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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계약 결혼하는 요즘 남녀 [이동준의 일본은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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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일본의 한 방송에서 ‘계약 결혼’을 주제로 한 드라마가 방영돼 결혼적령기인 남성과 여성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됐다.

그 후 약 1년이 지난 최근 드라마 내용처럼 결혼한 이들이 TV에 모습을 드러내 생활을 전했다. ‘계약(서)’이라는 단어 의미를 볼 때 ‘결혼의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따르지만, 계약 결혼한 이들은 다른 사정으로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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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에 들어가는 내용은 남녀가 상의해 결정한다. 사진= ATV방송화면 캡처


◆ 계약 결혼은?

지난 10일 일본 ATV 방송내용에 따르면 계약 결혼은 혼전 상대에게 바라는 것이나 생활규칙 등의 약속을 명기하고 이에 맞춰 생활하는 결혼을 뜻한다.

기간을 한정하는 것과 분명 다르지만, 경우에 따라 기간을 정하고 약속된 기간 부부가 되는 이들도 있다고 전해졌다.

이러한 약속은 결혼을 앞둔 두 사람의 생각이 우선시 된다. 예를 들면 남성이 ‘아침밥은 꼭 차려야 한다’는 의견을 내면 여기에 여성이 응하거나 조절 등의 과정을 거쳐 문서화 하는 형식이다.

이때 문서는 생활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할 열쇠가 된다. 문서는 공증받아 부부가 나눠 보관한다. 공증받은 문서는 마찰 발생시 상대에게 약속이행을 요구하거나 안타까운 일로 법정에 서게 되면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자료 사용된다고 결혼상담소 대표는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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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무라 대표는 “이혼하지 않는 커플은 조건(원하는 것)이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사진= ATV방송화면 캡처


◆ 계약 결혼 “다양한 남녀의 동거”

이날 방송에 출연한 나카무라 미나 결혼상담소 대표는 계약 결혼은 “다양한 유형이 있다”고 했다.

그는 ‘다양한 유형’으로 △ 성적 소수자 결혼을 비롯해 △우정결혼, △공동생활을 위한 공유결혼, △국적을 위한 사업혼인, △별거결혼, △주말결혼 등 개인의 사정에 따라 여러 명칭과 생활방식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이중 ‘우정결혼’과 ‘공유결혼’을 주력으로 하는 그는 “연애가 아닌 형태의 결혼을 원하는 사람들이 상담하러 온다”며 “회원 중에는 성적소수자나 무성애자도 많다”고 말했다. 또 결혼에 관심 없어도 “부모를 안심시키기 위해 형식적인 결혼을 원하는 이들이 계약 결혼을 선호한다”고 했다.

즉 남녀 관계를 떠난 ‘남자 사람’, ‘여자 사람’처럼 한집에 사는 동거인과 같은 의미로 서로에게 바라는 일 등을 결혼 전 조율해 부부가 되는 것이다. 나카무라 대표는 “이들 다수는 성(性)생활 과는 무관하게 ‘독신주의지만 노후는 외롭다’는 생각 등 ‘자연스러운 관계(인간관계)’를 원한다”고 설명했다. 또 우정결혼과 관련해서도 “연애(감정)와 연관 짓지 않고 ‘이야기할 상대’를 찾는 모습’이라고 했다.

이밖에도 간단한 의미에서 결혼을 앞둔 남녀가 생활규칙 등을 정하는 것도 계약 결혼에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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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에서 여성 참가자들은 “계약 결혼은 일하는 여성에게 좋다”고 입을 모았다. 사진= TBS 방송화면 캡처


◆ “서로 거리감 유지하는 수단”

2015년 결혼을 발표한 일본 아티스트 S씨도 지금 남편과 결혼 전 계약을 맺었다.

둘다 이혼경험이 있는 이들은 지난 결혼에서 위자료 문제로 큰 상처를 입은 후 계약 결혼을 결정했다.

S씨는 문서에 “시부모를 모시지 않는다”는 것과 “관계를 맺지 않는 대신 이혼시 위자료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내용 등을 넣었다.

그는 “좋은 의미로 (계약서가) 거리감을 유지할 수단이 됐다”며 “서로에 대한 약속이 상대를 배려하고, 싸울 일이 발생하지 않는 게 장점”이라고 했다.

S씨는 이어 계약 결혼은 “일하고 싶은 여성에게 추천한다”며 일하는 주부는 “남편이 육아나 가사를 도와주지 않으면 일과 가정을 양립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올 8월 계약 결혼한 배우 겸 모델 H씨도 “원치 않는 것들을 미리 문서로 만들어 다툴 일이 없다”며 “서로 약속한 일들이 머릿속에 기억돼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생각을 알고 조심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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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계약 결혼한 이들은 “작성한 계약서에 따라 남편에게 가사분담 등 원하는 바를 요구하고 수 있다”고 말했다


◆ “새로운 결혼의 형태”

방송에 출연한 여성 참가자들은 “계약 결혼은 여성에게 더 많은 장점을 가져다준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그 이유로 앞서 S씨 사례처럼 일과 가정을 양립하기 위해 남성의 도움이 절실하지만 일본 가정 현실이 그렇지 못한 점을 꼽는다. 서로의 약속이 말이 아닌 문서화돼 공증되고 여기에는 남성의 동의와 실천이 뒤따른다는 이유에서다.

아사히신문과 인터뷰한 한 남성은 “계약 결혼은 남성에게도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의 계약 결혼은 아이를 원하는 여성과 사회적 신뢰와 인생의 동반자를 원한다는 그의 생각이 좁혀지지 못해 결국 이뤄지지 못했지만 “여성이 결혼생활에서 바라는 게 있듯 남성도 그렇다. 남성도 아내와 마찰을 빚으며 한집에 살길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계약 결혼을 두고 ‘결혼의 의미를 퇴색하게 한다’는 부정적인 의견도 있지만 ‘서로의 약속을 지키게 돕는 하나의 방안’이라는 의견과 결혼 대신 동거를 선택하며 쉽게 이별하는 요즘 세태를 결혼이라는 서약으로 묶고, 이와 동시에 이혼이라는 안타까운 선택을 미리 방지할 수 있어 긍정적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또 결혼에 앞서 가사분담 등 바라는 일들을 이해받고, 배려하면서 원만한 결혼생활이 가능하다는 의견 등 계약 결혼한 이들은 단점보다 장점이 많다고 설명한다.

전문가들은 “결혼 생활에서 오는 막연한 불안감이 계약 결혼이라는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낸 것으로 보인다”며 “개인마다 각기 다른 사정으로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지만, 결혼은 두 사람이 함께 난관을 해쳐나가는 것임을 다시 생각해보면 좋겠다”고 했다.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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