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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꿀벌 킬러' 깜탱이의 습격…양봉 농가는 피가 마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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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경남 창원시 회원구 내서읍 안성리 양봉장에서 잡은 외래종 ‘등검은말벌’을 서상돌 씨가 들어보고 있다. 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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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6일 오전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의 한 양봉 농가. 차에서 내리자 양봉 통을 오가는 꿀벌들의 윙윙거리는 날갯짓 소리가 먼저 들렸다.

이 농가 대표인 서상돌(81)씨와 부인 권갑남(75)씨는 벌통 사이를 오가며 잠자리채로 연신 무언가를 잡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잠자리채 안을 보니 일반 꿀벌 2~3마리와 함께 이보다 몸집이 2~3배나 큰 등이 검은 또 다른 벌이 보였다.

이 깜탱이 때문에 못산다니까.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어요-서상돌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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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6일 경남 창원시 회원구 내서읍 안성리 양봉장에서 잡은 외래종 ‘등검은말벌’. 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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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씨가 깜탱이라 부르는 벌은 10여 년 전부터 한반도를 뒤덮은 외래종 ‘등검은말벌’이다.

2003년 부산항에서 처음 발견된 등검은말벌은 초기 대응에 실패하면서 15년 만인 최근에는 강원도 화천 등 비무장지대(DMZ) 인근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최문보 경북대학교 응용생명과학부 교수는 “현장조사 결과, 등검은말벌이 강원도 춘천과 화천, 양구도 채집되는 등 이미 전국에 퍼진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꿀벌 킬러…여왕벌까지 스트레스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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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창원시 회원구 내서읍 안성리 양봉장에서 잡은 외래종 ‘등검은말벌’. 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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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원산인 등검은말벌은 먹이의 70%가 꿀벌이어서 ‘꿀벌 킬러’로 불린다. 실제로 이날 기자가 2시간 가까이 머무는 동안 말벌이 꿀벌을 붙잡아 어디론가 날아가는 모습을 수차례 봤다.

말벌이 출몰하면 일벌들도 스트레스를 받지만, 여왕벌도 스트레스를 받아 번식량이 크게 줄어 개체 수는 더 줄어들게 된다.

서 씨의 양봉 수익은 등검은말벌 때문에 몇 년 새 절반 이상 줄었다. 서 씨는 “10여 년 전에는 1~2마리씩 간간이 보였는데 지난해 여름부터는 하루에 1500여 마리씩 잡을 때도 있다”며 “정부나 누가 나서서 해결하지 않으면 내년에는 양봉 농사를 그만둬야 할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붉은불개미 독성 12배 ‘서부과부거미’ 유입
외래종 침입 피해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한국처럼 무역이 활발한 국가일수록 외래종 유입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환경부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붉은불개미를 비롯해 피라냐·영국갯끈풀 등 다양한 외래종이 유입했다. 그동안 국내에 들어온 외래생물도 2009년 894종에서 2013년 2167종으로 급증했다.

9월에는 붉은불개미보다 독성이 12배 강하다는 서부과부거미가 유입된 사실이 최초로 확인됐다. 대구의 한 군부대에서 군수물자를 하역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외래종의 침입에 따른 피해가 커지자 환경부는 2014년 6월에 ‘제1차 외래생물관리계획’을 마련하면서 생태계교란생물을 2014년 18종에서 올해 말까지 28종으로 확대 지정하기로 했다.

생태계교란생물로 지정되면 국내에 수입 등을 할 경우 환경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현재 생태계교란생물로 지정·관리되는 건 21종에 불과하다.

등검은말벌도 국내 유입된 지 15년이 지난 올해 말이 돼서야 뒤늦게 생태계교란종 지정을 검토하기로 했다.

이중효 국립생태원 생태보전연구실장은 “현재 등검은말벌에 대한 국내 자료를 계속 모으고 있고, 올해 안에 생태계교란종 지정을 위한 심사 평가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권오석 경북대 응용생명과학부 교수는 “선진국에서는 검역과 예찰에 예산의 70%를 쓰지만 우리는 거꾸로 외래종 제거에 70%를 쓰는 등 전형적인 뒷북 행정을 펼치고 있다”며 “외래생물 침입을 저지할 수 있는 범부처적인 콘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창원=위성욱 기자,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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