서 일부에선 "정부가 북한에 쌀을 몰래 지원하는 바람에 시장에 쌀이 모자란 것"이란 괴담이 돌기도 했다.

산지 쌀값 급등은 소매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19일 기준 쌀 소매가(80㎏)는 21만4472원으로 전년 대비 26% 올랐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쌀을 소량 구매하기 때문에 쌀값 급등을 잘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쌀 5㎏짜리 한 포대를 살 경우 가격은 1만3404원 수준으로, 1년 전(1만618원)보다 2786원만 더 부담하면 된다. 1~2㎏ 단위로 쌀을 산다면 오름 폭은 더 작아진다.

조선일보

정부는 지난달까지 "올해 햅쌀이 출하되기 시작하면 쌀값이 떨어질 것"이라고 공언해왔다. 하지만 아직까지 햅쌀 출하에 따른 가격 하락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일부에선 농가가 추가적인 쌀값 상승을 기대해 쌀 출하 시기를 늦추면서, 평년보다 시장에 나오는 햅쌀이 줄어 가격 하락을 막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여름 폭염으로 인해 도정수율(실제 벼를 찧어 쌀로 만드는 비율)이 예년보다 3~4% 떨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것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올해 쌀 생산량은 386만8000t으로 수요량(378만t)보다 8만8000t 많다.

하지만 도정수율이 3~4% 정도 떨어지면, 최종 쌀 생산량이 12만~15만t 정도 줄기 때문에 쌀 공급량이 수요 대비 3만~6만t가량 부족해진다. 쌀 도매 업계 관계자는 "쌀 최종 생산량이 수요에 못 미칠 경우 쌀값 상승 기대감이 더 커져 농가들이 쌀 출하를 더 늦추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농민 단체 "쌀 가격 24만원은 돼야" 요구

정부는 올해 생산된 쌀부터 적용되는 쌀 목표 가격(80kg당)을 현재 18만8000원에서 19만6000원으로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쌀 목표 가격은 정부가 농가에 지급하는 쌀 변동직불금의 기준이 되는 액수다. 시중의 쌀 가격이 목표 가격에 미치지 못할 경우 차액의 85%만큼을 변동직불금 형태로 농가에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농민 단체와 농가들은 "쌀 목표 가격이 24만원은 되어야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1998년부터 올해까지 20년간 물가상승률인 62.1%를 1998년 쌀값(14만 9056원)에도 그대로 적용하면 24만1619원이 나오기 때문에, 최소 24만원은 되어야 한다는 논리다. 또 '밥 한 공기(200g)당 최소 300원(80㎏ 환산 시 24만원)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쌀 목표 가격 21만원' 공약을 내세웠었다.

농민 단체 소속 회원 수백 명은 지난 13일 국회와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정부는 쌀 목표 가격을 24만원 수준으로 끌어올릴 경우 쌀 공급과잉 현상이 재발될 게 뻔하고, 수천억원대 직불금을 추가로 지불해야 돼 난감한 상황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비축미를 풀어 쌀값을 떨어뜨릴 수도 없고, 쌀값을 더 올려달라는 농민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도 없어 난감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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