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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30 (토)

靑국민청원 절반이 ‘고발-처벌요구’… 그중 14%는 팩트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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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10만건 넘은 청원’ 99건 분석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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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모토 아래 시행된 청와대 국민청원 제도가 도입된 지 1년 3개월을 맞았다. 힘없는 시민들이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는 창구가 됐다는 평가가 많지만 ‘이수역 폭행사건’ 등을 계기로 왜곡된 정보가 유통되는 부작용도 드러났다. 국민청원의 순기능을 유지하면서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거르는 등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고발·처벌 요구 51건 중 7건은 사실관계 오류

본보는 1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34만여 건의 글 중 10만 명 이상이 동의한 청원 99건의 유형을 분류하고 사실관계를 확인했다.

먼저 99건의 유형을 분류(중복 허용)하면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등의 피의자를 강하게 처벌해 달라는 요구가 28건, 나경원 의원의 평창 겨울올림픽 조직위원회 위원직 파면 요구 등 특정인이나 단체에 대한 고발이 27건이었다. 이 외에 난민 수용 제한 등 제도 개선이나 낙태죄 폐지 등 법안 통과 촉구가 44건이었다. 고 장자연 씨 사건처럼 재조사나 구제 요청이 12건이었고, 문재인 대통령 적폐청산 응원 등 기타 청원이 9건으로 분류됐다.

특정 개인이나 단체에 대한 고발, 강력한 처벌 요구가 총 51건(중복 4건 제외) 가운데 최근 ‘이수역 폭행사건’을 비롯한 7건은 사실관계에 일부 오류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대표적 사례로 올해 9월 남북 정상회담 당시 방송사 카메라 기자가 ‘지×하네’라고 욕설했다며 처벌을 요구했던 청원이 있다. 당시 정상회담 촬영은 청와대 전속 촬영 담당자와 북측 인사만 동석한 상황에서 진행됐고, ‘방송사 카메라 기자’는 아예 현장에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일곱 살 여아의 나체 사진에 성인 남성의 성기가 함께 찍힌 사진을 음란사이트에 올린 사람을 처벌해 달라는 청원 글 역시 실체가 없었다. 경찰 수사 결과 해당 사진은 중국에서 촬영된 것으로 확인됐다. 유튜버 양예원 씨 사건은 당초 청원 제목에서 밝힌 스튜디오 이름이 양 씨 사건과 전혀 관련이 없는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반면 만취차량 음주운전으로 사망한 ‘윤창호 씨 사건’, 조두순 출소 반대 등 4건은 사실관계에 부합했다. 이 외에 수사나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이 23건, 청원 글 작성자의 의견 개진이 17건으로 나타났다.

○ 소문·주장이 국민청원 거치면 ‘사실’로 오인

온라인 청원이 확산되는 경로를 보면 대체로 언론을 통해 최초 보도가 나간 후 개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과 △네이트판 △디시인사이드 △보배드림 등 유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내용이 공유됐다. 이후 댓글에 해석이 달리고, 국민청원으로 이슈가 옮겨가는 양상을 보였다.

10월 14일 오전 8시경 발생한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의 경우 사고 당일 오후 4시경 언론의 첫 보도가 나왔다. 이어 ‘10여 년간 우울증 약을 복용했다’는 내용이 포함된 기사가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확산됐다. 이때 댓글을 통해 “심신미약 같은 걸로 참작을 받으려고 한다”는 해석이 붙었다. 이후 사건 발생 사흘 만인 17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또 심신미약 피의자입니다’라는 단정적인 표현이 담긴 청원이 올라왔다. 이 청원은 다시 SNS나 온라인 커뮤니티로 확산되면서 역대 최대인 119만 명의 동의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경찰 조사 과정에서 ‘먹고 있는 약이 있느냐’는 물음에 피의자 김성수의 아버지가 진단서를 냈을 뿐 김성수 스스로 심신미약을 주장하지는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 ‘윤창호법’ 성과도… “가짜뉴스 걸러내야”

국민청원의 순기능을 무시할 수는 없다. 억울한 상황에 놓인 이들이 사회적 관심을 촉구해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청원 글을 통해 행정부나 입법부가 여론을 수렴한 뒤 문제 해결에 나서기도 한다. 실제로 윤창호 씨 사건의 경우 윤 씨의 친구들이 국민청원에 글을 올린 이후 40만 명이 넘는 이가 추천하면서 음주운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국회에서는 여야가 ‘윤창호법’을 처리하기로 합의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청와대 국민청원 시스템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살릴 수 있도록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미국 백악관 국민청원 사이트인 ‘위더피플(We the People)’은 13세 이상인 사람이 자신의 이름과 이메일을 인증한 후 150명의 1차 동의자를 모집해야 청원 글을 사이트에 게시할 수 있는 문턱을 두고 있다. 반면 청와대 국민청원은 연령 제한이 없고 추천자 없이 어떤 글이든 올릴 수 있다. 이 때문에 명확한 요구사항 없이 특정 집단을 모욕하거나 무분별한 청원을 하는 문제점이 발생한다.

홍준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최소한 50∼100명의 동의는 받을 수 있는 글이 공개되도록 하는 규칙을 새로 만들 필요가 있다”며 “청와대가 ‘가짜뉴스’나 사실을 확인하기 어려운 음해성 글은 삭제하고, 청원 글 대상이 된 사람에게서 이의신청을 받는 등 게시판 관리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다빈 empty@donga.com·구특교·김자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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