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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일왕에 '천황폐하'라고 극진히 대한 한국 대통령,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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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韓男)일녀(日女)수다⑤
한일 관계를 설명할 때, 진부하지만 '가깝고도 먼 나라' 이상의 표현은 없는 듯 합니다. 공감할 부분도, 갈등할 부분도 많다는 뜻이겠지요. 1년간 일본 도쿄에서 연수를 한 중앙일보 정현목 기자, 동국대 대학원에서 한국영화를 공부하고 있는 나리카와 아야 칼럼니스트(전 아사히신문 기자)가 의기투합했습니다. 국적은 물론, 성별도 연령대도 다른 둘이 양국 사이의 이런저런 이슈들에 대해 허심탄회한 토크를 진행합니다. 이번 주제는 '천황인가, 일왕인가'입니다. 일본인들에게 '천황'은 어떤 존재인지, 왜 한국에선 천황이라는 말 대신 '일왕'을 쓰는지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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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목(이하 정): 일본에서 보니 아키히토 일왕(천황) 관련 뉴스가 많던데요.

나리카와(이하 나): 존경 많이 받고 있고, 인기가 많아요. 평화주의자이고, 그분 덕분에 평화가 유지되고 있다는 느낌도 있죠. 천황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이젠 거의 없어요.

정: 외모만 보면 선하고 인자한 동네 할아버지 느낌이랄까. 한국인들에게도 평화주의자이자 친한파 이미지가 강해요.

나: 실제론 그런 면이 더 강할 거에요. 천황 일가를 보좌하는 궁내청이 자유롭게 발언 못하게 하니까.

정: 그럼에도 한일 월드컵 전인 2001년 메가톤급 발언을 했잖아요. "1300년전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었다. 그래서 한국과의 인연을 느끼고 있다"고. 자신에게 백제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인정한 거죠.

나: 정말 메가톤급이었죠. 나라(奈良)고분을 파면 백제 유물이 쏟아진다는 말이 도는 상황에서 천황이 그런 발언을 하니까. 설사 그렇다 해도 말하면 안되는 것처럼 여겨졌던 발언을 천황이 한 거에요. 그래서 일본 우익이 반발하기도 했거든요. 아무튼 천황의 발언이 영향력이 꽤 있어요. 이후 일한 월드컵이 성공적으로 개최됐고, 한류 붐도 일었어요. 그 발언 때문에 일본사람들이 한국을 더 가깝게 느꼈을 거에요.

정: 과거사에 대해서도 한국에 진심어린 사과를 했잖아요.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0년 방일했을 때였는데, "우리나라에 의해 초래된 불행한 시기에 귀국민이 겪었던 고통을 생각하며 저는 통석의 염을 금할 수 없습니다"라고 했어요. 아버지 히로히토 일왕의 사죄보다 수위가 더 높았고, 일본이 가해자였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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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히토 일왕(오른쪽)과 그의 장남인 나루히토 왕세자. 나루히토 왕세자가 내년 5월 새로운 일왕이 된다. [뉴시스]




나: 이후 고노 담화(1993년 고노 요헤이 당시 관방장관이 위안부에 대한 일본군의 강제성을 인정), 무라야마 담화(1995년 무라야마 총리가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죄하는 뜻을 표명)가 나온 걸 보면, 그런 분위기를 만드는데 아키히토 천황의 사과가 큰 역할을 했다고 봐요.

정: 아키히토 일왕은 국민들 앞에 무릎 꿇은 최초의 일왕이기도 해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도호쿠(東北)지역 피난소를 미치코 왕후와 함께 찾아 무릎을 꿇은 채 몸을 낮춰 주민들과 대화했는데, 그 장면이 슬픔에 빠진 일본인들에게 큰 위로가 됐죠. 그걸 보며 아키히토 일왕이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소탈한 분이란 느낌을 받았어요.

나: 퍼포먼스가 아니라, 실제 마음에서 우러나서 그런 행동을 하는 분이에요. 젊었을 때 테니스장에서 미치코 황후를 만나 자유연애를 한 것도 큰 화제였죠.

정: 아키히토 일왕이 평화주의를 신봉하게 된 건, 어릴 때 자신을 가르쳤던 미국인 가정교사 때문이라고 하네요. 퀘이커교도인 미국인 여류작가 엘리자베스 바이닝이 그에게 영어 뿐 아니라 평화의 소중함까지 가르쳤다는 거죠. 덕분인지 아키히토 일왕은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과 평화주의 실현을 평생의 업으로 삼고 있어요. 오키나와 등 태평양전쟁 격전지를 방문해 희생자들을 위령했고, 2005년 사이판을 방문했을 때는 전격적으로 한국인 위령탑을 찾아 참배했죠.

나: 태평양전쟁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아버지(히로히토 일왕)의 책임까지 생각해서 그렇게 행동하시는 것 같아요. 건강이 안좋은 상황에서도 강행군 하시는 걸 보면 마음이 짠해요. 인생을 거기에 다 써버린 것 같아요. 결국 건강문제로 내년 4월 퇴임하시잖아요.

정: 아베 총리와는 사이가 그닥 좋지 않다는 얘기가 있어요. 지향점이 너무 다르니까.

나: 실제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안좋을 수 밖에 없겠죠. 생각이 너무 다른데. 발언을 보면 서로를 의식하고 견제하는 듯 해요.

정: 평화주의자인 일왕 입장에서 봤을 때 우경화 개헌하려는 아베 총리의 노선이 맘에 들 리 없겠죠. 최근 야스쿠니 신사 고위관계자가 아키히토 일왕을 비판한 사실이 주간지 보도로 알려져 사임했다더군요. "폐하가 열심히 위령여행을 하면 할수록 야스쿠니는 멀어져간다. 확실히 말하면 지금 폐하는 야스쿠니를 부수려 하고 있다"고 했는데 일왕에 대한 엄청난 '디스'네요. 이런 사건을 보면서 일본 우익이 어떤 세력인지 실감이 되더라고요.

나: 아이러니한 게 일본 우익은 천황제를 지키려 하는 사람들이잖아요.

정: 맞아요. 옛날처럼 일왕 중심의 강한 국가를 만들자는 사람들인데, 일왕을 이렇게 디스하는 건 자신들의 뜻과 맞지 않는 일왕은 일왕이 아니다라는 속내를 드러낸 게 아닐까요?

나: 그들이 지키려는 건 천황 개인이 아니라, 천황제인 거죠. 메이지 유신 자체가 그렇잖아요. 에도시대까지는 천황의 존재감이 없었는데, 유신세력이 권력장악을 위해 구심적인 존재로 천황을 내세운 거니까.

정: 지금 우리가 같은 사람을 놓고, 다른 명칭으로 말하고 있는 거 알죠? 저는 일왕, 나리카와 상은 천황. 한국사람들이 일본 천황을 일왕으로 부르는 이유에 대해선 짐작하고 계시죠?

나: 식민지배와 관련한 불행한 역사 때문이겠죠.

정: 일제 침략 때 국가 시스템이 천황제 군국주의였으니까요. 피해국가 입장에서 천황이라 부르기엔 정서상 거부감이 들 수 밖에 없죠. 히로히토 일왕의 전쟁 책임에 대해 일본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나: 자료들을 보면, 전쟁 책임이 히로히토 천황에 있다고 생각해요. 그럴만한 권한도 있었고. 전쟁 직후 일본에 주둔한 GHQ(연합군 총사령부)가 일본을 친미국가로 만들기 위해선 천황제를 없애면 안되겠다고 판단하고, 천황에게까지 전쟁 책임을 지게 하진 않았어요. 반대하는 이들도 많았지만 GHQ가 억눌렀고, 천황 또한 처벌받고 싶지 않았겠죠. 하지만 히로히토 천황이 전쟁에 개입했다는 증거들이 많이 나왔어요. 반전론자들의 의견은 안듣고 대표적 전범인 도조 히데키를 많이 밀어주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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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히로히토 일왕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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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맞아요. 히로히토 일왕이 당시 군 통수권자로서 전쟁에 상당히 깊숙히 개입했던 증거들이 나오는데도, "나는 군부의 허수아비였고 오히려 전쟁을 끝낸 '공'이 있다"며 끝까지 잡아뗐죠. 맥아더 연합군 사령관도 "천황을 구속하면 우리의 점령계획에 큰 차질이 빚어진다"는 이유로 히로히토 일왕에 면죄부를 줬고요. 재판 결과 도조 히데키 등 전범 7명이 처형당하는데, 도조가 사형판결을 받고서 "그 무엇보다 천황폐하께 폐를 끼치지 않게 될 것이 명백해져서 안심했다"고 말했고, 처형 직전 전범들이 '천황폐하 만세' '대일본제국 만세'를 외쳤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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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 당시의 히로히토 일왕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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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9월 히로히토 일왕(오른쪽)과 미군의 맥아더 사령관이 함께 찍은 사진. 신적인 존재였던 일왕의 초라한 모습이 일본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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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일본에서 히로히토 천황의 전쟁책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던 시기가 있었지만, 1970년대 이후엔 그런 논의 자체가 없어졌어요.

정: 한국사람들이 '천황'을 일왕이라 부르는 것에 대해 일본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해요?

나: 저도 처음에 한국사람들이 '일왕'이라 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저처럼 그런 사실 자체를 모르는 일본인들이 많아요. 일본에는 집에 천황 사진을 걸어놓는 사람들이 있어요. 물론 나이많은 사람들이지만. 그만큼 천황을 존경하고 지지한다는 뜻이죠.

정: '천황'의 이름을 모르는 일본인들도 많던데.

나: 예전만큼 관심이 없는 것도 있지만, 천황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실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미치코 사마(아키히토 일왕 부인), 마사코 사마(나루히토 왕세자 부인)등 부인은 이름으로 부르지만, 천황과 황태자(왕세자)는 그냥 천황과 황태자로 부르는 거죠. 천황과 황태자 뒤에 폐하, 전하를 안붙이는 게 결례라고 여기는 일본인도 적지 않아요.

정: 대부분의 한국 매체는 천황 대신 일왕이라 표기해요. 89년 재일동포 지문날인 파문 때 대일 감정이 악화되면서 언론이 일왕으로 표기하기 시작했답니다. 하지만 한국 정부에선 한일 관계에 따라 천황과 일왕을 혼용했는데, 대표적인 예가 이명박 정부 때였죠.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8년 일왕을 만났을 땐 천황이라 했다가, 2012년 독도를 방문해 일본의 사죄를 요구할 때는 일왕이라고 했어요. 그리고 잘 이해가 안되는데, 일본 영공을 지나며 '천황폐하께 정중한 인사를 드렸던' 대통령이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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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일본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아키히토 일왕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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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정말요? 누가 그랬어요?

정: 전두환 전 대통령이에요. 1986년 유럽순방을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일본영공을 통과할 때 '폐하, 본인은 아름다운 귀국의 영공을 통과하면서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을 대신해 폐하께 정중한 인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본인은 1984년 본인의 귀국 방문시 폐하와의 만남을 기쁜 마음으로 회상하면서, 이 기회를 빌어 폐하의 건안과 귀왕실과 귀국민의 무궁한 번영과 행복을 기원합니다'라는 기상(機上) 메시지를 보냈다고 하네요.

나: 헐~ 믿겨지지 않네요. 일본 방문하는 길도 아닌데 왜 그런 메시지를, 속국도 아니고... 왜 당시에 문제가 되지 않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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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일본을 방문한 전두환 대통령이 히로히토 일왕이 주최한 만찬에서 건배하고 있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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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작년에 30년 지난 외교문서가 공개되면서 밝혀진 사실이에요. 요즘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죠. 그건 그렇고 내년 5월 새로운 일왕에 즉위하는 나루히토 왕세자는 어떤 성향인가요? 외모는 아버지를 많이 닮았던데.

나: 성향도 많이 닮은 듯 해요. 많이 나서지도 않고 차분하시고, 그래서 사람들이 별로 관심 없는 듯 해요. ㅎ 오히려 사람들이 관심을 많이 갖는 건, 아키히토 천황의 차남인 아키시노노미야(후미히토) 왕자 가족이에요. 얼마전 결혼문제로 떠들썩했던 장녀 마코 공주, 아이돌처럼 인기많은 차녀 가코 공주, 그리고 40여년 만에 남성황족으로 태어나 황실은 물론 일본 전역에 큰 경사를 안겨준 막내아들 히사히토 왕자 등이죠.

정: 나루히토 왕세자 부부 사이에 외동딸(아이코 공주) 밖에 없어서 여성의 천황계승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 히사히토 왕자가 태어나면서 그런 논의가 싹 사라졌죠?

나: ㅎㅎ 맞아요. 히사히토 왕자는 지금 12살인데, 외모도 귀여워서 국민들 사이에 인기가 많아요. 히사히토 왕자의 작은 누나인 가코 공주는 최근 영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예뻐서 매스컴의 주목을 많이 받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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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히토 일왕의 차남 아키시노노미야의 차녀인 가코 공주 [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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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마사코 왕세자비는 일본의 새로운 국모가 되는데, 왕실 식구가 된 뒤 아픔을 많이 겪었죠?

나: 네. 마사코 사마는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5개 국어가 가능한 외교 재원이었는데, 나루히토 황태자의 눈에 들어 황실 식구가 됐어요. 하지만 황실이 바라는 아들을 낳지 못해 큰 스트레스를 겪었다고 해요. 적응장애라는 병 때문에 외부 활동을 한동안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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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히토 왕세자(왼쪽)와 마사코 왕세자비. 오른쪽은 나루히토 왕세자의 동생인 아키시노노미야 왕자 [뉴시스]


정: 예쁘고, 유능하고, 만약에 왕세자비가 되지 않았다면 외교 엘리트로서 외무상까지 바라볼 수 있지 않았을까요? 아무튼 지금은 많이 좋아져서 공식 일정도 소화해내고 있다고 하니 다행이네요. 새로운 일왕이 되는 나루히토 왕세자가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평화의 메신저로서, 일본 정부가 잘못된 길로 나갈 때 적절한 방식으로 견제하는 역할을 해줬으면 합니다.

나: 법률상으론 그렇게 하면 안되고 권한도 없지만, 실질적인 영향력이 있으니까 그렇게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나루히토 황태자가 일한 관계에 긍정적인 기운을 불어넣는 천황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건 딴 얘기지만, 오랜 왕실의 역사를 지닌 한국도 일본처럼 상징적 존재로서의 왕실이 유지됐으면 좋았을텐데.

정: 음... 만약에 라는 가정의 문제인데, 조선왕조의 마지막 황족인 이우 왕자 같은 분이 독립운동에 적극 가담해 조국해방에 기여했다면 어땠을까 라는 상상은 할 수 있겠죠.

나: 히로시마 원폭투하로 돌아가신 그 분이군요. 영화 '덕혜옹주'에서 일본내 항일세력을 이끄는 리더로 나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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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마지막 황족 이우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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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덕혜옹주'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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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덕혜옹주가 독립에 대한 의지가 강했다던가, 이우 왕자가 독립운동을 지원했다던가 하는 부분은 역사적 사실이 아닌 거 잘 아시잖아요. 결국 '덕혜옹주'는 역사적 사실과는 무관한 판타지 영화로 볼 수 밖에 없어요. 조선왕실이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 독립운동의 구심점이 됐으면 어땠을까 라는 바람이 투영된 판타지 영화...

나: 판타지 영화... 좀 씁쓸해지네요.

gojh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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