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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다른 재판 피고인에 수백만원 접대 받은 판사, 청탁 없었으면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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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정 판결에… '제식구 봐주기' 비난

판사 시절 자신이 재직 중인 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을 만나 수백만원어치 향응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직 판사에게 무죄가 확정됐다. 재판 청탁 명목의 향응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법조계 안팎에선 "전직 판사 봐주기 판결"이란 비판이 나온다.

김모 전 판사는 청주지법 판사로 근무하던 2013년 7월쯤 사법연수원 동기 박모 변호사 소개로 이모(40)씨를 만났다. 이씨는 당시 청주지법 다른 재판부에서 조세범처벌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형님" "동생"으로 불렀다. 이씨는 김 전 판사에게 재판 중인 사실을 말했다고 했으며, 술자리에는 법원 직원과 검사 등이 합석하기도 했다. 이 중엔 법정에서 이씨의 유죄를 입증해야 하는 공판검사도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이씨는 1심부터 유죄 판결을 받았고, 2014년 10월 대법원에서 징역 5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이후 이씨는 김 전 판사에게 접대비를 돌려 달라고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자 수사기관에 그를 고소했다. 김 전 판사는 2014년 2월에 퇴직해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검찰은 재판 청탁 대가로 약 4개월간 9회에 걸쳐 술집 등에서 총 636만원 상당의 향응을 받은 혐의(알선 뇌물수수)로 김 전 판사를 기소했다.

하지만 1·2심은 "향응은 부적절하지만 뇌물로 볼 수는 없다"며 무죄로 판결했다. 알선 뇌물수수는 다른 공무원이 맡은 구체적인 사건에 대해 청탁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씨가 김 전 판사에게 사건의 구체적 내용을 말하지 않았으며 구속이 임박해서도 전화나 문자 등으로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친밀한 관계도 무죄 판단의 근거가 됐다. 대법원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도 이런 원심 판결을 그대로 인정했다고 18일 밝혔다.

법조계에선 관대한 판결이란 지적이 나온다. 하창우 전 대한변협 회장은 "다른 재판부 피고인으로부터 향응을 접대받아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하면 법관 부패를 막기 어렵다"고 했다.



[양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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